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록 프로젝트 <천 개의 카메라> 6기 - 노량진 고시촌
어떤 사람들은 노량진 고시촌의 명성이 한 풀 꺾였다고 말한다. 매년 낮아지는 고시 경쟁률과 온라인 강의의 성황, 늘어나는 재개발 지구 지정으로 ‘고시생의 메카’ 노량진은 이제 그 명찰을 아예 떼버릴 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30대에게 노량진은 ‘저렴한 물가, 수산시장’이 떠오르는 소위 ‘유흥 핫플’이지만 재수 경험이 있는 40-50대에게는 수험생 시절이 담긴 아련한 추억의 장소다. 90년대부터 명문 재수학원들이 노량진에 터를 잡으며 한때 최대 호황을 누렸다. 대입 전형이 바뀌며 재수학원이 점점 사라졌고, 그 자리를 공무원과 임용고시 학원이 채웠다. 만양로와 장승배기로 주변엔 여전히 ‘그들만의 섬’이 있다. 규모야 어찌됐건, 그들은 여전히 거기 있다.
노량진 고시촌은 현실과 동떨어진 작은 섬, 노량도(島)다. 합격 전까지 절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온갖 유흥의 유혹을 인내하며 뛰는 장거리 마라톤 코스다. 이 곳은 늘 안개가 껴있다. 외부인은 이 안개를 볼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닐면 간혹 부표처럼 떠있는 그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늘 천천히 달리고 있다. 저 너머에 목표가 있긴 한데,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컨디션 조절은 필수다. 두 가지를 절대 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지치는 것, 무너지는 것.
누군가는 그들이 지독히 외로운, 고독한, 처절한 일상을 보낼 거라 짐작하지만, 이 곳의 시간도 거기와 똑같이 흐른다. 어느 독서실의 몇 번 자리는 의자가 불편하다. 어느 골목은 사실 cctv가 없어 범죄를 조심해야 한다. 술집 간판이 창문을 뒤덮은 원룸이 답답하면, 100점을 받으면 서비스 5분을 더 주는 코인노래방에 간다. 인기 많은 편의점 맥주는 몇 번 냉장고 어느 칸 제일 안쪽에 숨어있다. 누군가는 그들이 밤마다 술을 마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술에 취해 길거리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우는 것도 그들이다.
어차피 그들도 노량도 밖에서 유배 온 사람들이다. 그저 목표를 이룰 때까지 잠시 머물 뿐이다. 늦던 빠르던 언젠가 반드시 떠날 곳이다. 그래서 딱히 애정이 없다. 추억을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들은 하늘의 별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그 점을 이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혼자는 당연하다. 아니, 혼자여야만 한다.
새벽, 창 밖에 누군가가 끄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들린다. 오늘 또 한 명이 노량도를 떠났다.
인터뷰 동영상 보러가기 : https://youtu.be/Ghm6FeD-rK0?si=eY6h5_N7vGcobmq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