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글로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올여름 한국에 방문했을 때 만나 뵈었던 기자님께서 제 얘기를 듣고 짤막한 기사를 써 주셨는데, 그걸 5개월이나 품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다정한 글로 남겨주신 양선아 기자님,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목부터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외국살이에는 빛도 있고 그늘도 있지만 대체로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향형인 데다 경계에 있는 것을 편안해하는 사람이라, 거리감이 주는 고요가 있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멀리 살고 있기에 대면 인터뷰나 북토크도 적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내심 다행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목받는 것을 불편해하고 누군가 저를 칭찬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는 인간형이거든요. (주의: 인터뷰는 칭찬이 아닙니다. 북토크도 칭찬이 아닙니다.)
하지만 책을 낼 때는 정말 우주로 띄워 보내는 느낌이었어요. 독자의 실체를 생생하게 실감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누가 정말 내 책을 읽는다고? 왜? ಠಿ_ಠ' 이런 생각이었지요. 키스를 글로 배웠다는 오래된 인터넷 광고처럼, 그렇게 독자님들을 글로만 만났습니다. 늘 의심하고 의심하는데(그만 의심해 인간아), 제 책 속 문장들에 기대 어느 시절을 통과했다는 말씀이, 제 글 덕분에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깨우쳤다는 말씀이 과분해서 더 거짓말 같았어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쑥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는 순간들이 있지만, 독자님들을 만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정말 좋아요.
아래 기사는 올여름 도서전과 북토크에서 다정한 독자님들을 잔뜩 만나고 감당할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콩국수 집에서 받아왔다는 콩물과 구운 소금, 들고 다니시던 장바구니째 넘겨주신 술빵 같은 아이템이 빠진 것이 아쉽군요 :) 고백하자면, 짐이 늘어나 사전에 택배를 하나 부치고도 무게가 초과되어 공항에서 물건을 좀 분류해서 버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주신 것들을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벌금을 아주 두둑하게 (껄껄) 내고 모든 것을 싸 짊어지고 왔습니다. 제게 주신 사랑을 버리라니요.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과분한 호의를 받으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간은 쑥스러움 때문에라도 책을 한 권 내면 다음 책으로 곧바로 뛰어들어 갔는데, 앞으로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충분히 머물면서 소통하고 싶어요.
모두의 평안을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책을 내고 나면 꼭 우주로 편지를 보내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 그 편지가 닿는지 알 수도 없는. 누가 읽어줄까 그런 생각도 하죠. 그런데 북토크에서 ‘와~ 내 책을 읽는 독자분들이 이런 분들이구나~’ 하고 확인하면서 신기하고 재밌어요.”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진민 작가가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최근 만났습니다. .txt에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를 연재하는 그 작가 맞습니다. 글을 주고받았지만 이날 처음 얼굴을 마주하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요. 한국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묻자, 앞에 소개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여행 피로감’이 살짝 느껴졌던 작가님의 표정이 독자들 얘기할 땐 밝고 생동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한 달여 동안 한국에 머무르며 북토크 여러 자리에 참석한 작가는, 독자들이 던지는 질문만큼이나 다채로운 선물들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직접 바느질한 행주를 건넨 독자,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라며 상평통보 모양의 엽전 두 개를 선물한 독자, 작가의 바지 사이즈도 모를 텐데 어쩐 일인지 꼭 맞는 바지를 선물한 독자도 있었다지요. 슬그머니 손에 숙취해소제를 쥐여 준 이도 있었고, 냉방병 걸리지 말라며 스카프를 전해준 이도 있었답니다. 독자들의 저자를 향한 따뜻한 ‘팬심’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아직도 세상에 보낼 글이 두둑하다는 이 작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독자들’을 만나 에너지를 듬뿍 받고 곧 독일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에스엔에스(SNS)가 발달했다고 해도, 이런 아날로그적 만남이 주는 특별한 감정은 그 어떤 디지털 기술로도 구현하기 어려울 겁니다. 독자와 저자의 관계란, 이처럼 마치 아무도 없는 우주에 띄운 편지에 응답이 돌아오는 순간처럼, 신비롭고 마법 같은 것이 아닐까요?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088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