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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di Mar 22. 2023

아내가 사라졌다.

이게 시작일지 끝일지.

 혜원이 사라진 건 하루동안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천천히 사라지는 방법을 택했다.   가장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부터,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천천히. 처음에는 머리카락이었다. 길고 긴 머리카락이 사라졌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 "

그때 아이가 엄마를 불렀다. 혜원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나의 변화를 좀 눈치챈 걸까? 하지만 아이가 입을 열어 한말은 그녀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엄마, 우리 내일 외부체험학습 있어서 돈 좀."

"

".... 담임선생님이 어제 전화 왔던데. “


”뭐? 담임이 왜? “


”.... 급식팀이 코로나 걸려서, 인원이 부족해서 내일만 학부모 봉사 좀 해줄 수 있냐고. 내가 학기 초에...... 봉사가능 여부에 동그라미를 쳤었거든.."


그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라는 말은 삼킨 채 혜원은 물었다.


".... 왜 거짓말했니?”


"아이 몰라 C발! 돈 주기 싫으면 말던가!  줘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


아들은 되려 신경질을 내더니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혜원은 한숨을 쉬며 이제는 허전한 머리카락이 있던 자리를 만져보았다.

    한 때  그녀가  모든 것을 바쳐 키웠던 목숨도 내어줄  수 있었던 아이는 점점 거짓말에 익숙해지고, 뻔뻔해져 갔고, 그리고 가끔 필요할 때만 애교를 부렸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더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않는 아이가 들어있는 ,방금전에 아이가 들어간 상자의 문을 바라보았다. 한때 저 아이가 내게 얼마나 큰 삶의 원동력이었던가. 무엇을 해주어도 아깝지 않았는데....이제 아이가 엄마를 부를때라고는 돈달라거나,쿠팡이츠를 시켜달라거나, 무언가를 요구할때 뿐이다.  그녀는 천천히 상자의 문을 닫고 곱게 포장했다.


 다음에 혜원에게서 사라진것은 얼굴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사라졌지만 포장된 상자속에서 오가는 아들이나, 그 상자들이 있는 집의 문을 여닫으면서도 남편은 알아채지 못했다.


얼굴과 머리카락이 없는 그녀는 차려준 저녁밥을  먹는둥 마는중하며 동시에 축구방송에 코를 박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축구는 끝날거야. 그녀는 거슬리는 신경을 애써 추스르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맞다. 축구경기는 끝났다.

그러나 근은 이번엔 핸드폰으로 기사 검색을 하다, 마침 된장녀 기사가 나오자 침튀겨가며 욕하기 시작했다. '된장녀'는 근의 발작버튼과도 같아 유난히 싫어했다.


"이봐 이봐. 이게 말이돼? 무슨 학부모 모임에 가방 렌트를 하냐고? 하 참 ! 세상 말세야. "


가방렌트, 옷렌트가 학부모 모임시즌에 따라 성행한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혀를 차는 남편이었다.

그녀는 남자의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들었다.

아, 맞다, 이게 루틴이었지.

 

늘 그는 된장녀 기사들을 보면서 혀를 차고, 비난을 한다.  그의 아내, 그녀는 사실 정반대의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그래서인지, 유난히 그런 기사들을 하나하나 족족 읽어내리며 아내에게 경고를 날리는것같다.  이런 것들은 늘  있던 풍경이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그만인데, 오늘따라 그녀의 심기는 편안하지않았다.  맹장떼고 나서 처음으로, 막힌 플러그라도 뚫린것처럼 어떤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왜 이런 생활이 루틴이 되버린거지?'


찌질한 기사에 찌질한 화를 내는 남편. 해주는걸 당연시여기는 아들. 터실터실한 찢어진 앞치마를 입고 머리카락이 없어지고, 얼굴이 없어진 자신,그다음으로 없어진것은 브레이크였다. 인내심이라는.


"그게 뭐, 어쨌다고? "

"뭐?"

대답을 듣고자 씨부렸다기보다는 늘 하던 주접같은거여서, 갑자기 구석에서 들려온 그녀의 말에 근은 얼떨떨해져 되물었다.


 " 가방 렌트가, 뭐 어떻다고. "

 

"아니, 분수가 안되는 것들이 헛바람만 들어서는...왜 쓸데없이 가방, 옷,그런거나 렌트를 하고 꾸미냔말야?

