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진기 Nov 22. 2015

한국과 미국의
‘친구’는 어떻게 다를까?

출처 : 네이버 한글사전,  2014 Merriam-Webster Dictionary

미국에서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다녔던 나의 경우, 지금까지 ‘연락’하고 한국에 방문하거나 해외에 가게 되면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은 있지만, 내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미국에서 사는 교포들도 대부분의 절친(Best Friend)들은 같은 한국인이거나 동양인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미국과 한국의 친구에 대한 개념이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위에 ‘친구’와 ‘Friend’ 정의의 차이점을 보자. 영어의 ‘Friend’의 의미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또는 ‘무엇이나 누군가를 도주는 사람’ 이다. 반면, 한국의 ‘친구’라는 개념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으로 미국의 ‘Friend’보다 더 깊은 감이 있다.


미국은 국가 자체도 넓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그런지 ‘평생친구’라는 개념이 한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같은 회사, 학교, 또는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가족들을 집에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등, 쉽게 가까워진다. 반면, 다른 회사나 지역으로 이사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미국사람들도 어렸을 때부터 평생 가져가는 친구도 당연히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차이점은, 미국의 경우 아주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일정한 거리가 존재하며, 이러한 거리 속에서 우정을 나눈다. 예로, 새벽 6시에 3~4시간을 운전하여 우리 엄마를 공항에 픽업 가달라는 부탁을 한국 친구에게는 할 수 있겠지만(Korean-American 포함), 미국 친구한테는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닌 경우 부탁하지 않을 거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예로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 몰래 한국 아이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기숙사 방 침대에서 같이 잠들곤 했는데, 이것을 본 미국 친구들은 우리들을 당연히 동성연애자인줄 알았다. 이들의 문화에서는 아무리 절친이라 하더라도 한 침대를 Share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팬티바람으로 자고 있는 우리를 보고 “Holy shit! I’m sorry!” 라며 당황하면서 뛰쳐나간 미국아이들이 여럿 기억난다.


코코넛 같은 한국사람들, 복숭아 같은 미국사람들

이러한 차이를 INSEAD의 Cross Cultural Management 교수인 Erin Meyer가 Harvard Business Review에 기고한 <One Reason Cross-Cultural Small Talk Is So Tricky>에서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친해지기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문화권을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한 코코넛에, 개인적인 이야기들까지 할 정도로 쉽게 친해지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문화권을 겉은 무르지만 속에는 딱딱한 씨가 있는 복숭아에 비유한다. 같은 서양(Western) 이라도 유럽권은 코코넛이 많고, 미국이나 브라질 등 미주(Americas)는 복숭아 문화권이라고 한다. 당연히 한국은 매우 단단한 코코넛인 것 같다.

*코코넛과 복숭아의 비유는 2000년, ‘Building Cross-Cultural Competence’에서 Charles Hampden-Turner과 Fons Trompenaars가 처음 소개


형, 동생, 누나, 언니, 오빠…… 그리고 친구.


회사에서 외국인 ‘동료’들을 소개할 때 아주 쉽게 ‘My friend’는 붙여도, 한국말로 선뜻 ‘친구’로 표현하기는 어색한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친구’의 뜻이 특별하고 굉장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한살이라도 더 많으면 형, 누나, 언니라는 호칭이 붙고 우정을 나눌 순 있지만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또한, ‘가깝게 오래’ 지낸 사람이어야 함으로 오랜 기간 동안 같은 동네, 학교, 회사 등에서 부대끼며 지내야지만 ‘친구’가 된다. 심지어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구’보다는 ‘동료’ 정도에서 머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듯, 우연히 같은 년도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여러 제약조건을 다 맞추고 10년, 20년 이여지는 우정이 한국의 ‘친구’이다. 멋지지 않은가? 이런 깊이 있고 소중한 친구들이 한국의 빡빡한 삶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지 않나 싶다. 


맘껏 퍼가주세요. 다만 출처만 밝혀 주세요. 

www.jinkieun.wordpress.com

매거진의 이전글 월급쟁이 마인드와 전문성의 결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