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댈거면 혼자 하던가
"엄마 나 잠깐 여행 좀 다녀올게." 내가 말했다. 엄마는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느냐고 깜짝 놀랐다가 주섬주섬 수면양말을 챙겨 신는 나를 보고선 "또 게임하러 방에 들어가는 구만."이라고 말했다. 나는 매일 저녁 소환사의 협곡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은 혼자 가는 법이 거의 없었다. 항상 고정 멤버들과 함께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이 게임을 했다. 그들은 내가 중간중간 현생을 살러 몇 개 월씩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지만 서로의 포지션과 성격을 아주 잘 알았다.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 어느 정도의 멘탈을 가졌는지 정확히 알아보는 가장 빠른 방법은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게임을 같이 몇 판 해보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RPG는 안된다. 꼭 PVP여야 한다. 그리고 연속으로 몇 판을 내리 졌을 때 이 모든 민낯은 낱낱이 드러난다.
나는 게임할 때 말을 많이 얹는 편이 아니었다. 내가 잘해도 대놓고 자랑을 하거나 하지 않았고 남이 못해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기본적으로 어쨌든 이 중에서는 스스로가 가장 티어가 낮다는 걸 인식하고 있어서 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꼭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해 줘서 이 판은 이긴 거지, 네가 아까 그렇게 플레이를 했어야지, 이쪽 싸우고 있으면 니가 내려와서 봐줬어야지 라고 말하는, 이긴 건 내 덕 진 건 남 탓을 하는, 자기 탓은 죽어도 없는 사람. 나는 게임을 졌을 때보다 그 사람 때문에 짜증이 난 적이 더 많았지만 원래 쟤는 저렇다는 걸 알기에 그냥 먹금을 했다.
하지만 사건은 터지고야 말았다. 우리는 무려 4연패를 했다. 이쯤 되면 오늘은 안 되는 날이라며 흩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다들 약간의 짜증과 기력 소진으로 지쳐있는 와중에도 딱 한 판만 이겨보자고 큐를 돌린 것이다. 그리고 다섯째 판에서 그가 미리 말도 없이 포지션을 바꿨다. 나는 그 행동을 보고서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내 포지션이 아니었는데도 기분이 상했다. 우리는 포지션이 고정되어 있었다. 결국 그 판도 졌다. 그러자 그가 또 한 사람을 지목하며 니가 아까 이랬어야지 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판에서 한 사람이 실수를 하면 그 판이 끝날 때까지 그 실수를 들먹였다. 그게 싫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는데도 듣기 싫었다. 결국 나는 "아 존나게 징징대네 진짜. 그럴 거면 혼자 하던가. 왜 분위기 좆같이 만들고 지랄이야."를 시전 하고야 말았다.
나는 유독 징징대는 소리를 싫어했다. 징징거리는 것 속에는 짜증을 받아달라고, 내 눈치를 보라고 하는 소리가 섞여있었다. 그게 빤했고 빤해서 뭐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절대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먹금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 존나 시끄럽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나는 그 자리를 떠야 했다. 결국엔 저렇게 터지고야 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