   일종의 사기아냐? "

 

"내가 보기엔, 되게 알뜰해보이는데? "


"뭐?"


" 부모 오라는 모임이 있어. 벌거벗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런데 옷이 없어. 추리닝에  목늘어난 티셔츠외에 자기 소유물이  없는 여자들도 있어. 맨날 애 밥먹이고 학교 허둥지둥 챙겨보내고 학원 보내고 남편과 자식 옷은 사도 자기는 집에만 있다며 옷 한번 잘 안사는 그런 여자들도 애 학교에서 모임을 한다고하면, 자기애가 자기때문에 부끄러울까봐 그래도 공들여 옷을 입으려고 하겠지. 잘 보이고 싶은 모임이잖아. 너무 추레하면 내 아이가 얕보일수도 있고. “


"그러니까 있는데로 하면 되지, 왜 연기를 하냐고? 허세아냐?  "



아내는 참을성있게 대답했다,


""맞아. 솔직히 그런 모임이 한두번 있을것도 아니고 아예 하나 사는게 장기적으로 가성비가 높은 일이지. 팔 수라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렌트를 하는걸까? 자신의 소유물로 만드는게 마음도 편하고 나중에 되팔수도 있는데 왜 굳이 . 아마도 안목은 높을꺼야? 물론 허영일수도 있고. 그런데 그 안목이나 허영을 타협하긴 어렵지만,또 자기 소유물을 만드는데는 눈치를 보는. 그런 사람들이 렌트를 할거야.  그들은 남편, 아이, 가정의 재정을 생각해야만 하는... 그러니까 캐시플로우가 넉넉치 않은 사람들이지.그래서 자신을 위해 소비를 안하기로 결정한거야. 허영심이 있는데도.  "


"넌....넌 그런거 없잖아. 네가 올바른거지."


근은 아내를 치켜세웠다. 그간  자신만을 바라보고 써포트하던 여자에게 계속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그 뉘앙스로. 그 추켜세운 칭찬을 아내는 간단히 쳐냈다. 인내심이 사라진 덕분이었다.


" 아니, 내가 없어보였다면, 그건 내 참을성이고, 네 착각이야. 그리고 허영에 대해 말이 나와 한마디 더 하자자면, 솔직히 허영심이 진짜 있는 여자들이라면, 분수가 되든 안되든  카드깡이든 카드할부든 소유하고 말았겠지.난 그냥 되게 알뜰하다. 가엾다는 생각이 먼저드는데. "


"너 무슨 헛바람이 들어서 그런 X들을 싸고 도니? 그럼, 이런 년들이 나중엔 학부모 총회, 이런데 돈 지랄로 발라서 오고 그런게 올바르단 뜻이야? "


"난 그 기사자체가 너무 유치한것같아.너는 처음만나는 사람들 모임에 대충 추리닝 입고 가? "


"누가 뭐라냐? 당연히 그건 제대로 갖춰입고 가겠지 ! "


"당연하지.그런걸 굳이 하나하나 굳이 끄집어내서 비난할 필요가 없다고. 입다보면 샤넬이고 에르메스가 될수도 있고 보세가 될수도 있는것뿐이고. "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근의 표정은 멍청했다. 그녀가 얼굴이 사라진걸 근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근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당신,그거야?"

"뭐?"

"갱년기야?"

"....."


다음순간, 쾅 하는 소리가 나 근은 찔끔 놀라 뛰었다.  안방문이 그의 코앞에서 부서질듯 닫힌 것이다.


근은 헛소리를 찍찍 날리긴 해도 간이 작은 사내였다. 대학 CC였던 그의 아내의 별명은  휴화산이었던 기억이 왜 그때 떠올랐을까.  


'사화산이 아닌....휴화산! '

잠긴 안방문을 두드리던 근은 바로 벌컥 열리는 문에 코를 찧고는 주저앉았다.

"아아악 !  내 코! "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냉랭하게 트렁크를 집안에서부터 끌고 나갔다. 드르륵드르륵. 트렁크 바퀴가 끌리는 소리.

