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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Kyoo Lee Feb 06. 2022

매번 같은 후드티를 입는 이유

팬심과 동네 이벤트

요즘들어 아내가 저에 대해 자주 묻곤하는 질문 중 하나는 맨날 같은 후드티를 입는 이유가 무엇인지입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다른 후드티도 많이 있으면서 왜 꼭 그 후드티를 고집하는지입니다.


아내의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아내가 말한 “그 후드티”는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Costco에서 샀던 정말 평범한 후드티입니다. 따라서 그 후드티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추억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을 계속 이어가보니, 오히려 정반대의 이유를 찾습니다. 그 후드티가 전혀 특별하지 않고 평범해서. 보다 정확하게는, 그 후드티만 내 팬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어서.




이렇듯 저를 향한 아내의 질문에 대한 답이 “팬심”에 있다보니, 시애틀에서의 저의 팬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려합니다.


1. University of Washington


유학생으로 시애틀에 온 만큼, 학교는 제가 가장 먼저 소속감을 느끼게 된 그룹이었습니다. UW (Univ of Wisconsin 과 구별하기 위해 많이들 “유덥”이라고 읽습니다)을 대표하는 색깔은 보라색이고 마스코트는 허스키인데요, 이 학교의 보라색 후드티가 제가 미국에 와서 가장 먼저 샀던 후드티였습니다.

박사과정 Besties 중 하나인 Jay와 함께 학교 행사 중 찍힌 사진입니다. 포즈를 취해볼 찰나도 없이 찍혀서 조금 아쉽네요 ㅎㅎ

UW의 많은 스포츠팀들 중 제가 가장 열렬히 응원했던 팀은 미식축구 Football 팀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중 하나인 football 의 경기장 입장료는 프로/학교팀을 불문하고 상당히 비싼편이었는데요, UW의 학생들은 정말 좋은 가격에 시애틀에서 열리는 UW 경기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고, 가족 1인의 티켓까지 함께 살 수 있어서 아내랑 자주 게임을 보러 다녔습니다. 다만 학생 티켓 지정석은 지붕으로 덮여있지 않아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그 비를 맞으며 떨어야 했었죠. 매년 시즌권 판매가 동날만큼 UW Football은 학생들만이 아닌 졸업생을 포함한 시애틀 전체의 행사라 할 수 있을만큼 인기있는 동네 행사였고, 그마만큼 시합이 있는 날이면 경기장 주변의 교통이 마비되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원래 이렇게 얼굴과 실제가 다른 사진은 잘 안찍는 편인테 이 사진만큼은 꼭 찍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UW 친구들에게 나 사실은 학교팀에서 비밀리에 풋볼을 해왔다고 고백했더랬습니다.



2. Seattle Mariners


야구팬인 저로서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Major League 야구장에서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더더군다나 처음 시애틀에 와서 보러 간 경기의 상대팀이 무려 New York Yankees였다니! 정말 감격스런 순간이었습니다.


Mariners v. Yankees in 2009

사실 Mariners는 성적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도 그랬고, 아쉽게도 지금도 번번이 가을야구를 못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이 팀이 빛났던 순간들이 있었고, 그 중 제가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에 “King” Felix가 있었습니다.


Hernandez Felix는 2005년에서 2019년 사이에 Mariners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을 했는데요, 그 커리어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가 2012년에 타자 한명도 1루에 보내지 않은 Perfect game을 달성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기록으로는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23번째였다고 하네요.


그는 그렇게 시애틀에서 “King”으로 불리었고, 그 역사적인 perfect game 이후로 그 기록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perfect game 이후에 King Felix의 계절이 왔습니다. 사진에보이는 노란 옷도 나눠주고요.



3. San Francisco Giants


엥? 이건 시애틀 팬심이 아닌데? 네 맞습니다. 사실 제 마음을 사로잡은 프로야구팀은 Giants였습니다. Tim Lincecum, Buster Posey, 그리고 Madison Bumgarner 가 활약했던 Giants는 정말 황금기였고, 2010년, 2012년, 그리고 2014년에 거짓말처럼 짝수해마다 World series 우승을 가져갔습니다. 마침 제가 딱 그 시기에 미국에 있었네요.


사실 Giants의 구장이 있는 San Francisco에는 그 세번의 우승 중 첫 우승 직후인 2010년 겨울에 딱 한번 가봤습니다. 비록 경기는 못봤지만 야구장이라도 방문하고 싶어서, 함께 여행갔던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그 교통체증 심한 퇴근시간의 다운타운을 지나 At&t park에 가서 기념품샵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함께 여행했던 분들께 참 죄송한 팬심이었네요. 그래도 그렇게 어렵게 방문한 야구장에서 2010년 우승 기념 후드티를 사서 여행 내내 즐겁게 입고다녔습니다.

