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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놈의 책임감, 평범한 삶 40년 종료 선언

이제는 좀 솔직해지자

by 행복한워킹맘

‘이건 아닌데, 내 청춘이 이렇게 끝나는 건 너무 허무해. 나에게도 뭔가 반짝이는 것이 있지 않을까?’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던 20대 초반, 난 내 인생 최대의 용기를 냈다.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어학연수를 준비하여 훌쩍 대한민국을 떠났다. 내가 1년을 비운 사이, 가난했던 우리 집은 더 가난해 지지도 않았다. 걱정했던 언니와 동생도 잘 살고 있었다.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처음으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했던 1년간 내 주변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그 이후, ‘나만의 인생을 찾아, 멋지고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난 IMF 끝자락에서 취업 걱정을 하는 대학생으로 복귀하였고, 대학원 2년을 거쳐 대기업에 취직하게 되었다.


“딸내미가, 그 회사에 취직했다고? 너무 잘 됐네. 좋은 회사 취직도 하고. 딸네미 잘 키웠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에 입사 후, 나의 평범한 삶은 또 하나의 사이클을 반복하게 되었다.


20년, 나의 사이클 한 주기는 왜 이리도 긴 것인가?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로 20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얌전한 아이였다. 고2때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엄마 속을 잠시 썩인 것 빼고는 착한 아이였다.


집에서 늘 쉬고만 있던 아빠는 자녀 교육에는 엄한 분이었다. 아빠의 말을 따라 친구네 집에 놀러 간 적이 거의 없다.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동생이랑 집에 있거나 집 앞 골목 아니면 놀이터에서 놀았던 게 전부였다. 지나고 보니 참 재미없고 정서적으로 결핍했던 유년 시절, 난 그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아빠를 대신해 일만 하던 엄마는 내가 충성해야 할 대상이었다. 세 자매의 도시락 6개를 싸 놓고 새벽 같이 나갔다가 밤 늦게 돌아오는 엄마 속을 썩인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친구들 하고도 안 싸웠고, 학원 보내달라는 이야기도 안했다. 교과서로만 공부했고 엄마가 미안해서 보내 준 과외도 딱 한달 만 했다. 수능 점수보다 낮은 학교를 선택해 대학교도 무난히 들어갔다.


이런 모든 선택을 난 ‘책임감’ 으로 포장 하였다.

‘더 이상 엄마 고생하지 않게 해야 해’

‘나는 돈을 벌어 가족을 책임져야 해’

‘우리 집 형편상 재수를 할 수 없어, 안전한 학과를 선택해야 해’


난 그렇게 집안 형편을 핑계로 ‘책임감’의 탈을 쓰고 평범한 삶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20대가 되었다.


회사 말씀 잘 듣는 착한 직장인으로 20년

꽉 찬 십팔년, 이제 20년을 바라보는 시간을 한 회사에서 보내고 있다. 내 인생의 절반이 이곳, 회사에서 흘러갔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 소름이 끼친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오래 회사를 다닌 것일까?


비교적 회사 생활에 큰 고비도 없었고 스펙터클 넘치는 사건도 없었다. 아이를 낳아 워킹맘이 되면서 몇 번의 위기가 있긴 했다. 둘째를 낳고 3개월만에 회사 복귀했던 시절, 회사 업무는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늦게 퇴근하는 나를 두고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였다. 둘 중에 한 명을 아이를 돌봐야 하지 않냐는 논리였다. 시부모님께 양육을 맡기고 회사 일에만 올인 하던 시절, 남편의 눈에 나는 ‘성공에 눈이 먼 여자’ 였다. 11시에 퇴근하여 조용히 시댁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있는 작은 방에 몸을 누이면 허무감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


매일 밤 힘들어 혼자 울던 그 시절에도 난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한참 진행 하던 프로젝트가 이제 막 방향을 잡아 해결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맡고 있는 일이 있었다. 내가 지금 그만두면, 일이 잘 안될 것 같았고 바쁜 일을 떠맡게 될 팀장과 동료가 걱정되었다. 충성하는 대상이 회사로 바뀌었을 뿐, 나는 또 죽일 놈의 책임감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이러한 평범한 삶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강산이 2번 바뀔 그 시간 동안, 나름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였고 이 세계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미움 받지 않을 일만을 찾아 골라서 해 왔다. 평범한 삶은 내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


눈을 돌려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요즘 이 편안함이 ‘태풍의 눈’ 안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를 조금만 벗어나면 태풍이 휘몰아친다. 나와는 다른 자유로운 삶을 사는 이들을 보면 나의 마음이 요동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며 사는 그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 부러움의 끝자락에서 이제야 나를 되돌아 본다.


그동안 왜 나는 부모와 회사라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었을까?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돌이켜 보면 평범함을 벗어나려 한 첫 번째 사건(대학교 휴학) 이 후 내 주변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1년 간의 시간은 이후 나의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둘째를 낳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매일 밤 울던 그 때, 회사를 그만 두었더라도 내 삶은 그리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산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40년이 걸렸다.


20년의 주기로 반복되던 나의 평범한 삶을 이젠 종료하고자 한다.

이제 나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 가난한 집 딸로 자라며 가졌던 죽일 놈의 책임감을 벗어 던지겠다. 일하는 엄마로서 지고 있던 서러운 죄책감도 내려 놓을 것이다. 이러다가 회사에서 일 못 한다고 질책을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때 생각하자.

지나온 나의 인생을 글로 표현하게 된 것은 ‘평범한 삶의 종료’를 알리는 하나의 시작이다.


평범한 삶을 살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그때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기에

그 동안의 평범했던 날들을 추억하고 잘 보내 주고자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법’ 책 내용 중 (고코로야 진노스케)

이제 좀 솔직해지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나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자유로워집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너그러워집니다.
그 행복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그러니 당당하고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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