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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계영 May 27. 2016

내가 줄 수 있는 건, 수선화 일곱 송이뿐

어린 시절 새 학년이 시작되면 낯선 교실에 들어서던 그 어색함과 불안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 반이 보통 60명을 넘기기 일쑤였는데, 거의 처음 보는 얼굴들 중에 같이 어울릴 만한 인상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던 시간이었다. 물론 한 달만 지나면 상황 파악은 끝나 있었고 벌써 몇몇과는 짝패를 이루어 같이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면 내가 고른 친구들은 어떠했는가? 기억해 보면, 일단 좀 편안해 보이지만 피부는 매끈하고 잘 생긴 편들이었고, 대개는 쌍꺼풀이 있었으며 환한 얼굴들이었던 것 같다. 

어떤 아이들은 먼저 내게 다가오려고 했던 것도 같지만, 거만하게도 나는 그런 시도엔 오히려 감점을 주었고 내가 보기에 호감 가는 캐릭터들에 마음을 주었다. 장기(長技)가 좀 있다거나 말주변이 좋으면 금상첨화였고 호기 넘치는 친구에겐 유독 끌렸었다. 우리의 인간관계의 시작은 그렇게 정해졌다. 의식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린애가 달콤한 초콜릿에 끌리듯, 외모 좋고 능력 있어 보이는 첫인상은 내게 90점은 먹고 들어갔던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행동했다. 나는 숫기가 좀 없고 ‘있어 보이게’ 하는 연기 능력은 부족했지만 본능적으로, 기회가 나면 여럿 앞에서 노래 실력을 뽐내거나 책 많이 읽은 티를 내는 일엔 주저함이 없었다. 그것이 다른 애들에게 호감으로 작용했을지 아니면 질투심을 유발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할 것 없이 나는 실제 나보다 더 과대포장된 자신을 연출하려 했고 같은 반을 넘어 학교 내 여러 친구들 기죽이는 오만함으로 가득 찬 십 대를 보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에 양곤이라는 정말 착한 애가 있었다. 키가 커서 덩치가 내 한 배 반은 족히 되었고 당시 사정으로는 우리집보다 돈도 많은 집 애였다. 양곤이는 하교 때마다 자주 군것질거리를 사서 나눠주었고 집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부러 우리 집 근처까지 돌아서 자기 집에 갈 정도로 애정을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양곤이는 스스로의 취향을 항상 내게 맞춰주는 그런 멋진 인간성의 소유자였지만 그때 나는 그런 양곤이가 만만했다. 그 후 고등학교가 서로 갈렸고, 대학 갈 때가 되었을 때 양곤이는 재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 첫 해를 마쳐갈 즈음 서울에 있는 내게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양곤이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 친척집에 머무르던 양곤이를 만났고 진로 문제로 기죽어 있던 양곤이의 고민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형식적인 위로와 격려를 건넸던 기억에 지금도 뒤통수가 뜨겁다. 

오십이 넘은 내가 지금은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를 다시 생각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다면 나는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갖나? 영향력 좀 있어 보이는 지적인 사람? 대학 교수나 잘 나가는 사업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그런 사람? 혹은 젊지만 나이 같지 않게 자신감 가득하고 얼굴이 빛나서 무슨 일이라도 곧 낼 것 같은 사람? 아니면 자신감을 잘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사람? 혹은 솔직하고 자신을 과대포장하지 않는 사람? 양곤이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하는 사람? 

그때 양곤이네 친척집 뒷베란다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던 80년대 신반포 한신아파트 뒤쪽으로 빈부가 대조되던 신사동 구옥들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장면은 사람을 골라 상대하던 알량한 처신과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오버랩되면서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다. ***

사진: Jonquils (Kelly Casa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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