Giants 우승을 기념하며 San Francisco 여행을.

그리고 2년 후에는, 2012년 우승 기념 후드티를 아내가 생일선물로 사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우편으로 받아보았지만, 그때도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번엔 시애틀에서 Giants 우승기념 후드티 입고다니기



4. Seattle Seahawks


다시 Football 입니다. 이 팀은 시애틀의 풋볼팀인데 오랜기간 동안 정말 잘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만도 미국 최고의 스포츠 축제인 Super Bowl에 두 번 나가서 한 번은 우승을 하고 다른 한 번은 정말 아깝게 준우승을 했습니다.


풋볼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이지만, 프로팀 경기는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말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내 직장에 어떤 회사가 티켓 두 장을 기증했고, 직원들 중 원하는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서 추첨으로 그 티켓을 받을 사람을 정했는데… 신청을 했던 200명이 넘는 직원들 중에서 아내만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런 꿈만 같은 일로 차로 지나가기만 했던 Seahawk 구장을 드디어 가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자리도 어찌나 좋은 자리인지, 정말 코 앞에서 선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 평생에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거라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그 자리의 티켓 값이 한 장 당 $400을 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늘 아내의 회사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Zoom 이 필요 없었습니다.


쓰다보니 중간이 길었네요. 그래서 왜 늘 같은 팬심이 담기지 않은 후드티를 입는걸까요?


시애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무슨 옷을 입는지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코멘트는 더더욱 없지요. 미국 동부와는 다르게 옷차림도 상당히 수수하고 캐주얼한 편입니다. 비가 많이 오다보니 비를 막아주는 옷들을 많이 입는 정도가 특징이랄까요?


그런데 정말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습니다. 팬심이 담긴 옷을 입을 때.


이 때는 사람들이 내 옷을 보고 말을 걸어옵니다. UW의 보라색 후드티를 입고 장을 보러가면 계산해주시는 분이 “오늘 Husky 게임이 있었던가?” 이렇게 물어봐주시고, Mariners 옷을 입고 나가면 어떤 아저씨가 요즘 팀이 어떤것 같냐고 그리고 오늘 게임 이길 것 같냐고 또 말을 걸어주십니다. Seahawks의 경우에는 워낙 시애틀 사람이 모두 팬이니 뭐 그러려니 하겠지요.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을 만나다보니, 몇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주로 경기가 있는 날 응원하는 팀의 옷을 많이 입고다는다는 것 (Seahawks의 경우에는 가끔 평일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팀의 유니폼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시애틀 팀들의 경기는 그 자체가 동네 이벤트라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정을 꿰고 있다는 것, 경기를 보러가지 않아도 그 옷을 입는 것을 통해 응원을 보낸다는 것. 그리고 이 사람들이 본인이나 다른 사람의 옷차림에는 관심이 적지만 팬심 담긴 옷에는 애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말이죠.


이러한 팬심 문화를 만나면서,  자신도 조금씩 의식 아닌 의식에 동참을 하고 있었습니다. UW Football 경기가 있는 토요일에는  보라색 후드티를 입고, Seahawk 후드티는 주로 일요일에 입고. Mariners 후드티는 야구 경기가 거의 매일 있는지라 요일은 상관없지만 그래도 봄에서 초가을까지 시즌 중에만 입으려고 하고. Giants 우승 기념 후드티는 솔직히 시애틀에서 입고 다니기는 조금 신경이 쓰여 가급적 집에서만 입으려 합니다. 팬심이 충분용감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거 따지고 저거 헤아리다 보니, 결국 아무런 고려 없이 언제든 입을 수 있는 팬심이 드러나지 않는 후드티를 고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튀기 싫고 사람들에 묻혀가길 좋아하게 된 제 성향도 한 몫하겠지요.


이 글 덕분에 돌아보니, 팬심으로 즐거웠던 시애틀에서의 어느 하루들이었습니다. 사실 요즘은 예전만큼 게임을 보러가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지 않고, 코로나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 같은데요, 그래도 언젠가는 이번에 새로 창단한 아이스하키팀인 Seattle Kraken 게임도 보러가고, 이 팀의 팬이 되어 연한 녹색의 큰 “S” 글자가 귀여운 후드티를 살까말까 고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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