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련
고향이란 원형의 그리움이 잠자는 요람이 아닐까. 그렇다고 고향을 단순히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라는 그리움의 사전적 의미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애타는 마음에는 몇 곱절의 간절함이 내재해 있지만 고향의 이미지에는 ‘애타는’에 배인 강렬한 붉은색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애타다’, ‘간절하다’의 질감은 강렬한 원색이 어울리지만 고향과 원색의 조합은 어쩐지 낯설지 아니한가.
이유가 무엇일까. 고향은 떠나버려서 아련하고 그립지만 닿을 수 없는 곳. 원색의 단순함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다면의 실체라 그러한가. 그리움이 아련함에 녹아 저 너머의 세상처럼 아득하여 모호한 회색의 질감으로 거듭나서 그러한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고여 있어 이토록 애타는가 보다. 엄마 젖가슴을 만지며 잠들던 유년의 내가 있고 젊은 엄마가 있는 곳. 총총한 시간을 함께 했던 넉넉한 친구가 있는 그곳은 텅 비었으되 꽉 찬 세상이다. 고향은 생각 만해도 긴 겨울밤 항아리 속에 쟁여둔 홍시 감을 꺼내먹듯 입 안이 달다.
무엇이든 처음 접한 것에 대한 각인은 무서울 정도다. 첫 경험은 뒤따르는 모든 경험을 압도한다. 설사 잘못 입력된 기억이라도 바로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던가. 지워지지 않는 첫 경험의 성지이기에 우리는 그토록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보다.
내 정서의 뼈대는 고향에서 비롯되었다. 색깔로 치자면 엷은 회색이다. 집 앞에 커다란 ‘자이산’이 있었다. 눈을 뜨면 산허리를 둘러싸고 차오르는 포근한 훈김을 마주 하며 자랐다. 이제 막 김을 내보내기 시작한 밥솥의 눈물 같은 연회색. 흰색도 아니고 검정은 더더욱 아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련한 안갯속 같은 엷은 회색이 그때부터 내 안에 자리했다. 잠이 들락 말락 하는 순간에 은은히 퍼지던 엄마의 자장가 같은 엷은 회색은 사는 내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진정제였다.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할 때 워워 쉬어가라 청하는 것도 엷은 회색이었다. 자이산을 감싸던 은막의 위로가 잰걸음을 고쳐 세우곤 했다.
들에 나갔다가 돌아올 저녁 무렵 굴뚝마다 피어오르던 연기도 엷은 회색이었다. 윗집 은아 네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오르면 그때부터 마음이 부풀기 시작했다. 먼저 시작한 굴뚝은 다른 굴뚝을 불렀고 동네는 하얀 연기를 수없이 피워 올렸다. 고단한 몸이 안식을 찾아 모여든 집은 엷은 회색의 아늑함에 감싸여 평화로웠다.
어쩌다가 해가 이울기도 전에 은아네 굴뚝이 기침을 하면 마음이 조급해 왔다. 방앗간에 떡 하러 온 손님들로 우리 집은 저녁까지 분주했다. 엄마는 떡을 만드느라 밥때를 넘기기 일쑤였다. 엄마가 돌아와야 우리 굴뚝도 엷은 회색의 평화에 동참할 수 있을 텐데, 저녁 무렵 찾아오는 손님들이 방해꾼 같아 눈을 흘기기도 참 많이 했다. 몸빼에 묻은 쌀가루를 털어내는 엄마의 소리가 들리면 마음은 벌써 굴뚝으로 향했다. 아슴아슴 피어오르는 연회색 뭉게구름에 행복이 주렁주렁 매달릴 상상에 벌써 배가 불러왔다. 엷은 회색은 엄마의 눈빛이고 사랑이고 포만감이고 행복이었다.
