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 달러와 빈 재생목록 사이
호주의 록 밴드 킹 기자드 앤 더 리자드 위저드(King Gizzard & the Lizard Wizard), 영국의 트립 합 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그리고
캐나다 밴드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가 스포티파이에서 음악을 삭제했다. 2021년, 독일 국방부 자문관 출신 군드버트 셰르프가 방산 스타트업 헬싱(Helsing)을 창업할 때 스포티파이 창업자 다니엘 에크가 약 6억 유로(9,800억 원가량)을 투자하며 초기 창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드론을 공급하는 이 회사의 현재 기업 가치는 120억 유로(약 19조 원)에 달한다. 아티스트는 '우리의 스트리밍 금액이 군사용 무기 개발에 간접적으로라도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는 성명을 냈다. 2025년 9월의 일이다.
이에 스포티파이 관계자는 헬싱과 스포티파이는 별개의 회사이며, 헬싱이 가자지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헬싱 역시 "우리 기술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어 목적으로만 유럽 국가에서 배치된다"라며, 다른 전쟁 지역에 사용되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플랫폼은 중립적일 수 있는가, 플랫폼 소유자의 다른 사업은 음악과 무관한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같은 해 겨울을 지나 2026년 3월, 스포티파이의 '라우드 & 클리어' (Loud & Clear) 리포트가 공개됐다. 전 세계 스포티파이 데이터를 1년 동안 분석하여, 아티스트들이 스포티파이에서 어떤 커리어를 쌓고 있는지, 이정표와 팬층, 활동 범위를 파악하는 데이터다. 10개의 데이터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저작권료' 부분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스포티파이가 음악 업계에 지급한 저작권료는 1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한 결과다. 다른 음악 산업 수익원의 증가율(약 4%)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그뿐만 아니라, 스포티파이 단일 플랫폼에서 연간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아티스트는 13,800명을 넘어섰고,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아티스트도 1,500명을 웃돈다. 보고서는 "더 많은 아티스트가 다양한 수준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수치만 보면 스트리밍은 아티스트에게 이전보다 훨씬 나은 환경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성장의 동력은 어디서 오는가. 그 답안에 음악 산업의 다음 방향이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데이터는 언어에 관한 것이다. 2025년 스포티파이 글로벌 톱 50에는 16개 언어로 된 노래들이 진입했다. 2020년의 두 배가 넘는다. 그리고 1억 달러 이상의 저작권료를 창출하는 장르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브라질 펑크(+36%), K팝(+31%), 트랩 라티노(+29%), 레게톤(+24%)이다. 영어는 아직 가장 많이 소비되는 언어이나, 흐름이 바뀌고 있다.
배드 버니(Bad Bunny)는 올해 2월 열린 제68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앨범 <DeBÍ TiRAR MáS FOToS>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스페인어 앨범이 그래미의 최고 영예를 거머쥔 건 역사상 처음이다. 스페인어로만 노래하는 그는 2024년에 이어 스포티파이 글로벌 최다 스트리밍 아티스트 자리를 지켰다. 로살리아(Rosalía)는 최근작 <Lux>에서 무려 14개 언어로 노래하며, 영어가 아닌 앨범으로 브릿 어워드(Brit Award) 최우수 해외 아티스트상을 받은 최초의 아티스트가 됐다.
이러한 지형 변화의 생생한 현장 중 하나는 올해 남미에서 목격됐다. 엔믹스(NMIXX)의 라틴 아메리카 공략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니다. 2025년 2월에는 멕시코시티, 산티아고, 상파울루를 도는 팬 콘서트 투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2025년 8월에는 브라질의 팝스타 파블로 비타르와 협업한 싱글 'MEXE'를 발표했다.
그 결과, 엔믹스는 상파울루 카니발 무대에 섰다. 200만 명의 군중 앞에서 한국어와 포르투갈어가 뒤섞인 가사를 불렀다. K팝 아티스트가 브라질 카니발 무대에 오른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열흘 뒤에는 65년 역사의 비냐 델 마르 페스티벌 — 라틴 아메리카 최대 음악 축제 —에서도 K팝 최초 출연 기록을 썼다. 멤버들이 스페인어로 관객과 대화하자, 공연 시작 전부터 '엔믹스'를 외치던 함성은 더욱 커졌다. 2024년부터 JYP엔터테인먼트가 라틴 아메리카 전담 법인을 설립하고 엔믹스를 선봉에 세웠다. 협업 신곡 'TIC TIC'은 상파울루 현지에서 촬영했고, 가사는 한국어, 포르투갈어, 영어 세 언어로 썼다.
스포티파이 보고서는 "오늘날 아티스트들은 자국 외 지역에서 데뷔 2년 만에 저작권료의 절반 이상을 벌어들인다"라고 밝혔다. 이 사실이 현상을 뒷받침한다. 지리적 위치나 언어의 장벽과 관계없이, 이제 리스너는 자신의 취향을 기반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플랫폼, 숫자, 그리고 음악 - 세 가지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플랫폼은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음악이 플랫폼을 위해 존재하는가.
스포티파이는 110억 달러를 지급했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 플랫폼의 수장은 드론을 만드는 회사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남미의 카니발 트럭 위에서 K팝이 포르투갈어로 울려 퍼졌다. 배드 버니는 그래미 역사를 바꿨다. 스트리밍 저작권료는 오르고 있고, 음악의 언어 지도는 다시 그려지고 있다.
킹 기자드와 매시브 어택,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는 그 플랫폼을 떠났다. 그것이 항의의 제스처인지, 아니면 진짜 결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행위는 한 가지를 상기시킨다. 스트리밍 시대에도 음악가는 여전히 어디에 자신의 음악을 올릴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숫자보다 더 큰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플랫폼은 음악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적어도 그래야 음악이 플랫폼 안에서 살아남는다.
* 참고자료 : 스포티파이 라우드&클리어 2025, 나우뉴스(2025), 경향신문(2026)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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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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