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날까.
에드 시런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 장면이 가장 극적이지 않을까 싶다. 2023년 4월 27일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노래하는 에드 시런.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 자신의 곡 ‘Thinking Out Loud’의 표절 시비를 가려줄 배심원단을 앞에 두고 해당 곡을 기타로 연주한다. 수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는 팝스타인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무런 박수도 환호도 없다. 이윽고 자신이 이 노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항변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러브스토리까지 운운하면서 말이다. 이번 표절 소송에서 패소하면 은퇴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해둔 터. 에드 시런 본인의 커리어가 좌우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과는 무죄. 승소다.
이대로 그의 불행이 끝맺음되는 시나리오라면 좋겠지만 그의 시련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임신한 아내가 암에 걸렸는데 출산 전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다. 비슷한 시기 가장 절친한 친구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 한 달 안에 벌어진 일이다. 이 모든 게 실화라는 점에서, 에드 시런이 한 인간으로서 겪은 고통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게 가혹하기까지 하다.
아티스트에게는 일종의 도피처가 있다. 예술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언제든 자신이 만들어둔 세계에 빠지면 현실로부터 무감각해질 수 있다. 그 곳에서 마음껏 감정을 토해낸다. 작업물로 승화시킨다. 현실세계에서 토해낼 수 없는 날 것의 감정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하나의 작품으로 정제해내고 나면 감정의 실체가 보인다. 뒤엉킨, 두서없는 감정들이 하나의 형태를 띠고 세상에 나온다. 불리어진다. 노래와 감정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본다. 위로받는 삶. 그게 아티스트의 삶이고, 뮤지션의 삶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에드 시런의 수학기호 시리즈 중 마지막 앨범인 ‘-’(Substract)는 이러한 배경 속 올해 5월 5일 발매되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다큐에 따르면 에드 시런은 아내의 암 선고를 듣고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4시간 동안 7곡을 썼다고 한다. 어떤 고통이었을지. 앨범을 들어보면 마냥 처절하고 참담한 감정을 쏟아내기보다는 에드 시런 본연의 덤덤함과 어쿠스틱함으로 정제해 내놓았음을 알 수 있다. 에드 시런은 이 앨범을 통해 오히려 우울을 덜어내고(-) 치유 받았다고 하니, 그에게 음악이 있어 다행이다. 의외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라, 이런 배경을 떠올리지 않고도 그냥 한적한 일요일 카페에서 하루 종일 멍 때리며 들을 앨범으로 추천하고 싶다.
간혹 이런 앨범들이 있다. 응원하던 아티스트의 시련을 목격하고 – 또 다시 응원하는 마음으로 듣게 되는 앨범. 타블로의 ‘열꽃 (2011)’이 그러했다. 에픽하이의 팬으로서 이 앨범은 마음이 아파 단 한 번밖에 듣지 못했다. 가사 한 줄이 심장을 겨냥한 펜으로 쓴 것 같았다. 올해 여름께 발표를 예고한 넬의 새 앨범 또한 그럴 것 같다. 김종완은 최근 반년 새 모친상과 형제상,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한 전 매니저상까지 소중한 사람을 세 번이나 떠나보냈다. ‘댄스 인 더 레인’이라는 넬 공연을 통해 5월 5일과 6일 양일간 올림픽홀에서 팬들과 만났다. 빗속에서 춤을 추는 심정일 넬의 행보를 응원하게 되는 공연이다.
무거운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고 보니, 우리가 무심코 들으며 즐기는 음악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어떤 이의 고통 속에서 나왔음을 실감하며 - 조금은 무거운 마음의 리스펙을 전하게 되는 요즘이다.
음악평론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