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크리스마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전을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이 글을 읽지 말고 영화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4423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내게 <러브 액츄얼리>였다.
영국의 히드로 공항에서 시작하는 첫장면부터 또 마지막 다시 공항 장면까지 보는 내내 설레는 <러브 액츄얼리>는 볼 때마다 감정이입되는 에피소드가 달라지고 또 우리 나라에서 삭제했었다는 감독판까지 찾아보곤 했었다.
그런데 작년에 <라스트크리스마스>를 보고 나서는 이젠 크리마스가 되면 이 영화가 떠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조지 마이클의 노래 'Last Christmas'가 어우러지는 이 영화는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여주인공이 부르는 'Last Christmas'는 조지 마이클 보다도 더 감미롭게 들렸다.
그리고 노래 시작 부분인
"Last christmas~ I gave my heart."
그리고 이 영화에선 last가 마지막이기도 하고 지난이 되기도 하고 또 heart가 마음이기도 하고 심장이 된다.
처음에 이 영화가 시작되었을때 흔한 로맨스 영화인가 싶었다.
로맨스 영화의 스토리 진행처럼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의욕이 없는 케이트가 우연히 톰을 만나게 되어 변하는 과정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남자 주인공이 너무 완벽했다는 데 있었다. 여주인공도 그런 남자를 의심하며 '연쇄 살인마'가 아니냐고 묻기도 하는데 도대체 그 남자의 정체가 뭘까? 를 계속 생각하며 보게 된다.
여주인공이 곤란할 때 나타나는 것도 그렇고 또 여자와의 스킨십에서도 신중한 것이며 또 노숙자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듯, 인격적으로 너무 훌륭해 보이니 말이다.
여주인공인 케이트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이민을 왔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했고 그래서 무언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매번 오디션에서 떨어지면서 크리스마스 선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앞날에 대한 희망이라곤 없어 보인다.
케이트는 성실하지는 않다. 이성 관계도 신중하지 않다. 바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고 또 가족과도 관계가 좋지 않아 집에서 살지 않고 친구네 집을 전전한다.
그 이유가 나중에 밝혀지는데 작년에 모르고 봤을 때와 올해 알고 봤을 때 참 달랐고 최근 큰 수술을 한 나는 케이트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도 케이트처럼 망가진 일상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회사와 집만 오가며 주말엔 맥주와 인스턴트 음식으로 떼우며 미드나 일드 한드로 밤을 지새다가 월요일에 간신히 출근하던....그런 때, 케이트처럼 외롭단 생각에 남자들도 만났었다.
그런 내가 변하기까지 고군분투했던 것처럼 케이트는 톰의 도움을 받으며 변해간다.
이 과정이 마치 케이트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전을 보고 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다시 인생에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케이트는 남마다 떨어지는 오디션에 목숨을 걸고 언젠가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어하지만 톰이 자원봉사를 한다는 노숙자 쉼터에 갔다가 거리에서 노래를 하게 되고 결국 노숙자들과 크리스마스 무대를 만들어 노래를 하게 된다.
케이트는 톰으로 인해 현실이란 곳에 발을 딛고 살게 된 것이다.
톰은 진짜 의문투성이였다.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니 핸드폰이 없고 천정에 올려놨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져서 한참을 나타나지 않는다. 케이트와 키스를 하고 나서는 이제 앞으로 나에게 의존하지 말하는 말을 한다.
케이트는 또 남자에게 차였다고 생각하며 톰을 찾아 톰과 함께 하룻밤 머물렀던 빈 집에 가게 되는데 그 때 만난 부동산 주인으로부터 집주인이 톰이며 1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케이트는 바로 1년 전에 톰의 심장을 이식 받는 수술을 했던 것이다.
톰은 케이트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더 로맨틱하게 말하자면 케이트의 가슴에 있는 남자라고나 할까.
그 때 난 또 한번 느꼈다. 완벽해 보이는 남자는 환상일 뿐이다. 왜냐면 완벽한 남자란 여자들의 머릿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케이트가 아팠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것이 심장 수술인지 나오지는 않아서 최대한 반전까지 숨기려 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사랑 영화에서 갑자기 인류애로 확장된다.
톰이 케이트에 주고 떠난 것은 이성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인류애였던 것이다.
그래서 케이트도 이성과의 만남이 아니라 노숙자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작년에 볼 때는 별 생각 없이 봤던 수술 장면이 아주 짧지만 나에겐 참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앞에서 봤던 케이트의 행동들이 큰 수술 후의 행동들이라니 더 이해가 갔다.
특히 톰에게 자신의 심장 수술 자국을 보여주며
'수술을 할 때는 다 날 걱정하더니 수술이 끝나고 나니 평범하게 살라고 해.'
라고 하는 말이 와닿았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났고 남들이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곧 다음 달 추적 검사를 앞두고 있는 나는 다시 불안한 마음에 걱정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크게 아프고 나면 굉장히 금욕적인 생활을 하거나 사람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마음 먹기가 쉽지 않다. 케이트처럼 일상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막상 아프고 나니 알겠더라는 것.
케이트는 자신이 모르는 사람의 심장을 받아 살고 있다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을 때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다.
나는 수술을 한 후에 수혈을 받았었다. 나는 한번도 수혈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게 누군가의 소중한 피라고 생각하니 참 감사했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에게 많이 나누고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영화와 달리 훈훈한 혼자로 끝나는 이 영화의 엔딩이 살짝은 서운하다.
케이트에게 다시 사랑이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