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불편한 미술관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

by 이진민

이번 글에서는 리딩리딩에 9월분 북 큐레이션으로 올린 서평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Screen Shot 2020-08-29 at 08.43.17.png (아, 9월분 마감이었는데 일찍 보내드렸더니 8월분으로 실으셨네요.)


이번에 고른 책은 창비에서 펴낸 김태권 님의 <불편한 미술관: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글을 공개적으로 세상에 내놓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최근 논란이 된 한 만화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개인이 창작하는 컨텐츠들이 일단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아닐까.


사실 풍자와 혐오는 종이 한 장 차이고, 열 명이 웃으면 그 중 한 명은 쓴웃음을 짓거나 웃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이기에 늘 촉을 세우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많이 부족해요.

그런 의미에서 골랐습니다.



서평 <불편한 미술관: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

“그런 건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야.”


자주 듣는 말이다. 동화 속 이야기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세계, 핑크핑크와 노랑노랑과 반짝반짝이 난무하는 그런 세계를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동화는 알고 보면 치정 범죄와 호러 가득한 스릴러물인 경우가 많다. 과자로 만든 집 때문에 달콤하게만 느껴지는 <헨젤과 그레텔> 속 등장인물은 사실 사이좋게 모두가 범죄자고, <선녀와 나무꾼>은 목욕하는데 훔쳐본 것도 모자라 옷을 감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한 여성을 감금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면 선녀 측의 동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 한다면 동의보감으로 처맞을 소리다. 선녀는 살던 곳이 그리워 눈물을 흘렸고, 늘 옷을 내어주기를 간청했다.


김태권의 책 <불편한 미술관>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우리가 감탄할 준비를 하고 다소 무방비적으로 감상하는 명작들 안에도 가만 생각해 보면 ‘어, 이게 아닌데...’ 싶은 지점들이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갱이 무수히 그렸던 타히티의 여인들. 김태권은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아저씨 화가가 식민지 조선의 시골을 찾아가 벌거벗고 웅크린 조선 소녀를 그려 놓고 ‘원시적 신비’라고 주장한다면 우리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 보니 거 참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페르세포네의 납치>도 마찬가지다. 페르세포네는 발가락 끝까지 힘주어 저항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우리는 대체로 하데스가 움켜쥔 페르세포네의 포동포동한 허벅지의 탄력에 경탄하느라 바쁘다. 이 작품에는 늘 '관능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세상 모든 걸 꼭 그렇게 민감하게 보아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다. 아무리 신화 뒤에 숨었다지만 사실 우리는 무시무시한 납치와 성폭력의 현장을 보고 관능적이고 아름답다며 감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을 보고 끔찍하단 생각을 반사적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게 다 저렇게 미친 솜씨로 대리석을 다룬 베르니니 때문입니다.

비단 미술 작품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우리의 잔잔해보이는 일상, 자연스러운 듯한 대화들 안에도 이런 부분이 제법 들어있다. 무조건 나쁘다, 잘못됐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한 번 생각을 해 보자는 얘기다. 우리가 평소에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안에 조용히 들어있던 것들을. 조용히 숨겨두었던 알록달록한 선녀의 옷을 꺼내어 쓰윽 펼쳐 보듯이.


“이 책의 주제를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권 문제에 있어서 누구나 ‘잠재적 가해자’라는 것이다.”


책을 시작하는 이 첫 문장에서부터 딱 반감이 생길 분들도 제법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해 마시길. 우리 모두는 살다가 무심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는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면서 생을 살아간다. 그게 자연스럽다. 평생 단 한 번도 나쁜 놈인 적이 없었다면 그 사람이 왠지 무서운 사람이다. 그렇다고 또 평생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살고 싶은 원대한 장래 희망을 가진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즉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면, 조금 불편하고 혹시 중간중간 내 생각과는 다른 점이 있더라도 이 책을 한 번 끝까지 들여다보시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인권의 문제는 선과 악의 대립보다 ‘배려하는 생활’ 대 ‘무신경한 태도’라는 구도로 보아야 할 때가 많다. 어떤 의미에서는 앎과 모름의 문제이기도 하다."


깊이 공감한 말이다. 인권의 문제는 사실 선악의 대립보다 앎과 모름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당장 내 머릿속에 어떤 개념이 들어있지 않아서, 생소해서, 혹은 그게 상처가 되는지 몰라서,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할 지 몰라서. 그래서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한마디로 조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함부로 상처주지 않는 법을 부지런히 배워가는 게 어른이 되는 일 아닐까.


이 책 안에는 다양하게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있다. 타자화 되는 여성, 가난한 자, 장애가 있는 사람들, 이주민, 성소수자,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예술 작품 안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저자의 말대로 “나라면 이들을 어떻게 그렸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작품에 그려진 바로 그 대상이 담백한 눈동자로 내 그림을 보았을 때, 과연 나는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저자가 구성한 인권이라는 이름의 불편한 전시회를 감상한다. 때로는 마음 아파하며, 때로는 얼굴 붉혀가며, 때로는 발끈하기도 하며. 저자는 고대 그리스와 중국 북송 시대에서부터 튜링테스트(인간 못지않은 지능을 지닌 컴퓨터를 판별하는 테스트)가 문제 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대를 넘나들며, 그리고 누구나 이름을 아는 피카소나 고흐 같은 거장의 작품들과 작자 미상의 그라피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솜씨 좋게 아우르며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펼친다. 우리는 이 책 속 전시를 따라가며 인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생각해 보고, 오랜 역사를 가진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는 물론 오늘날 새롭게 대두되는 노인 소외와 개인 정보의 문제, 동물의 권리까지 참 다양한 생각거리들 앞에 서게 된다. 가난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라는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좋은 목적을 위해서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삼아도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1부에 ‘우리가 기억할 사실들,’ 2부에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므로 사실을 보여 주되, 기본적으로 어떤 정답을 강요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워낙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읽는 분들은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가질 것이고, 불편해하는 지점이며 강도도 다를 것이다. 이 그림은 저자와는 달리 이런 식으로 읽고 싶다고, 다른 생각을 해 보기도 할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우리 모두는 인권에 대해 각자 가지고 있는 기준도 생각도 다르기 때문에.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낄 감정이 있으니 그것은 불편함이다. 저자는 이 책은 그렇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언제나 작은 불편함이 큰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림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고, 나는 얼마나 무신경했던가를 측정하는 셀프 맴매용으로도 괜찮은 책이다. 현재 우리는 개인 콘텐츠의 시대이자, 내가 내뱉은 말들이 언제 어디에서 박제되어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풍자와 혐오도 종이 한 장 차이, 장난과 상처도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므로 함께 사는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사람이 가지는 권리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우리는 친절하게 단호할 수 있으며, 남을 유연하게 배려하면서도 내 신념을 단단히 표현할 수 있다. 온갖 새롭고 기발하기까지 한 혐오 표현들이 난무하는 사회, 또 세대 간 손가락질도 잦아지는 우리 사회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사랑하는 당신이 한 번 조금은 불편해져 보셨으면 합니다, 하고.



미술보다 영화 쪽에 더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의 영화 버전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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