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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Jul 31. 2020

[서평] 거북이 수영클럽

느려도 끝까지

그럴 때 있지 않은가. 관조자가 아니라 경험자의 이너 서클(inner circle)로 나를 유혹하는 이야기를 만날 때. 다시 말해 나도 이런 경험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와 조우할 때. 이를 테면 법정 스님의 글들을 읽었을 땐 나도 고즈넉한 산속에서 계절을 입고 벗는 나무들을 보며 단출하게 살고 싶었고 (하지만 치킨 배달이 어렵겠지 싶어서 포기했다), 웹툰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을 봤을 땐 태권도가 참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 <거북이 수영클럽: 느려도 끝까지>를 읽고 나니 수영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에 나오는 '접배평자' 중 배영만 가능한 인간이다.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영법만 구사하는 나 같은 인간이, 글에 등장하는 어느 70대 할머니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정직하게 수영하고 성실하게 플립턴을 연습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 나도 백발이 성성한 주름 투성이 몸으로 우아하고 예쁘게 평영 하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세상의 온갖 번뇌와 스트레스가 버거운 밀도로 나를 눌러 뽀글뽀글 가라앉는 느낌이 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한 발을 떼고 떠오를 수 있는 힘을 주는 책. 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더라도 꼿꼿하게 조금씩 힘을 내어 팔을 내젓고 물을 헤치고 나아갈 용기를 주는 책. 그것도 내 등짝을 때리며 휙 던져 주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새 슬그머니 내 주머니 안에 꽂아놓고 팔랑팔랑 헤엄쳐 가는 책.

저자의 직업은 기자다. 매일매일 온 힘을 다해 1분 1초를 다투는 전쟁 같은 레이스를 치르는 워킹맘. 한 번도 악바리 같은 의욕을 놓아본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일부러 느리게 가 본 적이 없단다. 그런 그녀가 출산 후 요가마저 너무 열심히 하다가 허리를 삐끗해 디스크 진단을 받고는, 사랑했던 요가와 결별하고 수영을 만난다. 설상가상으로 그 1년 내에 암 판정까지 받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인생을 자꾸 후퇴시키려고 해도 나는 느리지만 앞으로 나간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그녀는 정확한 진단을 기다리면서도 수영장에 간다.   

 
저자인 수린이(수영+어린이의 합성어로 수영 초보를 뜻하는 말. 어감이 몹시 귀엽다.) 회원님에 따르면 수영장이라는 공간은 흉터를 숨기기 어려운 곳, 그렇지만 모두들 당장 숨이 차서 돌아가시겠기에 내 상처에 크게 관심 없는 곳, 상처가 있더라도 그에 대해 편안히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곳, 지옥 같은 감정들이 마법 같이 녹아내리는 곳, 울어도 눈물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또한 내 몸에 지닌 결함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내 몸의 어디가 고장 나 있는지, 튀기는 물의 모습과 방향에 그대로 드러나는 곳.


(이하 생략. 유료 콘텐츠라 전문을 모두 공개할 수 없어서 일부만 올렸습니다.) 





리딩리딩이라는 서평 사이트에 북 큐레이터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리딩리딩(READING LEADING)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촉을 세우고 있는 다수의 큐레이터들이, 발간된 지 2년 내의 신간을 소개하는 곳입니다. 해당 도서를 읽을 때 함께 보면 좋을 키워드들을 묶은 '리딩맵'이라는 재미있는 콘텐츠도 함께 제공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거북이 수영 클럽: 느려도 끝까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웹툰 <샌프란시스코 화랑관>, 영화 <카모메 식당>,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펑키타 수영복, 호주의 본다이 비치 등이 키워드로 함께 붙어 있습니다.

David Hockney,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 오피스룩이라고 봐도 좋을 법한 일상의 복장을 하고서 수영하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과 그 시선이 가닿는 곳에 그려진 물속의 수영하는 사람(그것도 책 속의 주인공이 가장 고전하는 평영으로!). 책의 내용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게 아닐까 싶을 만큼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호크니의 그림에 워낙 물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물을 그릴 때 정말 정말 느리게 작업했다는 호크니의 말과도 뭔가 묘한 접점이 생기는 것 같았거든요. 리딩맵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키워드는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이었고, 그다음으로 둥실둥실 떠오른 키워드.


저는 <Knowledge &human> 대표 카테고리로 삼고 서평을 연재할 예정이고요.  책으로는 보드랍지만 묵직한 생각거리를 전해주는 <거북이 수영클럽: 느려도 끝까지> 골랐습니다. 여기서 살짝 쓰는 이야기지만 책의 저자는 제가 브런치에서 구독하면서 처음 알게 된 분이에요. 수린이라는 필명으로 '어쩌다, 수영' 연재하신 분인데     편이 물이  감기듯이 마음에 감겨들어  좋았습니다. 글이 뜸하셔서 혹시라도 건강이  좋아지셨나 걱정하던 차에, 그간의 글이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불교 신자인 저는 할렐루야를 외치고 말았지요. (본캐(?) 숨기는데 능하셔서,  서평을  책으로 정하고 책을 주문하려고 작가 소개를 보다가 국내 유명 일간지 기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아니  충격을...) 받은  있습니다. 아무튼 리딩리딩 대표님과 수린이님, 그리고  사이에서 뭔가 버뮤다 삼각 찌찌뽕이 일어났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의욕이 넘쳐서 매달 연재가 가능할 것 같지만, 제가 좋아하는 '지속 가능한' 사이클을 생각해 봤을 때는 격월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서 격월로 연재합니다. 그래야 느긋하게 좋은 책을 골라서 설레며 읽고, 차곡차곡 즐겁게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가방끈 늘이던 시절의 트라우마로, 짧은 기간에 글을 쥐어짜내야 하는 걸 몹시 싫어합니다...)


아직은 이 사회에서 목소리에 에코가 덜 들어간 작가들의 단단하고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그렇고 견문과 안목이 아직 따르지 못해 걱정입니다.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멤버십과 상관없이 리딩리딩이라는 사이트를 둘러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아래에 서평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www.rglg.co.kr/content/2007122234084zAiK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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