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아이는 안 가져? 허리가 이게 뭐야. 뼈가 만져지네."
불쑥 허리로 들어온 손. 복도 끝에서 손을 흔들며 다가온 그녀는 말보다 손이 빨랐다. 사실 그녀와 나는 몇 해 전 함께 근무한 적이 있지만, 부서를 옮긴 후로는 데면데면한 사이이다. 유난히 높은 톤의 목소리를 가져 어디에서든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 그녀의 한 마디에 나는 사람들의 시선 한가운데에 서 있다.
"돌아왔구나. 남편이랑 헤어지기 싫어서 아주 안 돌아오는 줄 알았는데 왔네 왔어! 근데 우리 얼굴 본지 진짜 진짜 오래됐지?"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까? 서슴없이 허리를 쓰윽 감은 손을 좀처럼 놓지 않는다. 원래 이렇게 스킨십을 서슴없이 했었던가?
"어... 아... 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여전히 허리에서 손을 풀지 않은 채 다른 손으로 등을 쓰다듬는다.
"세상에! 이렇게 말라서 어떡해. 공부도 마쳤는데 이제 예쁜 아기 가져야지. 더 늦기 전에."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이야기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양가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자기 닮은 애를 낳아봐. 세상이 달라 보일 거야. 자고로 여자는 아이를 낳아야 인생에 의미가 있는 거야."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화장도 좀 해야겠다. 말랐는데 화장도 안 하니까 힘이 없어 보이네. 예전에는 높은 힐에다 여성스러운 옷 입고 다녔었잖아? 스타일이 많이 바꼈네."
연속으로 몇 단 공격을 해대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 하... 하... 네 에에."
멋쩍게 웃는 내 머릿속을 스치는 건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관심과 애정에서 나오는 행동과 언어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쩐지 자꾸 엉덩이를 빼게 된다. 인구감소, 저출산, 비혼주의자, 결혼 적령기 남녀... 아침에 지하철에서 읽은 칼럼을 가득 채우던 단어들을 그녀는 쏟아내기 시작한다. 마치 과녁에 활을 쏘아대듯. 그건 잘 알겠는데 허리에 감은 손은 조금 빼주시지...
당황한 나는 도와달라는 듯 지나가는 동료들을 향해 눈인사를 하지만, 다들 엮이고 싶지 않은 눈치이다. (미안해. 어쩔 수 없어.) 사실 이 분과 눈이 마주치면 그냥 스쳐갈 수 없다. 복도에 선 채 적어도 5분 이상은 본인의 근황을 전하느라 바쁘기 때문.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난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린 n번째 대상일까?
"내가 요즘 뭘 배우기 시작했는데 말이야. 자기도 이거 알려나?"
"근데 내가 올해 몇 살인 줄 알아? 건강검진하러 갔다가 놀랐잖아. 2년 전이랑 몸이 또 달라서... 곧 은퇴야 나도. 퇴물이 다 됐어."
"참참참! 글쎄 우리 딸이 이번 어버이날엔 말이야."
"나 강아지 키우잖아! 아주 상전을 모시고 살아 요즘!"
혼자서 이어가는 대화, 아니, 이건 대화가 아니다. 일방향의 전달에 가깝다. 첫마디부터 지금까지 화제(話題)만 적어도 예닐곱 가지다. 대체 뭐라고 호응해야 하지. 그녀의 너무 빠른 화제 전환에 눈과 귀가 어지럽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눈은 웃고 있지만 여간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도 마스크를 쓴다는 것. 방황하고 있는 입꼬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어 곤란한 순간은 면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내려놓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나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은 필수인 듯 모두가 마스크를 귀에 걸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경계하지만, 아직도 다스리지 못하는 마음을 마스크 뒤에 숨기는 쫄보인 나는 한동안 마스크를 벗지 않을 생각이다.
마스크로 지루한 표정을 숨긴 채, 언제 끝날 줄 모르는 그녀의 이야기로부터 벗어날 틈만 노리고 있다.
"근데 신랑은? 좋겠다. 아이도 없어서 자기는 늘 연애하는 기분일 것 같아."
"동생은? 남동생은 결혼했어? 결혼할 때 됐잖아!"
아이코. 이제 내 가족의 이야기로 넘어오는 건가? 이러다간 몇십 분이고 잡혀있을 것 같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인사한다.
"몸 아껴가며 일하세요. 제가 너무 오래 붙잡았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인사를 꾸벅하고 예정에 없던 비상계단으로 방향을 튼다. 혹시라도 말을 걸까 봐 성큼성큼 짧은 다리로 최대한 큰 걸음을 걷는다.
"어머! 어디 다녀오세요? 출장?"
등 뒤에서 한층 상기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를 또 발견한 듯하다. 벗어날 기회는 이 때다.
속도를 내던 걸음을 늦추고 비상계단 문을 연다. '휘이잉' 기다렸다는 듯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장마철의 공기처럼 꽤 눅눅하지만 불편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가족 이야기를 할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남동생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던 걸까. '풉' 이런 관심에 다시 익숙해져야 한다. 오랜만에 만난 이에 대한 반가움의 표현인걸 알지만, 조금 전 그녀와 보낸 시간은 내내 불편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그녀에게 난 새로운 '관심거리'가 아니었을까? 그녀와 내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의 거리가 퍽 다른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남의 일에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늘 회사에서 이슈였던 그녀가 엮인 웃지 못할 일화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잊고 있던 조직의 문화도 다시 생각났다. 누군가를 겪어보지 않고도 들리는 풍문으로 상대에 대한 정의와 판단이 결정되어버리는 곳.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 대해 눈과 귀를 가까이하는 이들이 많은 이곳 아니었던가.
이전보다 역할이 늘어났고 그만큼 기대와 요구도 많아진 요즘, 이방인으로 살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다.
'후우우'
바깥공기와 맞닿은 비상계단, 이곳에 놓인 파란색 의자에 앉아 저 아래 땅을 내려다본다. 줄지어 선 택시,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사람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 늦은 오후지만, 서울은 여전히 바쁘다. 오래된 가로수의 나뭇잎은 짙은 녹음이고 돌아오기 전 가장 큰 걱정 중 하나였던 미세먼지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
"그래! 한 잔 해야지. 몇 달만에 만나는 건데 당연히 찐하게 마셔야지."
위층 계단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깐의 사색이 강제로 끝나버렸다. 왜 저렇게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걸까. 청력이 좋지 않은 사람일 거라 애써 생각하며 다시 사무실로 발을 돌린다. 비상구 계단 출입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오는데 작은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