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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Mar 04. 2019

성격 나쁜 셰프의 산해진미

곡성 감상평


나홍진 감독의 전작 “황해”에서 주인공 구남은 정말 더럽게 고생하는 캐릭터였다. 한국에 간 아내도 찾고 싶고 빚도 갚고 싶다. 그 빚은 아내의 입국 비자를 위해서였다. 연락되지 않는 아내와 끝없는 빚으로 삶의 바닥까지 추락하던 그에게 면정학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단 한 명만 죽이고 돌아오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하지만 이 단순한 바람 하나 이루고 싶어서 한국에 온 구남은 죽도록 구르고 구른다. 표적을 죽이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상태” 에서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바라고 기대하고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 믿었던 모든 방법들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종국에는 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관객의 안타까움 속에 구남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차가운 황해에 버려졌다.


감독의 이런 성향은 일관적이었다. 그 전작 “추격자”에서도 엄중호는 4885 지영민이 미진을 죽이는 걸 막지 못했고, 그 전작 “완벽한 도미요리”의 요리사도 광기 어린 그 요리를 먹지도, 누구에게 먹이지도 못했다. 이제와 새삼스레 전작 이야기들을 꺼낸 건, 아마도 이번의 “구남이”는 바로 관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마 당신은 존나게 구를 것이다. 곡성은 그런 영화다.  


무당 역을 맡은 황정민이 등장해 오컬트 색채를 더하기까지 거의 러닝타임 절반이 소요된다. 오컬트라는 장르 소재를 다루면서 “시골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갖는 경계” 위에 풀어내, 이게 마을 살인 사건인지 엑소시즘이 필요한 초현실적 사건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곡성에는 스릴러도, 코미디도, 드라마도 공포도 모두가 혼재돼 있다. 이 기이한 경계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던진 후 “그러니까 대체 왜 이러는 건데” 하는 동안 속절없이 이야기에 휘둘린다.


프로 이야기꾼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긴장하게 만들고, 어디쯤에서 해소해 주면 기뻐할지 안다. 그런데 곡성은 중간중간 웃음으로 잠시 쉴 곳을 마련해 주는 것 이외에는 관객을 편안하게 해 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사건 속에서 드디어 구세주 납셨다고 생각하는 순간 냅다 판을 깨거나, 찜찜하지만 뭔가 해결됐나 싶으면 그때마다 국면이 전환된다. 종국에 극한까지 스트레스와 의혹으로 관객을 몰아붙여 놓고는 말한다. “현혹되지 말라”라고. 이쯤 되면 확실하다. 나홍진은 사람 굴리는 덴 도가 튼 인간이다. 심지어 점점 정교하게 고약하다.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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