[책방공사] 신축상가, 그 꿈과 현실

책방공사일지, 동네 책방의 입지 선정

by 박멀미


▶️꿈은 높은 층고를 타고 온다


책방의 시작은 하나의 공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집과 가까운 동네에 막 들어선 신축 상가. 그곳은 저의 꿈을 담을 그릇이 되어줄 것만 같았습니다. 기존 책방들이 가진 빈티지한 매력도 좋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깨끗하고 반듯한 공간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손님이 없더라도, 나 홀로 머무는 시간이 근사하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상가에는 저를 사로잡는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4.5미터에 달하는 층고였습니다. 1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높은 천장 덕분에 숨통이 탁 트이는 개방감이 느껴졌습니다. 높은 층고의 책방에서 책을 읽으면 창의력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결정적인 한 방은 테라스였습니다. 테이블 몇 개를 내놓고, 햇살 좋은 날 손님들이 여유롭게 책 읽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 풍경 하나에 마음을 뺏긴 저는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깨끗한 화장실은 덤이었습니다.

물론, 그 테라스에서 책을 읽는 낭만은 오픈 후 단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낭만은 있었지만, 현실은 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권리금 없는 상가의 진짜 가격


신축 상가의 가장 큰 장점은 '권리금'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도권 평균 권리금이 5,000만 원, 전국 평균은 3,500만 원에 육박한다니, 초기 비용을 상당히 아낀 셈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권리금이 없다는 말은 곧, 이곳에 아직 상권도, 아무런 이야기도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손님이 없으면 어때. 이 조용한 공간을 나 혼자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처음에는 이런 무모한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손님 없는 쾌적함이 얼마나 색다른 재앙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텅 빈 상가였고, 유동인구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책방도 엄연한 사업인 만큼, 위치한 지역에 일정 수준의 상업 활동이 이루어져야 고객 유입이 가능합니다. 번화가처럼 붐비지는 않더라도 어느정도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어야 매출이 일어납니다. 매출이 생겨야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고, 고객의 취향에 맞춰 기획가 서비스를 개선할 기회도 생깁니다. 이러한 경험치가 쌓여야 비로소 '지속가능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복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었습니다. 신축 상가는 기본 설비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전자식 계량기나 기타 소소한 설비를 설치하는 비용이 필요헀습니다. 다행히 저희 상가는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전기 증설 공사 같은 큰 추가 비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다른 상가였다면 카페 설비를 들여오면서 큰 비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권리금이 없어서 저렴해 보였던 선택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권리금이 없다는 달콤함 뒤에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막막함이 있었습니다. 상권 형성까지 5년, 어쩌면 1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이 황량한 땅에서, 저는 이제 막 첫 삽을 뜬 셈이었습니다.



▶️쾌적함이라는 재앙, 그리고 생존을 위한 분투


초기에는 혼자만의 공간이 주는 쾌적함이 꽤 괜찮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재앙'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독립서점의 수익 구조상 하루에 최소 15명, 많게는 20명의 손님이 찾아와야 10만 원 남짓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텅 빈 신축 상가에서 이 숫자는 닿을 수 없는 꿈과 같았습니다.

'조용한 독서 공간'이라는 첫 번째 콘셉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벽에 부딪혔습니다. 작은 공간에 책방지기와 손님, 단둘이 남겨졌을 때 흐르는 어색한 침묵. 손님들은 제 시선을 의식하며 불편해했고, 저 또한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장을 높이 쌓아 시선을 차단하고 공간을 나누는 첫 번째 분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고객의 '수'였습니다. 저는 결국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조용한 독서 공간이라는 첫 꿈을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신 음악 볼륨을 키우고, 향 좋은 커피를 내리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프로그램과 강의 위주로 운영 방향을 틀었습니다. 책방이라기보다는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이었습니다. 한때는 커피 배달까지 고민했을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책방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결정했습니다. 바로 '예약제'의 도입입니다. 이제는 시끌벅적한 문화 공간이 되었다가도, 예약을 통해 오롯이 책에만 집중하고 싶은 손님들에게는 다시 고요한 서재를 내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헐벗고 상처 입은 채로,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생존 방식을 터득해가고 있었습니다.



