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詩선] 10월의 시: 그믐달

몸만 성하면 쓴다

by 이진민

청소년들에게 물 한 잔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학사에서 내놓는 <고교 독서평설>에 시 읽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여기 올리는 글들은 최종본이 아닌 초안입니다. 지난 원고를 하나씩 올려놓고 있어요. 수능을 앞둔 친구들에게 특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른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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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만 성하면 쓴다

[10월의 시] 그믐달



[그믐달]

- 이정록, 시집 <어머니학교(2012, 열림원)> 중에서


가로등 밑 들깨는

올해도 쭉정이란다

쉴 틈이 없었던 거지

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

지나고 봐라 사람도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믐 아녔던 보름달 없지

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

어떤 세상이 맨날

보름달만 있겄냐?

몸만 성하면 쓴다


가을과 달


이제 가을입니다. 이번 여름은 정말 무자비하게 더웠지요? 독일에 살고 있는 저는 오랜만에 7월의 한국을 경험했는데, 외출할 때마다 정말 목숨을 거는 느낌이었어요. (친구야, 내가 너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런 무더위에 책상 앞에 앉아있었을 여러분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고, 어른들이 제멋대로 지구를 망가뜨려 놓고 그 벌은 여러분 세대가 받는 것 같아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친구를 만나 문구류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가, 사은품으로 빙고판이 인쇄된 예쁜 종이를 받았어요. 2025년의 여름을 위한 빙고였답니다. 여름의 플레이 리스트 만들기, 여름 꽃 두 종류 이름 외우기, 냉동실 정리하고 아이스크림 두 개 채워두기 등 여름에 하면 좋을 일이 든 귀여운 빙고판이었지요. 저는 그 판에서 가까스로 빙고 한 줄을 완성하는 여름을 보냈는데, 여러분은 더위 및 공부와 씨름하는 와중에 이런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잘 챙겼는지 모르겠네요. 날로 더워지는 여름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울 수는 없지만, 걱정은 일단 어른들이 할 테니 여러분의 여름은 매년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계절이 근심보다는 선물처럼 다가오면 좋겠어요.


가을에도 이런 빙고판을 만든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갈까요? 하늘이 정말 높아지는지 느껴보기, 빨갛게 익은 무언가를 주변에 선물하기(네? 사과, 대추 다 놔두고 하필 고추가 생각났다고요?), 호박으로 등 만들어서 밤에 촛불 켜기… 그리고 아무래도 달 구경이 들어가야겠지요? 여름에는 열대야 때문에 달도 데워져 있는 느낌이지만 가을이 되면 다른 계절보다 밤하늘의 달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잖아요. 추석도 있고, 가을은 달이 참 예쁜 계절이지요.


‘그믐달’이라는 이 시를 읽으니 나를 괴롭히던 걱정들이 청량한 밤하늘 아래 사르르 물에 녹아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선선한 가을 기운이 느껴지면서도 마음은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 같지 않나요? 그믐달이 어떻게 생긴 달인지 모르겠고 초승달과 그믐달이 늘 헛갈린다고요? 학창시절에는 달의 위상 변화에 관련된 지구과학 문제를 증오하였지만 모양이 변하는 달을 보는 건 역시 지구인에게 주어진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함께 이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글을 읽으면서 초승달과 그믐달도 확실히 구별하게 될 겁니다.


어머니 학교


우선 시집 이름부터 살펴봅시다. 어머니가 학교라니, 이런 학교 어떤가요?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착실히 다니고 싶은가요? 지금의 여러분은 어머니 학교의 학생이 되라고 하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꿈꿀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저는 그 학교에 오래 다니지 못한 것이 무척 슬프고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중요한 학교임을 절실히 느껴요. 저도 어머니 학교의 학생임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그걸 십 대에 깨달았다면 그건 십 대가 아니겠지요.


어린 시절 제게 엄마는 온 우주였습니다. 조금 크면서는 벗어나고 싶은 자기장 같은 것이었고,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엄마는 친한 정원 [친정(親庭)] 같은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는 목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어요. 엄마라는 영토는 그렇게 한없이 넓었다 줄어들었다, 저를 밀어냈다가 끌어당겼다가 하면서 저를 만들었지요. 지금 그분은 다시 저의 잔잔한 우주이고 다시 들어가고 싶은 자기장입니다.


너 같으면 열도 키웠겠다고 말씀하셨던 어머니에게 저는 아마 어머니 학교의 우등생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잘 압니다. 자기가 어머니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오만한 학생이었음을, 다 안다고 적어놓지도 않았던 강의 노트를 뒤늦게 펼쳐 뭐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 늦깎이 학생임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어머니 학교의 동창생’이라는 시인의 말이 참 정겹고도 묵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그 학교를 다니고 있다면 수업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세요. 선생님이 오늘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오늘 배운 건 무엇이었는지 말이에요.


