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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Jul 09. 2023

[진지의 업템포] 낭만은 숨이다

잔나비X현대자동차 헤리티지 프로젝트, <Pony>에 부쳐


현대자동차, 헤리티지 프로젝트 홍보대사 잔나비와 함께 음원 'pony' 공개 (c) 현대자동차


#0. 살다보면 자꾸 갇히게 된다. 내가 만든 틀 안에.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땐 그 틀이 지지대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정감과 그 틀이 일치할 때는 묘하게 탈출구를 찾고만 싶어진다. 뛰쳐나가고 싶고, 일상의 이벤트를 만들고 싶고, 모험하고 싶고, 흔들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탈 것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사무실에 갇혀 보지 못했던 나무의 빛깔과 흙냄새, 윤슬, 목적 없는 아이들의 여유, 그런 것들을 보고 나면 안심이 된다. 여전히 이런 낭만들은 네 곁에 있어.


#1. 얼마간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찌들었음에도 할 일이 쌓여 있어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심호흡을 해봐도 단전이 아닌 목 밑에서 깔딱하고 쉬어지는 숨. 어딘가 잘못되었다. 이젠 이럴 때는 숨부터 잘 쉬게 해주는 것이 먼저 해야할 일임을 안다. 여름의 햇살 사이로 떠나는 길, 마음의 압력을 낮춰줄 음악이 필요했다. 어떤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을까. 1번으로 생각난 건 잔나비였다.


#2. 잔나비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수록곡과 공연일정을 다 찾아다닐 정도의 팬은 아니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과 같은 서정적인 명곡들만 알고 있던 나의 인식을 바꿔준 건 작년(2022년)의 펜타포트였다. 헤드라이너 바로 전 순서에 이름을 올린 잔나비는 헤드라이너까지 한 팀만 제끼면 된다고 말해 뭇 사람들의 빈축을 샀지만, 나는 그런 패기까지도 좋았다. 발언 하나만 보고 잔나비를 평가한 사람들은 분명 이어지는 공연에 공명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잔나비는 의외로 콘서트에 특화된 그룹이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신나는 곡들이 많았다. 빠른 템포와 떼창,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키는 관객 장악력(실제로 최정훈의 롤모델이 프레디 머큐리라고 한다), 따라하기 쉬운 멜로디와 캐치한 음악들. 잔나비 콘서트는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매스컴에서는 잔나비를 아날로그하고 서정적인 그룹으로 그려내는 경향이 있는데, 반전 매력이었다. 그런 해방감에 기인해, 답답한 순간 이들의 음악이 생각났던 것 같다.


#3. 잔나비 발매곡을 최신 순으로 정렬하니 첫 줄에 뜨는 곡이 있었다. 올해 6월 말에 발매된 ‘pony’라는 곡이었다. 제목부터 빈티지함이 느껴지는 이 곡의 플레이버튼을 누르고 가사 첫 줄을 듣는 순간. 숨이 단전까지 쉬어졌다. 후렴구까지 치닫는 동안 눈물이 찔끔 났다. 슬퍼서가 아니라,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내 마음을 반영한 이 노래에 위로를 받아서다. 크레딧을 보니 역시나 잔나비 작사 작곡이다. 과연 명곡 제조기다. ‘어디든 달려가야 해. 헤드라잇 도시를 넘어.’ 시원하고 강렬하게 마음을 때리는 드럼과 일렉 기타는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고, 어쿠스틱 기타리프와 연필로 쓴 일기 같은 최정훈의 보컬은 특유의 청량감을 야기한다. 간주에 울리는 색소폰 소리는 90년대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향수를 더한다. 화성진행과 멜로디 라인 또한 장화음과 감화음을 오가며 감성을 자극한다. 이 노래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여유와 달리는 차창 밖 초록 풍경이 답답한 마음을 치유하기 충분했다. 드라이브를 앞둔 분들에게 추천한다.


#4. ‘pony’는 잔나비가 현대자동차와 헤리티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협업하여 만들어낸 곡이다. 낭만과 숨을 불러일으키는 이 노래가 잔나비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간극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배경이 어찌됐든 리스너로 하여금 힐링을 느끼게 하면 아티스트로서의 본분은 다한 거다. 그리고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아티스트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영역에선 단언컨대 없다.


#5. 낭만은 숨이다. 일상이 답답해서 어디론가 떠나며 잔나비의 음악을 듣고 눈물을 찔끔 흘리는 감수성 인간의 찌질한 단면을 낭만이라고 포장해본다. 어쩌면 목적지향적이고 탈낭만적인 삶을 추구하느라 극단적으로 ‘낭만!!!!!!’을 외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요가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인데, 이것조차 등한시할 정도로 경주마처럼 일상을 달리는 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쳇바퀴에서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럴 땐 잔나비를 듣자.


숨 잘 쉬는 것. 중요합니다. (진지)

음악평론가 진지  


[MV] JANNABI(잔나비) _ pony. (c)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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