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속 런치(1)
시작은 내가 쓴 글 "의사는 왜 심각한 상황에서 보호자에게 말할까?"의 글부터였다.
https://brunch.co.kr/@jinnyim/72
이 글에 꿈꾸는 현자님이 댓글을 달아주시고 또 본인의 글로도 다시 써주셨다.
그래서 나는 이 분의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가장 좋았던 건 ‘유머감각'이었다.
매번 진료실에서 보는 의사들은 내 편견이었는지 딱딱해 보였는데 세상에 이런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니!!
나에게 조금이나마 갖고 있던 의사의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분의 글을 정주행하며 다 읽었고 매 번 업데이트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댓글로 책이 나와 이벤트로 작은 선물을 보내준다고 해서 메일로 연락처를 보냈더니 <의사의 생각>이라는 신간을 보내주었다.
청진기의 귀여운 사인과 함께.
정말 책이 나온다면 사야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책을 받았으니 도서관 소장용으로 하나 더 구입해야겠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브런치보다 더더 잼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역시나 브런치가 아닌 책으로 읽으니 일관적으로 느껴지는 그 분의 철학과 견해들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나에게 첫 댓글을 썼을 때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솔직한 반성과 사과의 따뜻한 느낌처럼 책을 읽은 나는 ‘의사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라는 댓글을 써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 책이 많이 팔렸으면, 앞으로도 좋은 글을 많이 써주었으면 하는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문득 나에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 나는 가까운 의사도 없고 아는 의사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때 가까웠던 의사가 있긴 했다.
김영훈이란 이름으로 처음 만났던 김승규의사
김영훈이란 이름은 작가일 때의 이름이었고 김승규는 본명이며 의사로 활동할 때 이름이었다.
철모르고 치열하며 열정적이고 자유로웠던 이십대 끝자락.
나는 그 때 막 보급되었던 pc통신의 매력에 빠졌고 그때도 pc통신 작가로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지금의 브런치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pc통신 작가들의 모임도 자연스레 형성되고 서로 만나고 또 그룹도 만들어지곤 했는데 그 때 만났던 사람이 김영훈이었다.
김영훈은 나보다 한 살위였고 처음에는 작가로만 알았었고 서로 자연스레 반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가 의사인지 몰랐다.
그런데 차차 그에 대해 알게 되면서 여러 가지에 대해 놀랐는데 의사였고 의사인데 오피스텔 월세에 살고 있었고 서울에 있으나 고향은 광주이고 광주에는 아이들과 부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내가 미혼이었으니까 분명히 이십대 중반이었는데 벌써 아이가 둘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와 나는 아주 공통점이 없었는지도 몰랐지만 꽤나 친근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했고 심지어 나는 그에게 애인역할을 부탁하기도 했다.
사연인즉슨, 그 당시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던 나는 엄마에게 이끌려 선을 보러 나갔는데 상대 남자에게 흥미가 없었다.
(명문대 나오고 대기업 다니며 집도 있다 했는데......키가 작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ㅎㅎㅎㅎ)
그래서 뾰로통해 있는데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고 '로또에 당첨되면 뭐할 거에요?'라고 물었는데 나는 '도박할 거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그 선남을 떼어냈다고 생각했는데 pc통신까지 날 찾아와서는 집요하게 말을 거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영훈이에게 부탁을 했다.
애인이라고 그만 말 걸어달라고 말해달라고.
그 덕분이었는지 그 남자는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내가 영훈이에게 그렇게 부탁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유부남이란 걸 알았기에 나와는 절대 그런 관계가 되지 않을 것이고 진짜 친구의 느낌으로 그런 부탁까지 했던 것이다.
가끔 사람들과 만나면 그는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편이었는데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론이 '프랙탈'이론이었다.
'프랙탈이론'으로 소설을 써보겠다고도 했다.