▶️ 피 흘리며 얻은 교훈, 1층 가라


돌이켜보면 우리 책방의 시작은 철저한 시장 조사보다는 감성적인 결정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상권 분석의 필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었습니다. 주변 상가의 폐업률, 유동 인구의 흐름 배후 주거 단지의 규모와 성격, 비슷한 업종의 생존률까지 따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책방이라는 공간은 분석보다 창조의 대상이 아닐까?"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고스란히 지금의 우리가 온몸으로 치르고 있습니다. 이 피 흘리는 경험을 통해 얻은 단 하나의,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만약 책방지기가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면, 고민하지 말고 '기존 상가'의 '1층'으로 가야한다.


책방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러야만 생존할 수 있는 업종입니다. 우연히 들를 수 있는 장소면 더욱 좋습니다. 우선은 상권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1층에 위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층이라는 위치는, 건축적인 조건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올라가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퇴근길, 점심시간, 산책 중 들러볼 만한 공간이 되려면 1층이 유리합니다.

우리 책방은 신축이고, 2층에 있으며, 기존 상권도 아닙니다. 접근성이 낮고 상권 기반도 약합니다. 상당히 불리한 조건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저기 헐벗은 채로 온갖 잡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 어찌어찌 굴러가고는 있지만 그것은 결코 안정이 아니라 위태로운 '유지'입니다.




▶️책방 입지 점검하기


혹시라도 누군가 책방을 꿈꾸고 있다면, 그 마음이 신축 상가의 어떤 매력(마력)에 이끌리고 있다면, 다음 조건들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으면 합니다. 감성적인 꿈을 현실에 발 붙이게 해 줄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신축 상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

최소 2년 치의 고정비를 감당할 충분한 운영 자금이 있는가?

상권이 형성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장기적인 브랜딩 전략이 있는가?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 미래의 배후 수요가 예정된 지역인가?

□ 기존 상가가 더 유리한 경우

초기 자본이 제한적이어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가?

책방 운영을 통해 빠른 수익 실현이 필요한 상황인가?

검증된 상권에서 안정적인 운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가?


이 외에도 간과하기 쉬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소음, 채광, 그리고 기존 설비(배관, 전력)입니다. 작은 책방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지에 따라 이 세가지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음 수준과 주변 환경 : 책방을 조용히 책읽는 공간으로 운영하는 경우에는 소음 수준을 고려해야 합니다. 도로변이나 공사 예정지 근처는 피해야 합니다. 반대로 너무 한적한 곳도 고객 접근성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습니다. 책방을 독서공간이라기 보다는 프로그램과 이벤트 위주로 운영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민감도가 낮을 것입니다.


햇빛 유입량과 자연채광 : 북향이나 주변 건물로 인해 햇빛이 차단되는 공간은 채광에 있어서 조금 불리합니다. 채광은 작은 서점에서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가능만 하다면 충분할 수록 좋습니다. 채광이 좋을수록 심리적인 안정감과 분위기 연출에서도 유리합니다. 사진을 찍어도 훨씬 잘 나오고 에너지 비용도 절약됩니다. 채광이 부족하면 분위기기 침체될 수도 있으니 조명 등을 사용해서 보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존 배관과 전력 인프라: 배관의 위치에 따라 전체 공간 배치가 결정되며, 전력 용량이 부족하면 추가 공사 비용이 발생합니다. 특히 카페 시설을 들여올 때 기존 배수관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바닥을 뚫어서 배관을 새로 매립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소음과 비용때문에 꽤나 부담스러운 작업일 수 있습니다. 카페 운영을 위한 급수와 배수 시설, 에스프레소 머신을 위한 전력 용량 등이 부족하면 추가 공사비가 들 수 있습니다.


독립서점은 책을 파는 곳을 넘어 사람과 문화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꿈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 책방은 현실적 계산보다는 감성적 선택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성을 지키기 위해 '피의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특히 신축상가를 선택할 때는 초기 투자비와 상권 형성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모든 책방지기의 꿈들이 조금씩 더 단단해졌으면 합니다.



박멀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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