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로의 한 마디

그걸 못하고 못한 게 미안하다

by 나무엄마 지니


(98) 김동률_감사(cover) by 박재정ㅣ뽀송즈ㅣ4songs - YouTube


엄마가 아프다. 내가 아프다. 그런데 남편은 별게 아니라고 그냥 진료를 잘 받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한다. 처음 일을 하고 심한 감기로 아파서 열이 40도까지 날 때도 괜찮다고 했다. 둘째를 임신중독증으로 집중 관리 대상으로 다른 분만실에 있을 때도 그렇게 말했다. 아이를 임신해서 퉁퉁 불어서 신발이 들어가지도 않아서 슬리퍼를 끌고 다닐 때도 괜찮다는 말만 했다. 그래서 섭섭했다. 별게 아닌 질환인데도,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거 같아서 섭섭했다는 그 말이 맞을 거 같다.




건강 앱을 하는데 거기서 코치님은 며칠째 메시지를 보내며 걱정했다. 몸은 괜찮냐, 아픈 거 아니냐, 걱정된다, 기분은 어떻냐, 정말 심하게 아픈 건 아니냐, 내가 도와줄 부분이 어떤 부분이 있는지 알려주면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등의 메시지를 드문드문 보내셨다. 이렇게 해줘야 하는데 그래야 마음에 힘이 나는데, 선배가 그래서 나한테 섭섭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30년째 회사 생활을 한다. 누구는 부러워할 만한 외국계 회사의 이사까지 했으니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나야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았고 조직문화를 모르니 상사가 쓴 책이며, 회사 로고가 박힌 다이어리를 줬을 때도 무덤덤히 받았다. "이거 내가 만든 거야"라고 말하는 선배한테, "응~ 고마워!"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섭섭했을까. 그 덕에 2012년 논문 주제로 부산을 떨고 다닐 때도 그 다이어리에 내가 궁금한 부분을 빼곡히 썼다.

10년도 넘은 다이어리인데 이사를 오며 박스에서 뭐가 묻었나봐요,, 이 부분도 저에게는 추억이 되네요..



선배는 많이 아프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 질환에 걸렸는데 별거 아니게 넘어가는 생각한 거보다 간단한 질환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시어머님도 걸리셨는데, 내 어머니는 조용히 지나가는데 저렇게 남편까지 나서서 수선을 떠나 싶어서 이해가 잘 안 가서 속으로 '엄청 수선을 떠시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어머니의 병보다 어머니의 인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그 길로 자신의 어머니한테 갔었던 건 아닐까.


선배는 그 이후로 내게 참 쌀쌀맞게 대했다. 자주 짜증을 냈다. 언니의 반응을 보며 그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원래도 민감하지 못하고 별일에 그냥 무덤덤히 지나가는 성격이다. 그래서 나보고 병을 더 키워온 거 같다는 말도 간호사님이 해주셨다.


원래 내 사춘기 시절을 함께 보낸 언니라서 정말 내 친언니처럼 나를 학교로 데리고 가고, 데려다주고, 내가 먹고 싶다는 떡볶이의 뉴 버전을 만들어서 해주기도 했고, 내가 처음 언니 덕에 버드 와이저(맥주)를 먹기도 했다.


잠깐 예전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그 버드와이저 맥주 내기를 생판 모르는 어느 남자아이와 내기로 마셨다. 그 남자아이는 "너 이거 못 마시지?"라고 묻는데 선배 언니는 "얘 술 못 마셔. 처음이야. 커피도 못 마시는데 뭘"이라는 소리에 기분이 상해서 맥주 내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그 친구한테 "내가 졌어. 졌어"라는 소리를 듣고 내 생전 처음 맥주 마시기는 끝이 났다.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지랑이가 땅에서 피어올랐다. 물론 100% 언니를 신뢰하는 엄마가 허락해서 나가게 된 길이라 언니의 여러 말로 내가 맥주를 마셨던 걸 눈감아 주셨다.


내가 정말 힘들 때 일본 여행을 가자고 해서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하라주쿠, 오다이바를 다녀오는 데도 언니는 아무 일정을 체크하지 않고 우두커니 아무 말 없이 사진을 찍고 걷기만 하는 나를 가만히 지켜봐 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밖을 무심코 바라볼 때도 언니는 내 귀에 자신이 듣던 이어폰을 껴주며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주고 함께해 주었다.


그런 언니가 세상 태어나서 많이 아픈데 나는 주변 어른들을 보며 괜찮았다고, "그거 괜찮은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라고 말한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아플 때, 힘들 때 위로해 주고 함께해 주고 따뜻한 걱정 한마디 그게 사람을 힘이 나게 한다.


그 위로의 한마디. "괜찮아? 많이 걱정하고 있어. 괜찮지? 정말?" 그 말 한마디면 다 되는데 그걸 못한 게 미안하고 미안하다.


오늘은 괜찮냐고 물어봐야겠다. 사실 내가 아픈데 진짜 내 질환은 별게 아닌 거다. 아마 "그거 별거 아니다"라고 말할 게 뻔하다. 우리는 그런 35년 지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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