"야...야! "

 

  혜원의 손을 낚아채려고 트렁크를 끄는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어쩐일인지 손이 잡히지않아, 근은 꼴사납게 허우적대다 넘어졌다.  혜원의 손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근은 모르고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쾅 ! 이번엔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그 뒤로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한 근이 망부석이 된채로 굳어있었다.  



*


며칠간 그녀는 집에 돌아오지않았다.

그러다 돌아오겠지 싶어 내버려두다 일주일이 된 어느날,근은 비로소 그녀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라는 건조한 음성만이 떴다.


아내의 머리카락, 얼굴,인내심,손이 사라졌을때도 몰랐던 근은, 아내의 핸드폰번호가 사라진건 알 수 있었다.

전화가 없다. 그것이 근이 처음으로 느낀, 충격이었다.   


 아내는 항상 근의 뒤에 있었기에,  근이 뒤돌아봤을때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때 아무도 없는것이 생소했다. 집안꼴은 엉망진창이었다. 널부러진 컵라면 부스러기, 귀신 나올것같이 우중충하고 더러운 개숫대와  움직이지않아 살만 쪄있는 아들의 불평만이 가득한 집.


"아빠 왔어?"

"어, 아빠왔다. "

"엄마는?"

"어, 엄마는.... 외갓집에 가셨어. "


거짓말이다.

"흐음...나 배고픈데, 그럼 밥은 누가 해줘? "

"...뭐?"

"컵라면 질렸어. 그리고 내 실내화도 빨아야하는데. "

"....니 실내화는 네가 빨아. 네가 먹은것들좀 치우고. "

"뭐? 나 겨우 열세살이야!"

"열세살에, 실내화 하나 못빤다고? "

"당연하지, 시키면 그거 아동학대아냐? 아빠,쿠팡이츠로 밥이나 시켜줘. "

"넌 엄마 없는데, 걱정도 안돼냐?"

"걱정은 왜 돼?그게 무슨 상관인데?  자기 할일 내팽개치고 나갔는데. 봐바, 이번주 내 손톱도 아직 안 잘라줬잖아! "

"열세살이 아직도 손톱도 못자른다고....?"


엄마가 없다는데, 밥얘기나 꺼내고 자기 걱정만 하는 아이의 모습이, 근은 영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동안은 바빠서 육아는 와이프에게 맡겨놓고, 밖으로 밖으로 나돌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나날들이었다. 아내의 최선을 다해 가리고 있어 보이지않던 구멍사이로 많은 것들이 보였다.


 ' 싸가지없는 애도 그 중 하나고....'


근의 이마에 힘줄이 불거졌다.  휴화산이었던 아내는 평소엔 고요하고 잠잠했다. 재가 쌓이고 쌓이고 퇴적물이 쌓이고 쌓였을까.  그러다가 혹시 휴면기를 멈추고 활화산이라도 된것처럼 터지고 사라진걸까.


근은 그제서야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네....실종신고 때문에요. 네. 이름은 신혜원, 나이는 42세....실종일자는 7일전 금요일아침입니다...네.... "


*

사람은 잘 변하지않는다.

사람이 변하는 계기가 있다면 ,죽음이거나 죽음에 준하는것...누군가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때와 같은 극한 스트레스가 이유가 될수는 있을것이다.



근이 의아한것과 마찬가지로 혜원도 의아해하고있었다.  늘 톱니바퀴가 빠질틈도 없이 똑같은 루틴속에서 왜 빠져나오고싶어졌는지, 혜원도 스스로의 변화가 의외였다.  왜 새삼스레, 루틴이 참기 어려워진걸까, 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혜원은 배가 아팠던 어느 눈부신 봄날을 떠올리지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맹장수술 이후인것같기도하고.  '


그말이 맞다는 듯 새삼 오른쪽 아랫배의 복강경 수술 자국이 오늘따라 가렵게 느껴졌다.


네 달 전, 혜원은 아이의 간식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몰려드는 통증에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다. 먹은것을 다 게워내고 나서도 통증은 줄어들지않았다.


오른쪽아랫배, 부위가 너무나 명확한 고통과 토기에 식은땀이 줄줄 났다.


"엄마 ! 아직도 간식 안줘?  배고파 ! 배고프다고 ! "


책가방을 내팽개친 아들이 노래를 부르며 방문을 걷어쳤다가 배를 싸쥐고 있는 혜원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어...미안.... 내가...엄마가 배가 좀 아파...아마 맹장염인것같은데 수술하러가야할거같은데 어쩌지....?"


