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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Jan 19. 2021

19. 남보다 못한 사이

추어탕은 너무 뜨거웠지

어젯밤 엄마와 함께 추어탕을 먹으며 미래 수업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받아온 7도가 훌쩍 넘는 맥주를 마시면서 "어우 재수 없어 진짜"라는 말을 반복했다. 화면에서 딥 페이크 범죄에 대한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엄마의 핸드폰 진동이 웅웅 거리며 울렸다. 나는 쇼파 위에 있던 엄마의 전화를 들었다. 광고 전화면 가차 없이 끊으려고. 하지만 액정 위에  '엄마'라는 표시에 "엄마 할머니다!" 하며 전화를 넘겼다.

추어탕을  먹은 나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속이 뜨끈뜨끈하다며 누워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엄마의 말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나는 눈은 티비에 고정한  귀를 쫑긋 세웠다.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시무룩해지며 돈이 없다고 정말 우리 재산은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엄마가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할머니가 뭐라고 했냐고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옆에서 대충 들은 걸로 상황을 가늠할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었다. 거기엔 할머니가 무슨 사기를 당해 돈이 필요한  아닐까 하는 우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예상 밖의 말을 했다.  "아니,  새끼가 어제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투자할 곳이 있는데 누나 생각이 났다고 그랬다잖아." 여기서  새끼는 엄마의 남동생. 그러니까 나의 큰삼촌을 말하는 거였다.  3  할아버지의 팔순잔치에서 그와 그의 와이프는 다른 형제들과 크게 싸운 이후 큰삼촌은 다른 형제들과 인연을 끊었다. 아니 끊겼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나의 엄마, 이모, 작은 삼촌은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앞으로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근데  없다는 말을  ? 그럼  새끼 귀에도 들어가잖아. 나라면 절대 돈 없다 어쩐다 그런  안 했을 거야." 나는 어쩐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추어탕이 너무 뜨거워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말을 들은 엄마는 "그럼 그냥 알아서 한다고 하고 끊어? 할머니 서운하게?  나중에 엄마가 이런  꺼내면 그냥 끊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 당연하지.  싫어.  없다는  꺼내는 것도 싫고 진짜로  없는 것도 싫어. 특히  없어서   한다고 말하는  제일 싫어. 그래서 누가 그런 소리하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거야. 그게 엄마여도 그렇게  거야."라고 바락바락 말했다. 엄마는 그럼 나중에 상처 받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근데   이제 와서 누나 생각한다 어쩐다  지랄이냐고 했다.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어른한테 걔니 지랄이니 한다며  우리  진짜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  년이나  보고 살았으니까 이제 연락하고 싶었나 보다고, 엄마가 성격이 욱하는  있어서 당시엔 화르륵 타올라도 풀리는 것도 금세 풀리는   아니까, 다른  명은 공략하기 힘들어도 자신은 이런 불편함을  견딜  아니까 그러는 거라고 말했다. 그랬다. 엄마는 이런 불화나 갈등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나와 엄마가 혹은 동생과 엄마가 싸웠을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껴안고 뽀뽀를 하는 쪽은  엄마였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는  너무  알아서 그걸 이용할 때가 많았다. 나뿐 아니라 엄마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엄마를 화나게 해도 조금만 잘해주면 금세 누그러질 거란 사실을 모두 알았다.  새끼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아는 나는 그를 용서할  없다. 우리 엄마보다 14살이나 어린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겨우 3년 만에 잊을  없다. 행여 엄마가 그들을 용서하고  지낸다 하더라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내가 딸이니까 그렇다.

"근데 엄마는 점점  잘할 자신 있어. 두고 ."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서 누워있는 나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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