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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나무 Feb 01. 2024

가출하는 마음

"올겨울 ‘최강 한파’가 몰아닥치며 23∼24일 추위의 정점을 찍겠다. 특히 한파와 함께 강한 바람, 눈까지 이어지면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안팎까지 떨어지겠다."

_출처: 박유빈·이규희 기자 ⓒ 세계일보


가만히 있어도 이가 덜덜 떨리는 강추위가 있던 날 저녁 7시. 나는 가출했다. 생애 처음이었다. 온기 가득한 집을 놔두고 스스로 강추위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화나고 속상한 감정을 잔뜩 품은 채.


그와는 항상 같은 과정으로 싸운다. 어떤 걸 해야 할 때 그는 대체로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때 대부분 그는 한다. 그때마다 그에게 말한다. 지금은 이걸 해야 할 때다 혹은 그건 지금 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내 입에서 나간 말은 높은 확률로 그의 쪽 귀로 들어가 반대쪽 귀로 나올 뿐이다.


내 목소리 데시벨이 조금 커진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나는 참는다. 지켜본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워본다. 감정을 최대한 넣지 않으려고 해 본다. 변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싶지 않지만 감정이 들어가며 목소리는 더 커진다. 그제야 그는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말한다.


"왜 맨날 짜증내거나 화내면서 말해?"


그날도, 올 들어 가장 추웠다는 그날 저녁도 그랬다. 거의 매일 겪는 상황이지만 매번 기분이 상했고 더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도 지키고 나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안방문을 닫자마자 들리는 태블릿 켜는 소리,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이 재생되는 소리. 그 소리는 마치 내게 "네 감정이 어떻든 난 상관없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그만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로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 공동현관을 나서자마자 깜깜한 어둠과 매서운 바람, 차가운 공기가 나를 감쌌다. 추울 거라곤 예상했지만 너무 추웠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 어느 하나 춥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다시 들어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젠장. 너무 추웠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에서 제일 가까운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속에서는 불이 나는데 내 얼굴과 손은 얼음장 같았다. 몸 밖과 안의 온도 차이는 마치 그와 내가 이 신경전을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간극이 있었다.


카페라테가 나왔고 조금씩 마시면서 열이 났던 내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아바매글(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쓰기) 미션을 해야 해서 챙겨 나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필사노트를 펼쳤다. 주일 전 필사했던 구절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마치 일주일 후의 나를 예상한 듯한 구절이었다.

그래, 그는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나는 괴로운 것이다. 남자는 청각이 둔감하고 시각이 예민해서 청각을 자극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어디선가 보지 않았던가.


나는 그의 청각만을 자극했던 건 아닐까. 그는 나를 기분 나쁘게 할 의도가 없었다. 단지 '정말로' 내 말을 못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매번 나만 화고 기분 나빠지면 무슨 소용인가. 대화 방식을 바꿔 보는 게 그와의 소통에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심호흡을 하고 최면을 걸어 보았다.


부러 더 집중해서 <명상록>을 읽었고, 글쓰기 미션에 집중했다. 그 덕분인지 집을 나설 때의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시간은 흘러 9시가 조금 넘었다. 가출한 지 시간쯤 되었그에게 전화가 왔다. 약간 망설인 후에 전화를 받았다.


그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제발 돌아와."

"엄마가 시키는 대로 다할게. 동생도 안 괴롭히고, 공부할 때 장난도 안 치고, 학교 갈 준비도 잘할게."

"엄마, 와서 같이 자자. 엄마가 와야지 나는 행복할 거야. 엄마가 와야 행복의 시간이야."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될 그는 내 말에 무반응이었던 때와 다르게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아주 많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핸드폰로 들리는 콧물 훌쩍이는 소리와 울음 섞인 목소리,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이미 마음이 다 녹아버렸다. 그래도 시간 전 속상했던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바라며 무뚝뚝한 말투로 답했다.


"들어갈게. 그런데 제발 엄마한테 맨날 화내냐고만 하지 말고, 그전에 다정하게 여러 번 말할 때 엄마 말 좀 들어줘. 친절하게 다정하게 말할 땐 듣지도 않다가 화내면 그제야 듣잖아. 그러면서 엄마는 화만 낸다 그러면 어떡해. 엄마 너무 억울하다, 정말. 이따 집에서 봐."

"알았어. 엄마. 얼른 들어와. 사랑해."

"응. 엄마도 사랑해."


나의 첫 가출은 두 시간 만에 싱겁게 끝나버렸다. 을 나가있던 두 시간 중 한 시간은 아이가 내가 나간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그러다 잘 시간이 되었는데 엄마가 오지 않으니 덜컥 겁이 났을 게 분명하다. 엄마가 있어야 잠을 자는데 없으니 말이다. 이걸 다 알지만 그래도 나는 넘어가주었다. 아니, 넘어가버렸다. (이날은 남편이 시댁에서 잔 날이어서 엄마가 더 간절했으리라. 외할머니가 집에 함께 있었지만 잠은 꼭 엄마, 아빠와만 자는 아이다)


집으로 돌아와 나를 보고 또 울음보가 터진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잠들기 전 오늘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다시 한번 아이와 약속(최소 100번 이상 했을)을 하고, 우리는 여느 날처럼 나란히 누워 서로 몸을 부대끼며 잠들었다. 그 후 가출의 효과는 3일 정도 유효했고, 역시나 다시 비슷한 과정이 반복되는 중이다.


같은 과정을 반복하니 결과도 비슷했다. 이번에는 과정을 바꿔보자 마음먹고 책장에서 을 한 권 꺼냈다. 아이를 출산하던 해에 남동생에 선물 받았던 책인데, 거의 8년 만에 읽기 시작했다.

[아들을 잘 키운다는 것] 부제: 오늘도 아들 때문에 흔들리고 힘겨워하는 엄마들에게(이진혁 저)


이 책이 엄마로서 역할에 어떤 도움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육아는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들 혹은 아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는 특성들이 몇 가지라도 나와있지 않을까. 그하나라도 알게 된다면 적어도 내가 에너지를 써야 할 곳과 그러지 않아도 될 곳을 구분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지향하는 엄마의 모습인 단아한 엄마,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엄마가 되는 방법이 있으면. 일말의 기대를 품고 책장을 펼쳐본다. 그와 내가 오늘은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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