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북오름 Mar 22. 2023

민폐녀의 타임

우리 생애 첫 한달살기 #11


저녁이 가까이 되자
 "윙즈 오브 타임"쇼를 보러 공연장으로 갔다. 

중앙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미리 클룩에서 사둔 입장권을 보여줬는데 매표소로 가라고 한다. 우리가 산 티켓은 매표소를 들르지 않아도 되는 바로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혹시 몰라 매표소로 갔더니 거기서도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매표소에 있는 아저씨는 우리 티켓을 보더니 큐알을 사진으로 찍어 어딘가에 보내고 우릴 그곳에서 한참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결국 5번 게이트로 가라고 한다. 갔더니 그곳에서 입장 줄을 서고 기다리면 되는 건데 애먼 곳에서 시간만 낭비했다. 그래도 한 시간 전쯤 서둘러 가 있어서 줄은 앞쪽에 설 수 있었다. 공연 40분 전쯤 입장이 시작되고 우린 맨 앞자리 가운데 앉았다. 계단식 스탠드라 어느 자리든 잘 보이겠지만 맨 앞자리는 앞에 사람이 없으니 다리도 뻗을 수 있고 장애물이 없어 더 잘 보이는 장점이 있다. 덥기도 하고 모기에게도 뜯기고 있었지만 좋은 자리에 앉아 쇼를 기다리며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다 보니 기다림의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내 옆자리엔 유모차가 있었다. 

옆에 앉은 가족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유모차가 자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커플이 유모차를 치워달라더니 내 옆에 앉았다. 두 명이 앉기에 여유로운 자리는 아니었는데 나보고 불쑥 여자가 옆으로 가란다. 옆으로 조금 움직여 자리를 내어주었다. 관람하러 왔으니 좋은 자리 앉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니까. 그다음은 내가 찍은 사진을 옆에서 보더니 거기가 어디냐며 묻는다.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남의 핸드폰을 그렇게 옆에서 노골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게 좀 의아했다. 그러더니 나한테 커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며 앞으로 나가 이래저래 포즈를 취한다. 내가 자신의 전용 사진사라도 되는 듯 이렇게 찍으라 저렇게 찍으라 지시하는 태도에 슬슬 화가 났다. 짜증이 밀려오지만 여행의 일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쇼가 시작하기 바로 전 자리를 비우길래 안 왔으면 좋겠다 했는데 웬걸 작은 케이크를 가져오더니만 라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관람석을 다니면서 라이터 있는 사람을 찾아댔다. 쇼가 시작하면 남자 친구의 생일 사진을 찍어야 하니 나보고 사진에 내 모습이 걸릴 수 있으니 옆으로 비켜달라고 한다. 세상 오랜만에 만난 민폐녀였다. 쇼가 시작되면서 여기저기 불꽃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폐녀는 뒷자리에서 사진을 찍겠다며 말로는 "익스큐즈미"라고 하며 벌써 내 팔을 옆으로 밀고 있다. 짜증이 나 자리를 비겨주는 척 엉덩이를 들었지만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공연에서 자기네 이벤트를 하겠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걸 방치하고 있는 스텝도 이상하고 좋다고 사진 찍히고 있는 남자친구도 이상하고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민폐녀는 제일 이상하다. 아니면 그 모든 걸 이해 못 하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건가? 



상한 기분 때문에 워터스크린에 펼쳐지는
저 화려한 레이저쇼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동영상을 찍으면서도 속으론 계속 씩씩대고 있었다. 평이 좋아 기대하고 있었던 공연인데 백 퍼센트 즐기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쿨한 누군가였다면 함께 축하까지 해줬을까? 내가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는 걸까? 레이저쇼 보러 갔다가 머릿속에 물음표만 잔뜩 붙이고 왔다. 그날의 민폐녀 이야기는 지금도 그 공연을 떠올릴 때마다 나온다. 아마 앞으로도 이 쇼는 우리에게 "민폐녀의 타임"으로 기억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찐하게 찐이다! "바쿠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