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봄'이라는데, 나는 가을이 떠올랐다

오랜 계절의 첫봄, 그리고 'Sharry'

by 이예진
유튜브 '이소라의 첫봄'. (c) 채널 이소라 캡처

이소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 침묵 끝에 라디오 임시 DJ로 목소리를 비추더니, 급기야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은둔자의 귀환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 기지개만으로도 반가움이 밀려왔다.


프로그램명은 '첫봄'이다. 그런데 하필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제일 먼저 꺼내든 건 가을 노래였다. 그녀에게 봄이 없는 건 아니다. '청혼'이 있고, '랑데뷰'가 있다. 그런데 내가 느껴온 이소라는 가을이고 겨울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첫봄이라고 불러도, 내 안의 그녀는 다른 계절에 머물러 있다.


이소라의 가을 노래라고 하면 대부분 '가을 시선'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내게 이소라의 가을은 'Sharry'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곡은 아니지만, 가을이 왔다는 걸 피부로 감각하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다.

이소라, 정규 5집 <Sora's Diary>(2002) 앨범 커버. (c) 쇼글로브

<Sora's Diary>는 이소라가 직접 프로듀서를 맡은 앨범이다. 전작의 풍성한 사운드에서 한 발 물러나, 가공을 최소화하고 비워낸 소리로 채웠다.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첼로.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게 흐르는 반주. 일기를 쓰듯 전 곡을 작사했고, 가사집 사이사이에는 실제 일기가 적혀 있다. 덜어냈는데 오히려 가득 찬, 그 역설이 이 앨범의 매력이다.


'Sharry'는 그 역설의 정점이다. 기타 한 대. 거기에 이소라가 직접 코러스를 넣었다. 악기는 하나인데, 꽉 찬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억 속에 아름다운 그대 보고 싶어 oh my Sharry

이윽고 '살을 스쳐가듯 바람 같은 너‘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바람의 감촉이 달라진다. 살갗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 스치고 지나간다. 그 선선함이 이 가사와 정확히 겹친다. '기억 속에'로 시작하는 것도 그렇다. 가을은 본래 회상의 계절이다. 쓸쓸함과 그리움이 공기 중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이 곡은 그 정서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그 안에 있다. 어쿠스틱 기타 줄과 줄 사이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것도 그렇다. 가공하지 않은 그 질감이, 이 곡을 가을 오후처럼 느끼게 한다.


곡의 클라이맥스는 3분 40초경이다. 기타 간주가 끝나는 자리에서 하모닉스가 울린다. 기타 줄을 누르지 않고 힘을 빼며 공명하는 소리. 오후 네 시의 노란 햇빛이 방 안으로 길게 들어오는 것처럼, 소리가 퍼져나온다. 그 직후 이소라의 '아~' 하는 호흡. 정말 아름다워서 탄식하는 것 같은, 그 호흡.

이 곡의 매력이 선명하게 와닿은 건 훗날의 일이었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던 시절, 부조정실에서 이 곡이 나가던 날이 기억난다. 노래가 나가는 중에는 보통 옆 사람과 떠들거나, DJ와 토크백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그날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에 집중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 이 곡이 좋다는 걸.


가을 노래를 봄에 꺼내든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도착했을 때 떠오르는 건 제철의 감정이 아니라 그동안 묵혀둔 감정이니까. '첫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그녀가 어떤 소리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기타 한 대만으로도 꽉 찼던 것처럼, 덜어냈는데 오히려 선명했던 것처럼. 그 하모닉스 같은 울림이, 다시 한번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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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projectj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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