"뭐? 맹장염?  수술? "

아이는 장난스럽게 수술~꺄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발로 차서 열었던 방문을 쾅닫고 자기방에 쏙 들어갔다.


"....뭘 챙기지..."


새삼 아랫배에 통증이 밀려들어와 하얗게 질린 혜원의 귀에 아이가 만화책을 들고 낄낄거리며 보는 소리가  파도의 밀물과 썰물처럼 잘 들리지않다가 들렸다 했다.  


고통을 참느라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송 맺혔다.  입술을 깨물고 입원하러갈 준비를 했다. 머리고무줄, 속옷, 칫솔, 치약,... 신분증...아...간식달라고 했었지...

아이가 먹을 간식까지 식은땀을 흘리며 준비해두고서야 그녀는 카카오택시를 불러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가서 CT를 찍고 맹장염이 확실해지고나서야 그녀는 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맹장염이 맞다고해서, 그래서 전화한거야. 여기서는 수술을 할 수 없어서, 다른 연계병원에 가야하는데...좀 데려다 줄 수 있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묻는 그녀에게 전화기 너머의 근은 곤란하단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거 좀 끝나고 가야하는데, 수술은 좀 기다렸다 해도 되지? 맹장염은 흔한거라던데"


".....배가 너무 아픈데...그리고 너무 오래걸리면 복막염도 될수 있다고 하던데..."


"아아. 그렇겠다. 그럼 가봐."


"가봐....?"


"응. 먼저 수술 수속하고, 수술하고있어. 어디서 수술하는지 나중에 톡으로 남기고. 그럼 이따가 내가 거기로 갈께~ 알았지? "


"....알았어...."


애도 혼자 낳으러 갔던 내가, 뭘 바라고 전활 한걸까. 혜원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진통제 수액을 달고있는 터라 아까보단 편했으나 여전히 통증은 존재했다. 혜원은  지체없이 연계병원에서 가장 빠른 수술 일정을 여쭈고, 수술을 받고, 입원을 했으며, 혼자서 퇴원했다.


수술이 끝난후 오랜시간은 아니었고, 복강경으로 인해 남은 상처도 크지않았다. 장기내에 퇴화되어 고통만을 주었던 작은 맹장을 제거하고 나오는 날, 혜원은 자신의루틴에 가지고있던 작은 미련도 함께 잘라내어버렸던걸까. 루틴을 제거하고 나온 혜원은, 이제 어떤 루틴속에 들어가야할지 몰랐다.




*

"죄송합니다만, 이게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이후로 신혜원씨의 행적은 저희도 알 수 가 없네요."


근은 주먹을 꾸욱 쥐었다.

CCTV 에 나온 혜원은, 작은 트렁크를 들고 공원에 서있었다. 항상 왜이리 작은 집에 너혼자 덩치가 크냐고 놀려댔던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에 근의 마음은 알수없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으로 차있었다.

 혜원은 저렇게 작았는데.작은집에 처박혀 점점 사라져도 몰랐을정도로.

 한때 화학과 여신으로 불렸던 혜원답게 작고 하얀 얼굴은 여전히 예뻤는데 왜 보지않았을까.

요 몇년간 단 한순간이라도 제대로 그녀의 얼굴을 본적있던가.  낯설게 느껴지는 혜원의 얼굴이 잠시 CCTV를 응시했다.   그 혜원의 응시가 꼭 자기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것같아 근은 잠시 가슴이 서늘했다.


다음 순간, CCTV가 꼭 전파방해라도 있었던것처럼 치직거렸다.


"이게 왜 이래요,,,?! 왜 영상 품질이 ,이거밖에 안돼...! "


혜원의 얼굴이 잘 보이지않는것이 애달파 근은 소리를 질렀다. 경찰은 무심하게 근의 말을 잘랐다.


"가끔 그럴때가 있습니다. 태양흑점활동같은 전파방해까지 우리가 해결할수는 없거든요. "


 근의 공식은 태양의 흑점에 우선하지 아니했고, 근의 공식은 근을 도출해내지 못한채로, 틀린 근만이 경찰서에 오도카니 남은채로, 그것이 혜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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