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마리아 고치 글,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할머니의 팡도르』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는 '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열네 번째 글입니다.
팡도르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전통 크리스마스 빵이다. 별 모양 틀에 구워 고운 설탕 가루를 듬뿍 뿌린 모습이 꼭 눈 덮인 알프스 산처럼 보이는데, 반죽을 치대고 부풀리며 기다리는 과정을 반복하느라 하루 만에 뚝딱 구워 내긴 어렵다. 알프스를 하루 만에 정복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까. 삶의 온기를 가득 품고 시간을 충분히 머금어야 완성되는 이 빵을, 책의 지은이는 삶과 죽음 사이에 놓아두었다.
“죽음이 나를 잊은 게야.” 할머니의 말과 달리 죽음은 잊지 않고 찾아왔다. 할머니만의 비법으로 특별한 크리스마스 빵을 굽느라 분주한 순간, 사신이 찾아온 것이다. 이것만 마저 하자면서 간을 봐 달라고 주걱을 들이미는 할머니에게 속절없이 당한 사신은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당황하고 만다. 기다림이 비법이라는 할머니의 음식이 궁금해 번번이 다음을 기약하는 사신에게서 어쩐지 팥죽 향기가 난다. 하지만 전래동화 팥죽할멈과 이 이야기가 갈라지는 지점은 두 할머니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죽음이 그려지는 방식에 있다.
책 속 할머니는 죽음을 다정하게 대한다. 도망가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검은 자루처럼 생긴 사신은 사납고 무섭기보다 어수룩하고 사랑스럽다. 처음 겪는 환대와 온갖 풍미로 가득한 생의 맛에 설레어하는 사신이라니. 심지어 칙칙한 옷 좀 갈아입자는 할머니의 말에 귀여운 몸매를 드러내며 옷을 갈아입고서, 사람들과 어울려 생의 온기와 향기에 취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할머니가 내주는 음식을 먹은 사신의 모습은 가슴에 빨갛고 뜨거운 심장이 뛰는 것처럼 보인다.
마침내 크리스마스가 오고 팡도르를 맛본 사신이 도저히 임무를 수행할 자신이 없어졌을 때, 할머니는 놀랍게도 앞치마를 벗고 이제 가자고 한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기쁨을 주고, 레시피로 상징되는 자신의 고유한 알맹이를 전한 뒤 이제는 떠나자고 말하는 것이다. 사신의 자루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신이 손을 받쳐 할머니 발을 들어 올려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죽음으로부터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려는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를 전한다. 죽음이란 환대의 대상일 수 있으며, 우리를 어딘가로 살짝 들어 올려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구멍을 통과해 나오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죽음은 어두운 끝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크리스마스다. 사신도 달콤한 빵 욕심을 부리며 시간을 끌고 전쟁의 총성도 잠시 멈추는 날. 죽음도 온순해지는 날. 책을 보면서 죽음을 향한 고정관념에 거듭 설탕 가루를 뿌렸다. 주름진 할머니를 닮은 건포도 안에서 ‘쏟아지는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 익어가는 포도 향기를 느끼고 현기증이 나도록 황홀해 할 수 있는 것’이 죽음이라면. 멀리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집 아래 가까이 웅크리고 있다가 하얀 눈 이불을 들춰 머리를 내미는 것이 죽음이라면. 어디에도 기록된 적 없는 나만의 레시피를 남겨두고, 저렇게 솜사탕처럼 가벼운 뒷모습으로 떠날 수 있다면. 죽음이 이토록 사랑스럽다면, 삶이 죽음을 환대할 수 있다면.
팥죽할멈의 팥죽이 죽음을 격퇴하는 음식이었다면, 할머니의 팡도르는 죽음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환대하는 음식이었다. 12월의 식탁에 우리는 어떤 음식을 나누며 삶을 잇고 죽음을 바라볼까. “죽음이 나를 잊은 게야.” 우리가 죽음을 잊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35427.html
제 브런치에 <읽고 씁니다>라는 매거진이 있습니다. 주로 리딩리딩에 연재하던 서평(...이라고 하기에는 지금 보니 이게 무슨 서평인가 싶지만)을 올려두었던 매거진이에요. 그때는 글 전체를 올려둘 수가 없어 일부만 올려 두었는데요.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서 원문 전체를 살려 보려고 합니다.
복원도 일이라 하나씩 차례로 하려고 하는데, 두 번째 글 다시 살렸습니다. 김태권 님의 <불편한 미술관>이에요. 지금 보니 예전에 썼던 이 글 속 문장들이 제 책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아이라는 숲> <언니네 미술관>에 사이좋게 나뉘어 들어가 있네요. 신기합니다. 갓 걸음마 시작한 병아리 작가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쓸 공간을 주었던, 그래서 자신이 쓰는 책의 밑거름이 되게 해 준, 이제는 사라진 리딩리딩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으로 고개를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