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노란 불빛과 30년의 두드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응원봉을 흔들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인지 대한민국 연말 시상식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노란 불빛, 'Golden'을 수놓는 깃발과 헌트릭스의 고음 멜로디. 낯선 장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기다린 것이 드디어 온 것 같았다.
어젯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우리나라는 국위선양에 유독 약하다. 압축 성장의 서사를 몸으로 겪은 세대가 있고, 좁은 땅에서 세계로 나간 이들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유난히 민감한 나라다. 그 갈망은 K푸드, K뷰티, K팝이라는 이름으로 시대마다 얼굴을 달리 했다.
분기점은 BTS 때부터였다. 그래미 시상식 무대가 안기는 충격 같은 것. 공통점은 기술력 측면에서 매끈하고, 어떤 의지나 근성, 더 나아가 약간의 독기 같은 것이 음악에서 풍겨진다는 점이다. 'Golden'은 이재(EJAE)의 상승 구간 멜로디로, 방탄소년단은 압도적인 무대 퍼포먼스로.
그런데 우리가 이를 두고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측면에는, 그 실력이 오래전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고음으로 전율을 전하거나, 독기를 품은 합이 맞는 퍼포먼스의 향연은 이전에도 있었다. K팝의 역사에서 이 곡들과 견줄 만한 무대나 노래가 없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것들은 지금의 2020년대에 와서 비로소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K팝'이라는 문화가 받아들여졌다. 'Golden'은 그 상징이다. 이 OST가 K팝과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다는 것 자체가.
'Golden'이라 쓰고, 잠깐 'Yellow'를 떠올린다. 오랫동안 동양인을 향한 비하의 언어로 쓰여온 색. 같은 노란빛을 두고 한쪽에서는 멸시의 단어를 꺼냈고, 이제 그 빛이 'Golden'이라는 이름으로 아카데미 극장을 가득 채운다. 그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해도, 감추고라도 저렇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리고 동양의 상징이 한중일 구도에서 우리나라라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저 무대 속 응원봉에 대해 거슬러 올라가본다. 1996년 H.O.T의 흰색 풍선이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일이다.
음악이 하나의 문화로 세계에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그 방식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1890년대 뉴올리언스 흑인 공동체에서 발생한 재즈는 저항이자 생존이었다. 블루스와 래그타임이 뒤섞인, 억압받는 공동체의 언어. 아이러니하게도 최초의 재즈 음반을 녹음한 것은 1917년 백인 밴드였다. 뉴욕타임스가 "재즈가 서양 문명을 망치고 있다"고 비난하던 시절을 지나, 1차대전 이후 미군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간 재즈는 파리에서 열광적으로 수용됐다. 1930년대에는 일본과 상하이, 봄베이까지 퍼졌다. 발원에서 세계화까지 약 20~30년.
자메이카의 레게는 더 빨랐다. 1968년 장르명이 생기고, 1972년 영화 한 편이 북미에 레게를 전파했다. 결정적인 것은 1974년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커버였다. 록 팬들에게 밥 말리(Bob Marley)의 이름이 전해졌고, 1977년 <Exodus>가 영국 차트에서 56주를 버텼다. 훗날 타임지가 '세기의 앨범'으로 선정한 그 음반이. 약 10년이었다.
재즈는 루이 암스트롱이, 레게는 밥 말리가 끌었다. 한 명의 천재가 장르 전체를 견인했다. 그리고 두 장르 모두 억압과 저항의 서사를 품고 있었다. 세계는 그 날것의 에너지에 반응했다.
K팝은 달랐다. 1996년 H.O.T의 아이돌 시스템, 2000년대 아시아 한류, 2012년 강남스타일의 충격, 2018년 BTS의 빌보드 진입, 그리고 2026년 아카데미까지. 30년이 걸렸다. 천재 한 명이 아니라 기획사, 가수, 팬덤이라는 시스템이 끌었다. 날것의 저항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완성도가 세계를 움직였다.
응원봉은 팬의 존재감이다. 케데헌도 철저하게 짜여진 연출에 의한 조망이다. 결국 시스템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세계를 상대로.
그런데 그 시스템은 공짜가 아니었다. 문이 열리기 전에 먼저 두드린 이들이 있다. 2000년대 초 미국 시장의 벽에 정면으로 부딪혔다가 돌아온 이들, 산업의 언저리에서 버티다 사라진 이들. Golden은 그 누적의 역사 끝에 열린 문이다. 단 하나의 노래가 아니라, 수십 년의 두드림이 만들어낸 균열이다.
재즈와 레게가 한 명의 천재를 통해 세계로 나아갔다면, K팝은 이름 없는 수천 명의 축적으로 문을 열었다. 어느 쪽이 더 위대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30년의 무게가 지금 저 노란 불빛 안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카데미 무대를 뛰놀던 국악 무용수의 마음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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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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