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계절의 첫봄, 그리고 'Sharry'
이소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 침묵 끝에 라디오 임시 DJ로 목소리를 비추더니, 급기야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은둔자의 귀환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 기지개만으로도 반가움이 밀려왔다.
프로그램명은 '첫봄'이다. 그런데 하필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제일 먼저 꺼내든 건 가을 노래였다. 그녀에게 봄이 없는 건 아니다. '청혼'이 있고, '랑데뷰'가 있다. 그런데 내가 느껴온 이소라는 가을이고 겨울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첫봄이라고 불러도, 내 안의 그녀는 다른 계절에 머물러 있다.
이소라의 가을 노래라고 하면 대부분 '가을 시선'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내게 이소라의 가을은 'Sharry'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곡은 아니지만, 가을이 왔다는 걸 피부로 감각하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다.
<Sora's Diary>는 이소라가 직접 프로듀서를 맡은 앨범이다. 전작의 풍성한 사운드에서 한 발 물러나, 가공을 최소화하고 비워낸 소리로 채웠다.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첼로.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게 흐르는 반주. 일기를 쓰듯 전 곡을 작사했고, 가사집 사이사이에는 실제 일기가 적혀 있다. 덜어냈는데 오히려 가득 찬, 그 역설이 이 앨범의 매력이다.
'Sharry'는 그 역설의 정점이다. 기타 한 대. 거기에 이소라가 직접 코러스를 넣었다. 악기는 하나인데, 꽉 찬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억 속에 아름다운 그대 보고 싶어 oh my Sharry
이윽고 '살을 스쳐가듯 바람 같은 너‘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바람의 감촉이 달라진다. 살갗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 스치고 지나간다. 그 선선함이 이 가사와 정확히 겹친다. '기억 속에'로 시작하는 것도 그렇다. 가을은 본래 회상의 계절이다. 쓸쓸함과 그리움이 공기 중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이 곡은 그 정서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그 안에 있다. 어쿠스틱 기타 줄과 줄 사이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것도 그렇다. 가공하지 않은 그 질감이, 이 곡을 가을 오후처럼 느끼게 한다.
곡의 클라이맥스는 3분 40초경이다. 기타 간주가 끝나는 자리에서 하모닉스가 울린다. 기타 줄을 누르지 않고 힘을 빼며 공명하는 소리. 오후 네 시의 노란 햇빛이 방 안으로 길게 들어오는 것처럼, 소리가 퍼져나온다. 그 직후 이소라의 '아~' 하는 호흡. 정말 아름다워서 탄식하는 것 같은, 그 호흡.
이 곡의 매력이 선명하게 와닿은 건 훗날의 일이었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던 시절, 부조정실에서 이 곡이 나가던 날이 기억난다. 노래가 나가는 중에는 보통 옆 사람과 떠들거나, DJ와 토크백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그날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에 집중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 이 곡이 좋다는 걸.
가을 노래를 봄에 꺼내든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도착했을 때 떠오르는 건 제철의 감정이 아니라 그동안 묵혀둔 감정이니까. '첫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그녀가 어떤 소리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기타 한 대만으로도 꽉 찼던 것처럼, 덜어냈는데 오히려 선명했던 것처럼. 그 하모닉스 같은 울림이, 다시 한번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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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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