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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Jan 17. 2021

17. 아주 이상한 객기

너의 신경을 건드리고 싶어

그럼 전 이만 이 방을 나가볼게요. 단톡방에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가기를 눌렀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싸움은 아주 사소한 걸로 일어났다. 그는 최근 어떠한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태였고, 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어떤지 들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럼 내가 더 번거로워지는데?'였다. 그랬다. 그 일은 나와도 관련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겠다며 그 의견이 별로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 반응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걸 싫어할 줄은 몰랐어요."  나 또한 충격받아하는 그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별로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싶었다. 몇 마디의 말이 오가고 중간에 끼인 D가 여기저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위기를 중화시키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어쨌든 진행자는 저니까 그렇게 진행할 거예요." 아아, 그럴 거면 왜 물어봐 처음부터 알아서 하지 앞으로 그 일과 관련된 말 나한테 하지 마 라는 말을 썼다가 너무 공격적인 반응인가 싶어서 지웠다. 그리고 그가 안녕~ 하는 곰돌이 이모티콘을 보냈을 때 마침내 신경 어딘가에서 툭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이모티콘에 왠지 모르게 더 화가 났다. 나는 객기를 부리고 싶어 졌다. 마음 한쪽에선 안 된다고, 넌 이제 어른이고 그런 방식은 어른스럽지 못한 거라고 뜯어말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보냈다. 네. 그럼 전 이만 이 방을 나가 볼게요. 이건 뭐 너랑은 이제 끝이라고 통보하는 거랑 다름없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사람의 신경을 최대한 건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특히 친하면 친할수록,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더 그랬다. 마치 난 네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너를 안 봐도 별로 아쉬울 게 없다고 그러니까 넌 나한테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란걸 좀 알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를 불안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이 나인 것처럼 굴면서 이 싸움에서 이기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톡방을 나왔을 때부터 내 마음은 한 없이 찝찝했다. 엄청 신경이 쓰였다. 왜 이래? 필요 없어,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그렇게 되새겼지만 그의 인스타에 올라온 스토리가 신경 쓰였고 고요한 카톡마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분명 나는 정말 혼자여도 상관없었음에도 그랬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그렇게 나온 내가 정말 이긴 걸까. 불편한 마음과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하는 걱정과 점점 날카로워지는 신경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다음 날, 줌 모임 직전 그는 단톡방에 몸이 좋지 않아서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위경련엔, 어느 정도 내 책임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픔은 내가 바라던 대로 그의 신경을 잔뜩 긁어놓았다는 증거인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카메라가 켜지고 정말로 수척한 그의 얼굴이 보였을 때,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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