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의 대화』– 푸코와 바흐친의 렌즈로 읽는

by 박멀미

괴테와의 대화 – 푸코와 바흐친의 렌즈로 읽는



요한 페테르 에커만은 괴테가 생애 마지막 10년(1823~1832)을 보내는 동안 나눈 대화를 꼼꼼히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위대한 작가와 젊은 문학 지망생의 대화록, 혹은 사제 간 담화처럼 읽히지만, 사실상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인의 사유를 생생하게 옮겨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에커만은 기억에 의존해 재구성한 부분이 있음을 솔직히 밝혔지만, 괴테의 어조와 사유의 결을 최대한 살리려 애썼다.

책의 서두에서 독자는 먼저 에커만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가난한 형편에서 태어났으나 배우려는 의지와 성실함으로 성장한 소년, 그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문학의 길로 나아간 이의 이야기다. 서술은 건조하지만, 그의 진중한 태도 덕분에 독자는 점차 정서적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서론이 끝나자마자 에커만은 조용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괴테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제 이야기는 철저히 괴테의 독무대가 된다. ‘괴테와의 대화’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한쪽의 목소리만 들리는 듯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에커만은 점차 질문과 의견을 덧붙이며 대화의 참여자로 자리 잡지만, 전반적인 구조는 여전히 괴테 중심이다. 한편으로는 노현인과 젊은 제자의 훈훈한 교류처럼 읽히지만,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단순한 담소를 넘어선 복합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

이 텍스트는 두 개의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권력의 장에서 억눌린 젊은 제자의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두 사유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낳은 대화의 장이라는 관점이다.



권력과 담론의 기술 – 푸코의 관점


푸코의 관점에서 『괴테와의 대화』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지식과 권력이 교차하며 작동하는 미세한 장치를 보여주는 텍스트다. 괴테는 당시 유럽 문학의 정점에 있었고, 에커만은 그의 지도를 갈망하는 젊은 제자였다. 이 명확한 위계 속에서 이루어진 언어 교환은 겉보기엔 가르침의 순간이지만, 푸코의 시선으로 보면 ‘담론의 권력’이 작동하는 장면이다.

푸코는 지식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모든 지식은 권력의 작동과 맞물려 있고, 사회는 이를 통해 ‘진리’를 규정한다. 괴테의 발언 — 예컨대 ‘고전주의는 건강하고, 낭만주의는 병적이다’라는 선언 — 은 취향의 표현을 넘어선 규범 설정의 행위였다. 고전과 낭만의 대립이 단순한 미학적 논쟁을 넘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담론의 기준으로 작동한 것이다. 거장의 입에서 나온 명제는 담론장에서 규범적 진리로 공인되고, 지식이 권력을, 권력이 다시 지식을 생산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괴테와의 대화』 속에도 이러한 규율의 메커니즘이 드러난다. 괴테는 ‘말할 자격이 있는 자’, 에커만은 ‘묻고 적는 자’로 역할이 구획되어 있다. 책 속에서 그의 말은 긴 담론으로 이어지고, 에커만의 문장은 짧은 질문이나 감탄으로 제한된다. 애커만이 혹여 생각이 달라도 공손히 묻거나 침묵할 뿐 논쟁으로 비화시키지 않는 이 구조는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어떤 목소리가 진리로 승인받는가를 묻는 푸코적 문제를 보여준다.


에커만은 의도적으로 개입을 절제하고, 괴테의 목소리에 전적으로 무게를 실었다.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거장의 사유를 온전히 드러내는 투명한 매개체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수동성은 거대한 지적 기록을 탄생시킨 창조적 공간이기도 했다. 에커만의 겸손하고 헌신적인 경청이야말로 괴테로 하여금 자신을 드러내게 한 ‘권력의 반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때 에커만은 단순한 청자가 아닌, 푸코가 말한 ‘주체화(subjectivation)’의 과정 속에 서 있다. 그는 괴테의 담론 체계와 세계관을 내면화하며 ‘괴테적 주체’로 성숙해간다. 다만 이 과정은 단순한 복종만이 아니다. 기록과 편집, 배열의 행위를 통해 에커만은 괴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하고 구성한다. 그 결과, 에커만은 권력의 산물이자 동시에 그 권위를 재생산하고 확장한 능동적 매개자가 된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라 할 이 대화록은 에커만 개인의 독창적 창작이라기보다 괴테 담론의 산물로 평가될 수 있지만, 바로 그 편집과 배열, 선택의 행위를 통해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괴테를 구성하고 재현한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 독일에서 한때 시들해졌던 괴테의 인기가, 대화록이 해외에서 먼저 명성을 얻은 뒤 다시 독일로 역수입되면서 재차 부상했다는 사실은, 에커만의 작업이 거장의 권위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게 증폭시키는 효과를 냈음을 보여준다.

푸코적 독해는 텍스트의 권력 구조를 예리하게 포착하지만, 그것이 인간적 교류의 온기까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괴테가 느꼈던 노년의 고독과 에커만에 대한 애정, 두 사람의 순수한 문학적 열정은 그 어떤 권력 공식으로도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권력의 시선’과 더불어 ‘인간의 목소리’ 또한 함께 듣는 균형이 필요하다.



