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한 달 살기

한 달 살기는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칠까?

by 지니글러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의 언어 능력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할 것이다.

나 또한 아이의 언어에 대해서 한 번, 아니 두세 번쯤 고민을 해왔고,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나와 우리 가족은 한국이 아닌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 나와 남편은 학생일 때 외국으로 유학을 나와 그대로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는 케이스다.

그러니 아마도 언어에 대한, 외국어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더 컸을 것이다. 그런 유학생 두 명이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는데,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우리는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중언어의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지에서 적응하려면 그 나라 말을 배우게 하는 게 낫지 않냐였지만, 어쩐지 나와 남편은 이런 부분에서는 찰떡호흡을 자랑하며 무조건 언어는 우리나라 말부터 라는 굳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나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말이 꽤 많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에게 시시콜콜 이런저런 얘기를 그렇게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말해주고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아이가 100일이 되어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무려 한 달을.

그 시기에는 말도 못 하는데 무슨 언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말은 못 해도 귀는 열려있지 않은가!

어딜 가도 한국어가 들려오고 또 정이 많은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아이를 보면 예쁘다, 귀엽다 등등 한 마디씩 해주셨고 의미는 모르나 좋은 뉘앙스로 느껴진 아이는 방긋방긋 웃어댔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이 나와 아이에게 있어 한 달 살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영어권 나라였는데 물론 이때도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귀는 열려있었기에 지나가는 붙임성 좋은 외국인들은 아이에게 쏘 큣, 쏘 빅 베이비 등등 스몰토크를 해주었고 어리둥절해하던 아이도 어느새 또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을 때


그런 아이는 쑥쑥 자라 어느덧 초등학생 중반을 넘어섰는데, 다행히도 모국어는 한국어로, 제2의 모국어는 일본어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함과 동시에 영어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영어를 좋아했고 또 금방 습득하기 시작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는 언어적인 감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태껏 데리고 다녔던 여행이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이리라! 분명 무언가 그의 안에 자양분이 되어 언어 쪽 감각을 키웠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2024년 3월 처음으로 아이를 외국 학교에 스쿨링을 시켜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발리로 떠났다.

한 달 살기는 아니었지만 꽉 채운 2주를 발리 우붓에 지내며 현지 학교에 스쿨링을 시켰다.

스쿨링 첫날 등교한 학교


당연히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 아이만 뚝 놓고 오려니 걱정도 되었지만 외향적인 아이는 걱정 말라며 씩씩하게 학교로 향했다.

첫째 날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아이는 너무나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너무 재미있어 “

그 한마디에 걱정은 사라지고 기대감만 더욱 커지게 되었다.

2주 동안 학교를 오가며, 또 현지에서 지내며 아주 사소한 것들도 다 영어로 소통을 하며 아이는 점점 자신감을 가졌고 영어라는 언어로 소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걱정, 불편함 따위는 없어졌다.

스쿨링 마지막 날은 현지 학교도 학기 마지막 날이라 다 같이 발표회도 가졌다.

그 짧은 시간에 아이가 현지 학생들과 함께 준비했을 걸 생각하니 기특했고 대견했다.

마지막 날 발표회


2주간의 스쿨링을 마친 아이는 또 가고 싶다며 다음에도 본인을 보내주기를 희망했다.

2주간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께서 편지를 주셨는데, 내용은 아이가 너무나 에너제틱하며 영어도 잘한다고 쓰여있었다.

물론 아직 우리 아이는 완벽한 문법을 사용하여 구사하는 영어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아이의 영어능력이란 문법부터 시작하여 머리로 생각해서 내뱉는 게 아닌, 한국어처럼, 일본어처럼 자연스럽게 흡수해서 내뱉는 것을 원했기에 반쯤은 옳은 길로 가고 있지 않은가 싶다.

또한 이중언어, 삼중언어로 향해가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나와 내 남편은 둘 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가 당연히 모국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을 것이고 그 가정에 맞게 이루어지면 된다. 하지만 한국어가 완벽히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아이는 2번째 언어, 3번째 언어를 소화할 능력이 생긴다 생각한다.


아이와의 한 달 살기 (2주 살기였지만)는 아이의 언어 실력뿐만 아니라 현지의 삶에 적응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더욱 크게 키워준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었다. 아이는 더욱 큰 세상을 소망하며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갈 것이다.

내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부와 명예를 물려줄 순 없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은 큰 세상을 보게 해 주고 경험시켜 주는 것이리라.

우리의 한 달 살기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또 어떤 변화와 경험을 이어가게 될까?

넓은 학교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