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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Jul 05. 2024

지독한 여름감기

한 박자 빠른 판단을 요하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한 박자 빠른 판단을 요하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망설임은 당신으로부터 기회를 앗아갈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아침에 본 별자리 운세가 나에게 경고하는 듯했다. 왜일까. 이런 날에는 불안한 예감이 적중하고 만다. 이상하게도. 이런 날에는 평소에 전화가 오지 않던 시간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오고, 아빠와 연락이 안 된다는 불안한 목소리가 내 속에도 불을 지피고 마는 것이다. 잠시 전화를 못 받아도 이내 다시 걸려 오곤 했던 전화가 없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앞으로는 응급실에 가야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몇 달 전 병원에서 들은 의사의 목소리가 생생히 떠올랐다.      

 

 “지금 집에 가보자.”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까망곰의 단단한 목소리가 나를 붙들었다. 40분 남짓한 시간 차를 타고 가면서 까망곰과의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분명 중요한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정말 미안하게도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에 종이컵이 씌워진 것처럼. 아슬하지만 따뜻했던 온기만 남아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 번호를 누르고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에도 속으로는 ‘당황하지 말고. 바로 119, 119야.’ 몇 번을 되새겼던 것 같다. 거실 한켠에 앉아있는 얼굴을 마주하자 든 그 안도감이란...     

 

 “아빠, 왜 전화를 안 받아! 엄마가 너무 걱정이 돼서 나한테 연락했잖아. 나도 너무 걱정돼서 일하다 달려왔어.”

 “아빠 좀 전까지 다른 방에서 자고 있어서 전화 온 줄도 몰랐네... 에이, 뭐 그런 것 때문에 집엘 와.”    

 

 순간 올라온 화도 잠시. 그 몇 마디를 하면서도 울리는 쇳소리 가득 낀 기침 소리가 내 속을 함께 긁었다. 울먹거리는 내 얼굴을 보는 아빠는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괜찮은 척 말하지만 전 같지 않은 몸을 느끼며 어떤 불안을 안고 있을지... 이전 같으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걱정을 해야만 하는 이 순간이 참 속상했다. 아빠가 내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서로를 바라보는 걱정 가득한 그 눈빛이 그저 서로 속상한 것이다.


 도르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안도의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다시 까망곰의 차에 타고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엔가는 이렇게 다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그런 순간들은 예고 없이 오는 거구나.’ 모르고만 싶은 감정과 생각들을 알게 되는 요즘이다.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에 ‘오늘은 불안한 하루였어. 그치만 큰일이라고 하기에는 꽤 견딜만한, 좋은 일도 많았던 날이야.’라고 길게 답하기가 어려워서 “그럭저럭 지내.”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날들. 이런 날에는 어떻게든 속에 든 것들을 박박 긁어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지독한 여름감기가 장맛비에 얼른 씻겨가기를 바란다.



2024년 7월 5일

이 글을 올리고 난 뒤에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잘 수 있기를 바라며.

진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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