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사소한 습관에서부터

고흐와 고갱

by Jin


“지아야,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가장 늦게 타고 내릴 때는 가장 먼저 내려서 모두 다 내릴 때까지 버튼을 꾹 누르고 있는 거야”


누구나 아직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환상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겉모습이 화려한 직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승무원도 그러한 직업 중에 하나라고 본다. 아마 유니폼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나 공항에서 유니폼을 입고 플라이트 백을 끌며 출국장으로 향하는 승무원 군단의 모습은 내가 보아도 가끔은 멋져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환상이 클수록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시의 나를 떠올려보면

‘휴~~ 또 시작이구나…. 이놈에 비행 언제 그만두나….’


플라이트 백을 내동댕이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거운 가방과 가방 무게의 몇 배는 더 되는 내 삶의 무게를 동시에 짊어지고는 42개국 140여 개 도시를 걷고 또 걷는다. 걸어서 태평양도 건너고 지구 반대편에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낯선 이들의 땅까지 끝없이 걷는다.


가끔 매체를 통해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보면 다 내려놓고 홀가분해지기 위해서 걷는다고들 하는 데 난 반대였다. 그렇게 걸어도 몸과 마음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무거워질 뿐이니 현실과 환상의 갭은 참으로 큰 것이다.


지상에서라도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항에서는 보통 에스컬레이터나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를 많이 이용한다. 스무 명가량 되는 인원과 짐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려면 그 편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때 막내인 내게 친한 팀 선배가 건넨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늘 누군가는 그것을 잡고 있었다. 덕분에 많은 인원이 편안하게 내리고 탈 수 있었고 내게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약 4개월의 입사 교육도 그 본질은 예절과 매너에 대한 내용이었고 비행을 한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스스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매우 사소한 일이라 생각하고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배려나 예의라는 게 원래 그리 대단한 것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매우 작은 습관이나 태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사소한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배려의 관점에서 작품을 들여다볼까 한다.


고흐 vs 고갱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이야기이다. 귀를 자른 사건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고흐는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불운한 화가였다.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에서 고갱과 화가공동체 결성을 꿈꾼다. 그야말로 고갱을 향한 광적이고 일방적인 기다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흐의 절실함과는 관계없이 고갱은 고흐와의 공동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워낙 개성이 강한 두 사람 인대다, 아를이라는 도시가 썩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갱은 좀 더 원시적이고 이국적인 마르키즈 제도로 떠날 계획이었다. 고갱이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흐는 늘 마음 졸이며 불안했다.

<아를의 여인> 고흐. 1888년

<밤의 카페, 아를> 고갱. 1888

지누 부인의 초상화는 약 2달간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지누 부인은 카페 드 라 가르의 주인으로 고흐의 작품 속 지누 부인은 노란 가스등 불빛 아래 책이 놓여있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매우 지적인 여인으로 묘사되었다. 날카로운 턱선과 뾰족한 실루엣이 그러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그녀에 대한 친밀함과 애정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와 반대로 고갱의 지누 부인은 동그스름한 얼굴, 완만한 곡선에 옅은 미소를 띤 여인이다.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 앉아있는 여인의 시선은 뒷배경을 향하고 있다. 근경에는 테이블이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우측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고흐가 평소 다정다감한 아버지상으로 존경했던 우체부 롤랭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여인들은 고갱이 동료 화가에게 보낸 서신에 의하면 창녀들이다. 왼편에는 고흐와 친분이 있었던 군인 밀리에 인데 이미 술에 취해 엎드려 자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누 부인의 표정을 자세히 보자. 순수하게 미소를 띤 얼굴이 아닌 손님 테이블을 곁눈질하고 있는 뚜쟁이로 묘사된 것이다. 고흐가 소중히 여겼던 주변 인물들을 향한 고갱의 조롱은 곧 고흐를 향한 비웃음이었다. 이러한 고갱의 장난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에서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고갱. 1888. 반 고흐 미술관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지만, 해바라기도 고흐도 왠지 낯설다. 작품 속 해바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과 같은 해바라기가 아니다. 축 처진 꽃잎이 마치 심한 비바람에 젖은 듯 해바라기 본연의 모습은 전혀 없다. 고흐가 잡은 붓은 너무 가늘어 마치 바늘처럼 보이고 캔버스도 지나치게 얇다. 또한,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의 눈은 뜨고 있는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한참 작업에 열중해야 할 화가의 얼굴이 완전히 맥 빠진 사람으로 보인다. 고흐를 바라보는 시점은 훨씬 노골적이다. 고갱은 고흐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고갱은 고흐가 사망한 지 약 10년 후에 <전과 후>라는 회고록을 작성한다.

회고록에 따르면 이 그림을 보고 고흐가 격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고흐가 귀를 도려내는 일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당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사실관계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당사자도 죽고 없는 마당에 굳이 예전 사건을 꺼내어 기술한 이유가 무엇일까?

고갱이 지속해서 고흐를 자극한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다음은 고흐의 작품이다.


<고흐의 의자> 고흐. 1888년

<고갱의 의자> 고흐. 1888년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왼편의 소나무 의자가 자신의 것이고 또 다른 하나가 고갱의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한다. 또한, 자신의 의자 위에 파이프 담배와 담배 주머니가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텅 빈 의자’라고 말한다. 이는 고갱이 아를을 떠난 후 그의 부재와 상실감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다소 투박해 보이는 소나무 의자는 농민 화가인 고흐의 소박함과 닮았다.


반면 고갱의 의자는 은은한 가스등 불빛 아래 카펫이 깔린 공간에 놓여있다. 팔걸이가 있는 매우 고풍스럽고 우아한 의자이다. 의자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소설책이 두 권 놓여있다. 이는 지성과 창조의 상징으로 비록 자신과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동료 화가로서 그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 차원적인 공간에 놓여있는 자신의 의자와는 달리 고갱의 의자는 그가 평소 강조하던 공간의 깊이를 없애고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에 놓여있다. 고갱을 향한 애정과 상실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경쟁심이나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건전하게 작동을 하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갈등의 사이사이에 배려가 들어가 있지 않으면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두 화가의 삶을 통해 배운다.


두 사람의 작품을 보면 사소하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언젠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8백여 통 가량의 편지글을 보며 고흐의 섬세함과 예민한 감수성에 감탄한 기억이 있다. 우리에겐 그저 정신병과 자살, 우울함으로 얼룩진 삶으로만 보이지만 그것을 감당하며 겪었을 고통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지상에 유배된 천사’ 고흐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수식어 중에 고흐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고흐와 같은 ‘천사’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 주변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특히나 개개인이 중요시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 배려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누르는 매우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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