어르신들 말씀은 가끔 그대로 시가 됩니다. ‘그믐달’이라는 이 시는 힘겨워하는 자식에게 건네는 어머니 말씀이었던 모양인데, 정다운 말투 그대로 시가 되었네요. 그믐달이라는 시가 꼭 보름달처럼 환합니다. <어머니학교>는 시인이 어머니와 함께 쓴 시집이라고 해요. 이 시집 안에는 흙 냄새 나는 순박하고 쉬운 말로 인생을 설명하는 어머니의 지혜와 통찰, 그리고 격려가 가득합니다.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


추석날 먹는 송편은 반달 모양이지요. 저는 어릴 적에 그게 참 궁금했습니다. 추석날 밤에는 휘영청 보름달이 뜨는데, 정작 추석날 먹는 송편은 왜 반달 모양인지. 그때 아빠가 삼국사기에 들어있다는 옛날이야기를 일러 주셨어요. 원래 삼국시대에 만들어 먹던 송편은 보름달처럼 둥글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처럼 반달 모양의 송편을 먹게 된 이유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일화에서 시작해요. 의자왕이 밤중에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백제가 곧 망한다며 떠들다가 땅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신경이 쓰인 의자왕이 그 자리를 파보게 하니 웬 거북이가 나왔는데, 등껍질에 ‘백제는 둥근 달이고, 신라는 반달이다’라고 쓰여 있었다지요. 이를 두고 점쟁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백제는 이미 꽉 찬 보름달이니, 앞으로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신라는 반달이니 앞으로 점점 큰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 말에 격노한 의자왕은 점쟁이의 목을 베어버렸는데, 이 이야기가 신라에 퍼지면서 신라 사람들이 나라가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반달 모양의 송편을 빚어 먹었다고 해요. 실제 역사에서 백제가 멸망하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후대 사람들도 반달 송편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무언가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겠지요.


아빠는 어린 제게 보름달은 어김없이 기우는 달이지만 반달은 차오르는 달이니, 송편 많이 먹고 한 해 한 해 보름달처럼 차오르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어요. 꽉 차 있는 보름달이 제일 좋은 게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렇게 저는 아버지 학교에서 옛 선조들의 이야기와 함께 차고 기우는 인생사를 배웠네요. 우리는 흔히 낮추는 마음을 담아 ‘반쪽짜리’라고 말하지만, 그 반쪽짜리도 성실히 조금씩 채워가면 온전한 동그라미가 되는 거니까요.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고, 차면 비워야 하고, 비우면 다시 채울 수 있고. 실은 이것이 우리 인생의 법칙입니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하며 천자문을 외웠던 선조들은 세 번째로 나오는 일월영측(日月盈昃: 날 일, 달 월, 찰 영, 기울 측), 즉 해와 달은 차고 기운다는 구절을 소리 내어 외우면서 우리 인생도 그렇다는 사실을 조금 더 빨리 체득했을까요? 불가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도 결이 비슷한 말이에요. 색과 공은 원래 하나라서 둘이 다르지 않다는 말, 즉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실체를 알려주는 말이지요.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은 있는 것이라는 말. 차면 기울고, 왔으면 가고, 세상이 늘 좋을 수만은 없으니 자만하지 말 것이며, 힘든 일은 또 지나가니 너무 원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시에도 ‘지나고 봐라’라는 말이 있듯이, 저도 나이가 들고 여러 일을 겪으니 이런 말들이 더 와닿습니다. 저는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인데 그 낙관의 이면에는 아마 일월영측과 색즉시공에 관한 이해가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한자로 이야기하면 왠지 다른 세상 말 같죠? 내 얘기가 아닌 것 같고요. 어머니 학교에서는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라고 쉽게 말씀해 주십니다. 가로등 밑에서 밤낮없이 밝은 빛을 받은 들깨가 오히려 단단히 여물지 못했다는,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실과 함께요. 여러분이 선망하는 직업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도 그중 하나일 거예요. 늘 조명을 아낌없이 받는 직업. 하지만 조명 속에 있느라 잠도 못 자며 시달릴 수도 있고, 빛이 꺼지면 그 빛이 강했던 만큼 어둠도 진할 수 있겠지요. 정말 몸과 마음이 두루 단단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책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그렇게 유명한 작가는 아니라서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 그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주목받는 것이 좋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오히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제가 감당 못할 정도로 늘어날까 봐 걱정인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그릇이 큰 사람도 아니고 훌륭한 사람도 아닌데, 알아보는 사람이 생길 만큼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걱정 마, 안심해...).


