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민 Aug 29. 2020

[서평] 불편한 미술관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

이번 글에서는 리딩리딩에 9월분 북 큐레이션으로 올린 서평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벌써 9월이라니. 9월이라니!!! 이보게 의사 양반!!!)


(아, 9월분 마감이었는데 일찍 보내드렸더니 8월분으로 실으셨네요.)


이번에 고른 책은 창비에서 펴낸 김태권 님의 <불편한 미술관: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글을 공개적으로 세상에 내놓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최근 논란이 된 한 만화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개인이 창작하는 컨텐츠들이 일단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아닐까.


사실 풍자와 혐오는 종이 한 장 차이고, 열 명이 웃으면 그 중 한 명은 쓴웃음을 짓거나 웃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이기에 늘 촉을 세우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많이 부족해요.

그런 의미에서 골랐습니다.



서평 <불편한 미술관: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

“그런 건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야.”


자주 듣는 말이다. 동화 속 이야기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세계, 핑크핑크와 노랑노랑과 반짝반짝이 난무하는 그런 세계를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동화는 알고 보면 치정 범죄와 호러 가득한 스릴러물인 경우가 많다. 과자로 만든 집 때문에 달콤하게만 느껴지는 <헨젤과 그레텔> 속 등장인물은 사실 사이좋게 모두가 범죄자고, <선녀와 나무꾼>은 목욕하는데 훔쳐본 것도 모자라 옷을 감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한 여성을 감금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면 선녀 측의 동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 한다면 동의보감으로 처맞을 소리다. 선녀는 살던 곳이 그리워 눈물을 흘렸고, 늘 옷을 내어주기를 간청했다.


김태권의 책 <불편한 미술관>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우리가 감탄할 준비를 하고 다소 무방비적으로 감상하는 명작들 안에도 가만 생각해 보면 ‘어, 이게 아닌데...’ 싶은 지점들이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갱이 무수히 그렸던 타히티의 여인들. 김태권은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아저씨 화가가 식민지 조선의 시골을 찾아가 벌거벗고 웅크린 조선 소녀를 그려 놓고 ‘원시적 신비’라고 주장한다면 우리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 보니 거 참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페르세포네의 납치>도 마찬가지다. 페르세포네는 발가락 끝까지 힘주어 저항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우리는 대체로 하데스가 움켜쥔 페르세포네의 포동포동한 허벅지의 탄력에 경탄하느라 바쁘다. 이 작품에는 늘 '관능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 작품을 보고 끔찍하단 생각을 반사적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게 다 저렇게 미친 솜씨로 대리석을 다룬 베르니니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걸 꼭 그렇게 민감하게 보아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다. 아무리 신화 뒤에 숨었다지만 사실 우리는 무시무시한 납치와 성폭력의 현장을 보고 관능적이고 아름답다며 감탄하고 있는 셈이다.


비단 미술 작품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우리의 잔잔해보이는 일상, 자연스러운 듯한 대화들 안에도 이런 부분이 제법 들어있다. 무조건 나쁘다, 잘못됐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한 번 생각을 해 보자는 얘기다. 우리가 평소에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안에 조용히 들어있던 것들을. 조용히 숨겨두었던 알록달록한 선녀의 옷을 꺼내어 쓰윽 펼쳐 보듯이.


(중략)


그림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고, 나는 얼마나 무신경했던가를 측정하는 셀프 맴매용으로도 괜찮은 책이다. 현재 우리는 개인 콘텐츠의 시대이자, 내가 내뱉은 말들이 언제 어디에서 박제되어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풍자와 혐오도 종이 한 장 차이, 장난과 상처도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므로 함께 사는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사람이 가지는 권리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우리는 친절하게 단호할 수 있으며, 유연하게 남을 배려하면서도 내 신념을 단단히 표현할 수 있다.

온갖 새롭고 기발하기까지 한 혐오 표현들이 난무하는 사회, 또 세대 간 손가락질도 잦아지는 우리 사회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사랑하는 당신이 한 번 조금은 불편해져 보셨으면 합니다, 하고.




미술보다 영화 쪽에 더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의 영화 버전을 추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거북이 수영클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