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은 너무 뜨거웠지
어젯밤 엄마와 함께 추어탕을 먹으며 미래 수업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받아온 7도가 훌쩍 넘는 맥주를 마시면서 "어우 재수 없어 진짜"라는 말을 반복했다. 화면에서 딥 페이크 범죄에 대한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엄마의 핸드폰 진동이 웅웅 거리며 울렸다. 나는 쇼파 위에 있던 엄마의 전화를 들었다. 광고 전화면 가차 없이 끊으려고. 하지만 액정 위에 뜬 '엄마'라는 표시에 "엄마 할머니다!" 하며 전화를 넘겼다.
추어탕을 다 먹은 나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속이 뜨끈뜨끈하다며 누워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엄마의 말소리가 내 신경을 긁었다. 나는 눈은 티비에 고정한 채 귀를 쫑긋 세웠다.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시무룩해지며 돈이 없다고 정말 우리 재산은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엄마가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할머니가 뭐라고 했냐고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옆에서 대충 들은 걸로 상황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었다. 거기엔 할머니가 무슨 사기를 당해 돈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예상 밖의 말을 했다. "아니, 그 새끼가 어제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투자할 곳이 있는데 누나 생각이 났다고 그랬다잖아." 여기서 그 새끼는 엄마의 남동생. 그러니까 나의 큰삼촌을 말하는 거였다. 약 3년 전 할아버지의 팔순잔치에서 그와 그의 와이프는 다른 형제들과 크게 싸운 이후 큰삼촌은 다른 형제들과 인연을 끊었다. 아니 끊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나의 엄마, 이모, 작은 삼촌은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앞으로 널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근데 돈 없다는 말을 왜 해? 그럼 그 새끼 귀에도 들어가잖아. 나라면 절대 돈 없다 어쩐다 그런 말 안 했을 거야." 나는 어쩐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추어탕이 너무 뜨거워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그럼 그냥 알아서 한다고 하고 끊어? 할머니 서운하게? 넌 나중에 엄마가 이런 말 꺼내면 그냥 끊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어. 당연하지. 난 싫어. 돈 없다는 말 꺼내는 것도 싫고 진짜로 돈 없는 것도 싫어. 특히 돈 없어서 뭐 못 한다고 말하는 게 제일 싫어. 그래서 누가 그런 소리하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할 거야. 그게 엄마여도 그렇게 할 거야."라고 바락바락 말했다. 엄마는 그럼 나중에 상처 받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근데 걘 왜 이제 와서 누나 생각한다 어쩐다 왜 지랄이냐고 했다.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어른한테 걔니 지랄이니 한다며 와 우리 딸 진짜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 몇 년이나 안 보고 살았으니까 이제 연락하고 싶었나 보다고, 엄마가 성격이 욱하는 게 있어서 당시엔 화르륵 타올라도 풀리는 것도 금세 풀리는 걸 잘 아니까, 다른 두 명은 공략하기 힘들어도 자신은 이런 불편함을 못 견딜 걸 아니까 그러는 거라고 말했다. 그랬다. 엄마는 이런 불화나 갈등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나와 엄마가 혹은 동생과 엄마가 싸웠을 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껴안고 뽀뽀를 하는 쪽은 늘 엄마였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걸 이용할 때가 많았다. 나뿐 아니라 엄마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엄마를 화나게 해도 조금만 잘해주면 금세 누그러질 거란 사실을 모두 알았다. 그 새끼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잘 아는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우리 엄마보다 14살이나 어린 그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겨우 3년 만에 잊을 수 없다. 행여 엄마가 그들을 용서하고 잘 지낸다 하더라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내가 딸이니까 그렇다.
"근데 엄마는 점점 더 잘할 자신 있어. 두고 봐."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서 누워있는 나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