시에서 어머니가 말을 건네는 대상은 잘 나가서 유명한 자식이 아니라 그러지 못해 힘겨워하는 자식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믐 아녔던 보름달 없지/ 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라고 말씀하시네요.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라고, 어둠이 보약이니 푹 쉬어가라고요. 가로등 밑에서 잠도 못 자고 시달리는 쭉정이가 되지 말고, 어둠 속에서 단단히 여무는 사람이 되라고요. 어둠이 고통이 아니라 편안함이 되는 마법 같은 말. 어머니 학교는 마법학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믐달과 초승달


저는 사실 밤하늘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도록 예쁜 쪽은 보름달보다는 초승달과 그믐달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썹 같기도 하고, 아기 손톱 같기도 하고, ‘맵시’라는 단어가 연상되거든요. 보름달 앞에서는 그저 감탄하기 바쁘지만 초승달이나 그믐달 앞에서는 저렇게 실 같은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단정해지기도 하지요. 이런 특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러나기 때문인 것 같아서 시 속 어머니 말씀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러고 보니 그믐달은 두 천체가 예쁘게 겹쳐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보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두 사람을 닮은 것 같아요. 시 속의 엄마와 아들일 수도, 연인일 수도 있을 그런 관계. 사랑은 빛과 그림자 모두를 끌어안는 일이니, 보름달을 보고서는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습니다. 저희 엄마를 생각하니 내가 엄마 주위를 공전했을까 아니면 엄마가 내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뱅글뱅글 돌았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네요.


초승달과 그믐달의 모양이 헛갈리는 사람들을 위한 구분법이 많습니다. 엄지손톱을 이용한 구분법도 있고, ‘초’승달은 ‘오’른쪽이 볼록하다고 기억하기도 하고, 초승달이 그믐달보다 먼저인데 기역이 니은보다 먼저니까 초승달은 기역을 닮은 달이고 그믐달은 니은을 닮은 달이라고 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지구 북반구에서만 맞는 방법이라는 사실 앞에 저는 또 겸손해집니다. 남반구에서는 달의 모양이 정반대라서, 왼쪽이 볼록한 것이 초승달이라고 해요. 이를테면 호주나 남극에서는 초승달이 니은을 닮은 달인 거죠. 맞다고 믿으며 소리 높여 우기는 것들이 가끔은 네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그 자리를 벗어나면 또 다른 진실이 보일 거라는 것. 아끼는 자식일수록 밖으로 내보내라며 어머니들이 자꾸 어머니 학교 학생들을 '보다 큰 세상'의 유학생으로 만드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마인들은 '달은 거짓말쟁이'라는 말로 그믐달과 초승달을 구분했다고 해요. ‘점점 작게’라는 뜻의 데크레셴도(Decrescendo)의 약자인 D와 닮은 달은 점점 커지는 달인 초승달이고, ‘점점 크게’라는 뜻의 크레셴도(Crescendo)의 약자 C와 닮은 달은 점점 작아지는 달인 그믐달이니, 달은 거짓말쟁이라는 거죠. 하지만 남반구에 사는 마오리족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달은 결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하겠죠? 하지만 어머니 학교에서 사실 이런 지식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지식의 영역보다는 지혜의 영토에 발을 담그는 쪽이고, 지혜의 땅이라기보다는 축복의 바다인 것을요. 어머니 학교에서는 그믐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별하는 것보다 그저 몸성히 잘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몸만 성하면 쓴다


어떤 세상이 맨날 보름달만 있겠냐며 그믐달도 참 예쁜 달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어둠은 지나가고 너에게도 좋은 날이 올 테니 그저 몸만 성하면 된다고요. 마지막 행이 담백하지요. “몸만 성하면 쓴다.” 처음엔 몸이 성치 못한 사람이 보면 각자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플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이 말은 그대로 두고 애써 고칠 필요 없는 ‘엄마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하자면 ‘다치거나 장애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아니라, ‘너의 존재 그대로 충분하다’라는 말, ‘살아있기만 하면 그저 다 괜찮다’라는 말.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지요. ‘변방 노인의 말’이라는 뜻의 새옹지마는 전화위복이라는 말과 바꿔 쓸 수 있습니다. 화가 복이 될 수도, 복이 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옛날 중국의 한 국경 마을에 말 한 마리를 기르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말이 국경을 넘어 도망치자, 노인은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괜찮습니다. 이 일이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노인의 말이 다른 말과 함께 돌아와 말이 두 마리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복이 들어왔다며 기뻐하자 노인은 다시 말합니다. “이 일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번에는 노인의 아들이 새로 온 말을 길들이려다 낙마하여 다리를 크게 다칩니다. 찾아와 걱정하는 이웃들에게 노인은 또다시 “괜찮습니다. 이 일이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 뒤 전쟁이 나자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친 다리 때문에 전쟁터에 나갈 수 없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찹니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그냥 듣기에는 개떡 같은) 말이 이제 조금 더 이해가 되나요?


그믐달은 다시 차는 달이니 좋을 일만 남았다고 믿어보는 마음, 그믐달도 보름달만큼이나 예쁜 달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화를 복으로 바꾸는 마음일 거예요. 여러분의 오늘 마음의 달은 어떤 달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달은 예쁘고, 여러분에게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예요. 몸만 성하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