헤살 거리는 시냇물 소리에도 은빛 내음이 났다. 학교를 가려면 고개 하나는 넘어야 하는데 고개를 넘어서면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시냇물이 작은 바윗돌에 부딪혀 주춤거렸다. 그럴 때마다 은빛 물살이 튀어 올라 바위를 찰싹거렸다. 바윗돌을 들깨 우는 정겨운 소리에 소곤대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어제 헤어진 친구가 벌써 그립고 그들과 시냇물처럼 속살거리고 싶어 마음이 발걸음을 앞질러 달려가곤 했다. 은회색 서리가 주단처럼 깔려 있어 겅중겅중 뛰어도 숨차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음을 깨고 결 고운 봄물이 졸랑졸랑 흐르는 시냇가에서 시간을 잊고 물장구를 쳤다. 봄맛을 원 없이 들려주겠노라 벼르는 당찬 시냇물 소리에 문득 아득해지곤 했다. 눈앞에서 흐르는데 소리는 재 너머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은 은은함이 배어 있었다. 낭랑한 종소리가 아직도 꿈결에 있는 걸 보면서 그곳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새삼 놀라곤 한다.
정의가 힘을 잃고 반칙이 기세가 좋을 때 불끈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앞산의 지엄함이 앞서는 다리를 붙들어 주었다. 자연의 순리를 몸소 보여주는 그것은 들끓는 마음을 연회색으로 숙성시켰다. 사는 내내 시선을 먼 곳에 두는 법을 일러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생각 만해도 포근한 엄마 품 같은 고향집이 날아갈 뻔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집은 덩그마니 혼자 남았다. 나와 언니 오빠는 타향살이가 오래되어 돌아갈 수 없었고 집은 주인을 잃고 시름시름 앓았다. 몇 해 전에는 강풍에 머리가 벗어져 민망하게 낡은 속살을 드러내었다. 얼깃설깃 속곳을 입힌 후 기와를 올리면서 큰오빠의 한숨이 깊어졌다. 이대로 놔둘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던 일을 접고 집을 옮겨올 수도 없어 그 후로도 오랫동안 홀로 버려두었다. 갈수록 인적이 끊겨 나뒹구는 감잎 몇몇이 졸고 있는 집을 깨우는 게 고작이었다.
사철 내내 꽃으로 수놓았던 화려한 화단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감나무가 터줏대감처럼 우뚝 선 아빠의 화단에는 봄이면 목련과 작약을 시작으로 수국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때 없이 웃는 습관을 그것들로부터 배웠는지 속으로 애가 탈 때도 해맑아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팔손이 그늘 아래서 소리 없이 핀 백합이 하도 예뻐서 넋 놓고 들여다보기를 좋아했다. 도톰한 애기 귓불 같은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풀냄새 속에 밴 단내를 찾아 킁킁거렸다. 무심한 듯 보이나 한없이 너그러운 엄마의 손길을 그윽한 백합에서 더듬곤 했다.
울타리로 둘러친 탱자나무 우듬지는 싱그러웠다. 둔탁한 잎과 빽빽이 들어찬 가시가 냉엄함을 과시했다. 이파리가 초록 그늘을 만들고 그 속으로 숨어 열린 샛노란 탱자가 점점이 박혀 있었다. 가을이면 시큼털털한 향기가 훅 내 코를 스치는 것도 그때 우리 집 탱자의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예 집을 처분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형제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집을 구하려는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 바쁘게 움직였다. 시장 물건으로 취급받던 며칠간의 치욕을 겪었지만 집은 그대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막내 오빠가 사 들여 새로 단장하기로 했다. 마당을 넓혀 너른 잔디밭을 꾸밀 생각인가 보다. 안타깝게도 화단 오른쪽으로 우물이 있고 그 위로 장독대가 있는데 잔디밭에 밀려나 사라질 운명이다.
볕 좋은 날에 우물보다 두 계단은 족히 높은 장독대에 앉아있기를 좋아했는데. 배흘림기둥처럼 볼록한 항아리는 햇살을 좋아했다. 뚜껑을 열어 놓으면 간장이 햇살에 살을 비비는지 ‘뽀로롱 뽀롤’ 하는 소리를 내었다. 수다스러운 간장이 내 성급한 몸짓에 놀라 입을 다물어버릴까 봐 애가 탔다. 살포시 다가가 귀를 대고 앉아 있곤 했던 내 유년의 시간도 이제는 그리움으로만 남을 것 같다. 그래도 나를 성장시킨 정서의 구 할이 머무는 고향집이 살아남아 참으로 다행이다.
엷은 은회색 연기가 하늘 위를 하늘거리고 왁자한 웃음소리가 연기와 뒤섞여 진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을 잡으려 애쓰는 한 아이의 눈빛이 때 없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