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메뉴 하나 결정하기도 어려운 당신에게
"[돈, 사람, 건강, 결혼, 일] 이 중에서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말해봐."
내가 20대 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고 다녔던 질문이다. 나는 20대 때부터 인생을 잘 살기 위해 나름 치열하게 고민을 했었는데 그 당시 나에게 중요한 순서로 일 > 건강 > 사람 > 돈 > 결혼 순이었다. 돈보다 일이라니? 사람보다 일이라니? 결혼보다 일이라니? 그 정도로 일, 커리어란, 나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20대 시절, 일에 몰입하고, 일이 재밌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멋져 보이고 부러웠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나였지만 어쩐지 나만 일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아 혼자 조급해졌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해!'
하지만 현실은 싫어하는 것들만 쌓여갔다. 나와 맞지 않는 일들만 늘어갔고, 자연스레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돼 버렸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일이 돈벌이가 되자 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취미로 골프나 테니스, 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술과 음식으로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20대 때 많은 것을 경험해 봐야 된다고 생각해서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이곳저곳 도처를 옮겨다니며 경험해봤지만 딱히 이거다 할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육아를 하면서 다시 나의 커리어에 대해 고민했을 때, 나는 '나무의사'라는 직업에 상당히 관심을 가졌다.
새로운 직업이고, 시대적 흐름에서 분명히 필요한 직업이고, 내가 무엇보다 '사'자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람을 고치는 진짜 의사는 되기 어렵지만, 그래도 나무의사 정도는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응시조건을 갖추고 시험을 치고, 실습을 하고 최소한 3~4년은 잡아야 했다. 그래도 자신 있었다. 나무의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인한 일의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다.
응시조건을 갖추기 위해 식물보호기사 자격증 먼저 취득해야 했다. 육아하는 틈틈이 공부했고 두 달 만에 필기에 붙었다. 곧 3달 후에 실기 시험이 있었다. 시험 접수일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득 하기 싫다는 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부야 어렵지 않았다. 앉아서 공부하면 되는 거니깐. 외우면 되는 거니깐. 실기 시험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 나는 한 번 공부 시작하면 붙을 자신은 있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 나는 그걸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냥 공부가 하기 싫었다. 실기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내가 나무의사에 재능과 흥미가 없음을 깨달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남편이티움이(LG에서 나온 식물 키우는 기계)를 선물해줬다. 하지만 얘네들이 쑥쑥 커도 딱히 큰 감동과 보람을 못 느꼈던 나였다. 아파트 옥상 텃밭에서 나름 깻잎, 상추, 토마토를 키우고 있는데
물 주러 가기 귀찮아서 매일 오늘 비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심지어 딸 어린이집에서 보낸 작은 화분도 사랑을 안 줘서 금방 시들시들해지더니 잎이 노래졌다.
이런 사람이 무슨 나무의사란 말인가? 백번 천 번 내 길이 아니었다. 고민은 다시 원점.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게 없을까?
내가 열정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나는 20대 때부터 주말마다 다녔던 도서관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곳이 그 당시 나에게 안식처였던 사실도 떠올랐다. 지금까지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다녀오는 도서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도서관... 내가 책을 좋아하는군. 책을 좋아하니 글을 좋아하는 것이군. 글을 좋아할 것이니 글을 써봐야겠군.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한 나의 직감에 쓰기 시작한 글쓰기. 실력은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았다.
나는 나 스스로와 대화하는 법을 차츰 알기 시작했고, 글쓰기에 탄력이 붙어 점점 글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글 쓰는 게 재미있고, 감히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작가라는 꿈이 생겨버렸다.
원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거운 일은, 좋아하는 음식이나 옷처럼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분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에 드는 점심 메뉴 하나도 이토록 선택하기가 어려운데,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라고 물어본들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만 만들 뿐이다.
당신의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
당신의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있는가?
당신의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가는 곳이 있는가?
거기서 답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