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무엇을 모으고 있나요

레오 리오니 『프레드릭』

by 이진민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는 '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열다섯 번째 글입니다. 이번 글은 신문사에서 제목을 바꿔서 달아 주셨네요.



지금 무엇을 모으고 있나요


햇살이 필요해지는 잿빛 겨울이면 <프레드릭>을 꺼내 읽는다.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았다가 나눠주는 작은 들쥐가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아무래도 이 귀여운 주인공을 걱정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부지런히 옥수수와 나무 열매, 밀과 짚을 모으는 들쥐들 속에서 혼자만 나른한 눈을 하고 꼼짝 않는 프레드릭. 남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가만히 눈을 감고 햇살을 모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녀석의 근태 점수가 걱정된다. 우리는 대체로 개미와 베짱이 구도를 보면 조별 과제 트라우마가 떠오르면서 개미 편을 들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말한다. “나도 일하고 있어.”


눈이 오는 추운 겨울. 처음엔 모두가 넉넉하고 행복했지만 곧 먹이가 떨어지고 찬바람이 스며든다. 풍요는 아스라한 기억이 되고 누구 하나 재잘대지 않게 되었을 때, 프레드릭이 모았던 양식은 진가를 발휘한다. 그가 찬란한 금빛 햇살 이야기를 하자 다른 쥐들은 몸이 점점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파란 덩굴꽃과 초록빛 딸기 덤불 이야기를 들려주자 이번엔 색깔을 또렷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햇살, 색깔 다음은 모아 두었던 이야기의 차례. 프레드릭이 무대 위에서 공연이라도 하듯 들쥐 버전의 귀여운 철학과 신화를 줄줄이 늘어놓자 다른 쥐들은 박수를 치며 감탄한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꼬마 시인은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한 뒤 수줍게 말한다. “나도 알아.”


인간은 이야기를 양식으로 삼고 상상력으로 무한을 넘나드는 존재다. 빨강머리 앤과 소공녀가 그랬듯이 비참한 현실을 상상력으로 버티고, 이야기로 사랑스러운 우주를 창조해 낸다(이 상상력의 대가들이 힘없는 소녀들로 설정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효율만 따지지 말고 다양성과 상상력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이 꼬마 쥐에게 있다. 이 책에서 특히 아름다운 부분은 무임승차나 하는 놈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그를 굶기려는 다른 쥐가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어갈 때 다른 방향으로 가는 프레드릭을 막지 않았고, 불평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을 소신 있게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함께 상상해 주었다.


들쥐들은 부지런히 일한 덕분에 쥐들은 긴 겨울을 날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다른 곳을 볼 줄 알았던 프레드릭이라는 시인 덕분에 그들의 겨울은 한층 보드라워졌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기대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며 추위를 버티고 인생을 산다. 먹고사는 것은 물론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이 인생은 아니다. "그게 돈이 되냐?" 사사건건 효용을 따지며 사람관계에까지 투자와 손절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세상이라면 이 작은 쥐는 쉽게 굶어 죽지 않을까? 실용성과 경제적 가치는 물론 중요하지만 맹목적으로 신처럼 모실 대상은 아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이 그랬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같은 건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하지.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개인적으로는 프레드릭의 마지막 말이 가장 인상적이다. “나도 알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나의 존재 가치를 아는 들쥐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이 추운 겨울에 무엇을 모으고 있는지. 당신은 올해 어떤 것들을 모으고 싶은가.




예전에는 <잠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지요. 나른한 눈과 잘 어울리는 귀여운 이름.

그 아래는 잠잠이라는 이름을 카톡 대화명으로 쓰시는 모 시인이 생각나서 드리려고 산 메모지인데 귀엽죠? 속지가 다양해서 더 귀엽답니다. 뮌헨에 다시 와서 받아가시겠다고 했는데 꼭 오실 수 있었으면. 거기에 걸린 제약이 뭔지를 알기에 더더욱 그리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평화와 자유, 부디.

시인님 거 하나, 내 거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