대화의 힘 – 바흐친의 관점


푸코의 해석이 위계의 문제를 드러냈다면, 바흐친의 시선은 이 대화가 지닌 생명력을 되살린다. 바흐친은 언어를 본질적으로 대화적인 것으로 보았고, 모든 말은 누군가의 응답을 전제한다고 했다. 책에서는 괴테의 목소리가 권위 있게 중심에 놓여 있지만 그 역시 에커만이라는 상대가 있기에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목소리는 에커만의 질문이나 표정, 침묵, 분위기에 대한 응답인 셈이다. 괴테의 긴 독백처럼 보이는 말들도, 결국 에커만이라는 ‘타자’가 존재하기에 가능했다. 에커만이 없었다면 괴테는 그렇게 완전한 언어의 세계를 펼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괴테와의 대화』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있다. 하나는 괴테의 거대한 음성이고, 다른 하나는 조용하지만 성실한 에커만의 목소리다. 에커만의 목소리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이라기보다 경청자이자 기록자로서의 목소리이지만, 그럼에도 이 다른 목소리의 존재 자체가 대화의 리듬을 형성한다. 괴테의 말이 길어지다가도 에커만의 짧은 물음 하나에 의해 새로운 주제로 흐름이 전환되고, 괴테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점을 에커만이 여쭈어봄으로써 논의가 풍부해지는 대목도 있다.

실제로 에커만은 중간중간 자신이 느낀 바를 직접 적어놓기도 한다. 예컨대 어느 날 괴테가 영혼의 불멸에 대해 고귀한 견해를 들려주었을 때 에커만은 "내 가슴은 경애심으로 뛰었다. 이토록 숭고한 가르침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감격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에커만이 한 그림을 보고 "볼수록 행복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하자, 괴테가 즉시 "그것이 감각적 매력이지"라며 예술론을 펼친다. 또, 괴테가 파격적 내용의 시 두 편을 보여주었을 때 에커만은 한 편은 고전 양식이라 덜 노골적이고 다른 한 편은 현대적 양식이라 더 대담하게 느껴진다는 솔직한 견해를 밝혔고, 괴테는 "자네 말이 맞다"며 그의 판단에 동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에커만의 한마디가 괴테의 새로운 통찰을 끌어내는 순간들이 곳곳에 포착된다. 두 사람의 상호작용 속에서 지식과 통찰이 공동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진리는 한 개인의 머릿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두 의식이 만나 부딪칠 때 생성된다는 바흐친의 사유가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

바흐친은 또한 ‘응답성(answerability)’이라는 윤리적 개념을 제시했다. 에커만의 기록은 바로 그러한 응답의 행위다. 그는 거장의 언어를 단순히 받아 적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에커만은 괴테의 견해를 듣다가 의문이 생기면 조심스레 되묻곤 하는데, 이러한 질문들은 괴테의 사유를 명료하게 다듬는 효과를 낸다. 그런 의미에서 에커만의 기록 행위는 그의 사상을 함께 완성시켜가는 응답적 실천이다.

또한 에커만은 이 책을 괴테 사후인 1836년에 출간함으로써 괴테의 목소리를 후세에 전했다. 자신이 받아들인 지적 유산을 다시 세상에 내놓아 미래의 독자들이 응답할 수 있게 한 행위다. 바흐친적 관점에서 보자면, 괴테와 에커만의 대화는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독자들의 해석과 토론을 통해 끝없이 이어지는 열린 대화가 되었다. 의미는 결코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계속 생성된다는 그의 비종결성 개념처럼, 괴테의 마지막 말들조차도 독자들에 의해 새로운 의미로 거듭 해석되며 움직이는 것이다.

또 다른 지점은 ‘타자의 시각, 시각의 잉여(surplus of vision)’ 개념이다. 누구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볼 수 없듯, 괴테 역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러나 에커만이라는 타자의 눈을 통해 그는 자신조차 알지 못한 면모를 드러낸다. 에커만의 기록에는 괴테의 표정, 웃음, 목소리 톤, 방 안의 분위기 같은 디테일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덕분에 독자는 노년의 괴테가 때로는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소년처럼 호기심에 차 있음을 그려볼 수 있다. 괴테 스스로는 글을 통해 자신의 이런 면모를 남기지 않았겠지만, 에커만의 눈에 비친 괴테는 보다 입체적인 인간으로 재현된다. 이는 괴테의 권위를 절대화하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괴테를 객관화하는 효과도 있다.

결국 이 대화록은 단일한 음성이 아닌, 두 의식이 교차하는 다성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바흐친의 관점에도 한계가 있다. 괴테의 주도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 에커만의 위치가 여전히 보조적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푸코의 구조적 분석과 바흐친의 대화적 시야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거장의 독백에서 살아 있는 대화로


『괴테와의 대화』는 거장의 말년을 기록한 독백이자, 두 인물이 함께 엮어낸 대화의 산물이다. 권력의 작동과 대화의 응답이 서로 맞물리며, 텍스트는 단순한 지혜의 기록에서 인간적 소통의 장으로 확장된다. 푸코의 시선 없이 읽는다면 우리는 괴테의 발언을 그대로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 속의 권력 구성물을 놓치기 쉽다. 반대로 바흐친의 시선 없이 본다면, 그 대화를 일방적 훈시로 오해하면서 숨은 대화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괴테와 에커만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괴테는 말할 상대가 필요했고, 에커만은 기록할 스승이 필요했다. 에커만이 없었다면 괴테의 사상은 이처럼 생생한 대화 형식으로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고, 괴테가 없었다면 에커만은 평생 무명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나눈 수많은 대화는 결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하나의 텍스트로 응결되었다. 괴테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도 에커만과 지적 교감을 이어갔다. 그 마지막의 순간들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사유를 정리해 후대에 건넸고, 에커만은 그것을 기록해 영원의 담론으로 남겼다.


한겨울의 저녁, 늙은 시인이 안락의자에 기대어 차를 음미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곁의 젊은 제자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경청한다. 따뜻한 등불 아래서 시인은 자신이 쓴 구절을 낮게 읊조리고, 청년은 그 의미를 곱씹으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괴테는 세상을 떠났지만 에커만의 기록, 괴테와의 대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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