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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DOC의 20년 만의 쾌거, 직장인 반바지

시대가 변하면 회사도 바뀌는데...

by 행복한워킹맘
하절기 업무능률 향상을 위하여 반바지 착용을 실시합니다.

7월이 다 지나간 어느 날 회사 게시판에 공지가 떴다. 더운 여름 7, 8월 두 달 동안 회사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된다는 공지 글이었다. 단, 무릎길이의 단정한(?) 반바지여야 하며, 과도한 노출이 있거나 운동복 스타일은 금지라는 안내가 있었다.


한 여름, 여사원들은 치마에 샌들을 신으며 상대적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샌들을 싣고 출근을 했다. 또한 반바지만 안 입었을 뿐이지 긴 바지, 치마, 원피스 등 자유롭게 옷을 골라 입는다. 복장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더운 여름, 긴 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남 사원을 볼 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더위는 회사 안에 들어오면 시원한 에어컨으로 버틴다 해도, 장마철 바지가 다 젖어 출근하는 경우 그 축축함과 찜찜함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안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보니 공무원들의 반바지 착용에 대한 기사가 여럿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창원시가 7~8월 수요일 하루 직원들의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기사가 있었다. 민원인에게 불쾌감을 주고 품위를 손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허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올해부터 반바지를 허용하게 되었을까?

기사 몇 개를 훑어보니, 2012년부터 서울시를 필두로 2018년부터 지방자치 단체까지 반바지 권장이 확대되고 있었다. 작년에는 경기도 부천 그리고 수원시가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였다. 경기도청에서는 올해부터 7~8월에 반바지를 입는다고 한다. 경기도청은 반바지 착용을 두고 온라인 설문조사도 했는데, 도민 80.7%, 직원 79%가 반바지 착용에 찬성했다는 흥미로운 뉴스도 있다.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에서 반바지 도입은 예상했듯이 찬반 의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색하지만, 시원하니 좋네요.”

“보여주기 행정의 극치이다.”


사실 나도 처음 회사 공지가 떴을 때, ‘뭐라고? 반바지라고? 이렇게 공지한다고 사람들이 많이 입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공지가 뜬 바로 다음 날, 옆자리에 앉은 후배가 반바지를 입고 출근을 했다. 그다음 날은 건너편에 앉은 후배까지 합세하여 두 명으로 늘었다. 이틀 만에 우리 팀 남 사원 2명이 반바지를 입고 출근을 했다. 이것은 남자 사원의 10% 정도가 반바지를 입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보다 꽤 많다. 지금은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남자 사원들의 털이 숭숭 달린 종아리를 보며 출근을 하고 있다.


대기업 회사를 다니며 18번의 여름을 보내고 나서야 직장인의 반바지 차림을 볼 수 있었다. 7년 전부터 반바지 착용을 도입한 서울시보다 한참 늦었지만, ‘회사가 변하긴 변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많은 사원들에게 환영받는다는 것에 놀라고 있다. ‘나도 영락없는 꼰대 인가?’하는 반성도 했다. 나처럼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가 좋게 바뀐 경우도 있겠지만, 반바지 착용을 두고 상반되는 생각을 하는 두 그룹으로 나뉘지 않을까 한다.


“회사 가서 업무만 잘 보면 되지, 더우면 반바지 입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반바지 입는 다고 업무 능률이 향상된다고? 일도 똑바로 못하면서 무슨 옷 타령이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회사도 변하고 있다. 부정적인 꼰대 들이야 몇몇 남겠지만, 시간이 지나 여름철 반바지 입는 사원들이 보편화되어 그들이 기준점이 되면 이러한 부정적 시각도 곧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반바지 착용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워킹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제도적 장치들이 변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워킹맘에게 하절기 업무 능률을 저해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방학이다. 방학이 가까워 오면 학교를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아이를 위한 조치들이 취해진다. 여름 방학 특강을 알아보고, 평소 다니지 않던 학원도 몇 개 더 추가한다. 출근해서 퇴근 전까지 아이들의 동선을 다시 짜야한다. 아이가 멍하게 있는 시간을 없애고 나서야 안심하고 방학을 맞이 하게 된다. 이처럼 세팅을 잘해 두었더라도, 아침에 잘 일어났는지 학원은 늦지 않고 잘 갔는지 방학 중 워킹맘의 전화기는 불이 난다.


나처럼 조부모가 아이를 봐주시는 경우, ‘그나마 아이가 학원을 가지 않는 시간에 믿고 맡길 수 있어 안심이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나 또한 아이들 방학이 되면 전화기에 불이 난다.

“아침에 세수하고 이빨 닦았지?”

“오늘은 텔레비전 조금만 보는 거야. 알았지?”

아이들은 편안하게 놀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어르신이어서, 아침에 아이가 이빨을 안 닦아도 뭐라 안 하신다. 텔레비전을 봐도 몇 번 잔소리하실 뿐 모질게 끊으시지를 못한다.

아무리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아이들 방학 중에 회사에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워킹맘의 하절기 업무능률 향상을 위해 아이들 방학기간 중 재택근무를 실시합니다.


이러한 공지가 회사 게시판에 뜰 날이 올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이 접었다. 반바지 입는데 20년 걸린 회사인데 말이다. 내가 이런 회사를 차리지 않는 한, 대기업 회사 게시판에 이러한 공지를 볼 날은 200년은 넘어야 할 것이다. (소심한 워킹맘은 이렇게 글로만 적어 본다. 하절기에 반바지 안 입어도 되니 며칠만이라도 재택 근무 안될까요?)


‘반바지 착용’을 공지한 글에 많은 댓 글이 달렸는데, 유독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DJ DOC가 큰일 했네요."


DJ DOC와 함께 춤을 (1997, DJ DOC 4집 앨범 수록곡)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에요.
자신을 만들어 봐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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