이 십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그 설명을 하던 그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래서 과학적 지식이 빈약한 나는 프랙탈 이론은 영원히 잊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나한테 했던 말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 부인과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었는데 그 당시 결혼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공감하기 어려웠고 그의 열정을 잘 알기에 그런 열정 때문에 자유로움을 갈구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의 걱정을 안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주 심각하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하고만의 친분이 아니라 전남편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전남편과 결혼 후 집들이를 했을 때 셋째가 태어났다고 부인과 함께 데리고 왔었다. 그 때 갓난 아이를 안고온 부인은 참 조용하고 단아한 인상이었다.
그 때 나는 못살겠다고 하면서 셋째가 생기고 부인과 외출을 한 그를 보며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걱정을 잊기로 했다.
그의 결혼에 대한 불평은 누구나 다 하는 평범한 불평으로 그렇게 잊혀졌다
다만 그가 나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부부관계가 나쁘다고 한 것이 아니라 진심의 고민토로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건 한 때의 어려움이라고만 이해했기에 배신감도 느끼지 않았다
살다 보면 한 때 어려웠던 부부 관계가 아닐까 그렇게 이해했다
아마 그와의 만남은 거기까 끝이었을까 아니면 그 후에 더 만났던가....아마도 의사로 너무 바빴기에 모임에도 잘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연락은 하고 지냈는데 전남편과 이혼하면서 더 이상 그와 연락할 일이 없어졌다
나는 전남편과 이혼하면서 전남편과 관련된 사람들까지 끊었거나 끊어졌기에 더 이상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업었다.
그렇게 영훈을 잊었고 나는 주변에 아는 의사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sns에서(sns는 잊고 싶은 사람의 근황까지 소상히 알려주기도 하니까)그를 보게 되었다.
이십 년도 더 지난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sns를 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생일을 축하는데 그는 답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그랬다.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sns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는 더 이상 댓글을 달 수 없었다.
그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사람들의 댓글을 통해 추정을 할 수 있었는데 .....
그는 7년도 전인 13년에 44살쯤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둔채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가 살아 생전에 적은 글들을 이제야 보았는데 그는 여전히 '자유로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건 이십년 전에도 그랬다. 그는 열정이 넘쳐서 몸밖으로 나오는 사람 같았다.
이십대에도 잠을 자나 싶을 정도로 깨어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사십대에도 다섯 시간을 잔다고 했다.
그리고 글만이 아니라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애인인지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 사람은 영훈이 죽은 후에 그의 sns에 글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와 마지막까지 많은 것을 공유했던 사이같았다 아이들의 흔적은 있었지만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십대의 그 고민은 한때의 가벼운 고민이 아니었을 지도 몰랐다
그가 나에게 털어놓았던 결혼 생활의 어려움은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가 괴로웠던 건 부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기 보다 자유롭고 싶었던 영혼의 괴로움 때문이었다.
의사로서의 훌륭한 경력도 있었지만 은퇴하고 싶다는 얘기도 자주 했었다.
아마 그가 살아 있었다면 이십년이 지나 연락을 해서 다시 작가지망생이었던 시기를 함께 했던 우리가 다시 작가로서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것 같았지만 그런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때 더 공감해주지 못하고 더 응원해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꿈꾸는 현자>님의 책을 읽으며 나는 영훈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 못해줬던 영훈에 대한 응원을 꿈꾸는 현자님에게 보내주고 싶다.
부디 지금처럼 아들 남편 아빠로서 또 의사작가로 ‘유머감각’을 맘껏 펼치면서 행복하게 장수하시기를 바란다
https://brunch.co.kr/@sssfriend
<브런치 속 런치>는 제가 브런치를 읽으면서 꼭 소개하고 싶은 브런치 작가들에 대해 써볼려고 언젠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매거진입니다 꿈꾸는 현자님도 한번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내주시는 바람에 제일 먼저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매거진으로 설정했습니다. 브런치 중에 소개하고 싶은 작가나 글이 있다면 자유롭게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