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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 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처절하게 망했다.
모두가 성공만을 얘기할 때, 또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침묵의 채찍을 맞고 있는 것 같은 이 사회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실패담이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현실은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다수의 이야기가 결국 소수의 이야기가 되는 묘한 상황에서 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게 해준 해길 작가님에게.
책에 있는 출판사에 전화를 했고 통성명을 하고 작가님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보통은 책이 좋아도 서평만 쓰고 말았는데 이번 책은 작가님을 꼭 만나야 할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인터뷰는 핑계였을지도 모르고 내 인생에서 실종된 것 같은 일본에서 생활한 7년의 의미를 이 책을 읽고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터뷰어이고 해길 작가님은 인터뷰이였지만 2시간 가까운 대화는 마치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던 것처럼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인터뷰 말미에서 해길 작가님이 물었다.
왜 사람들은 실패를 하면 '좋은 경험이다'라고 할까요?
그게 꼭 실패해서 듣는 말 같더라고요.
성공한 사람에게는 '좋은 경험'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나도 생각하고 있던 얘기이기도 했다.
그냥 잘못되었다고 실패했다고 인정하면 되는데 왜 굳이 '좋은 경험'이라고 합리화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대부분의 영화나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대부분의 책은 '성공담'이다.
그런데 나는 성공담이라고 소개되는 이야기들을 볼 때 가끔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뭐가 성공이지? 유명해지는 거? 돈 많이 버는 거?'
여행이나 다른 나라의 생활을 담은 책도 그랬다.
'떠나봐, 이렇게 좋은 데 왜 못 떠나는 거야?'
'한국은 좁다고. 넓은 세계로 나가봐."
이렇게 독려하는 책들을 읽으면 그 안의 내용을 보면 은근히 고생하는 이야기도 많았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왜 여행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도 많이 들었는데 한결같이 그런 이야기들의 어조는 자신이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소중한 경험을 한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이런 내게 이 책은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이랄까.
대놓고 실패담을 책으로 썼다니. 성공담의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게 성공이 맞아?'라고 맘속의 시비를 걸었던 것처럼 '과연 실패가 맞아?'괜히 그러다 마지막에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는 거 아냐?라는 의심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망할 대로 망한다. 미국에서 마지막까지 망하고, 어쩌면 트럼프마저도 이 집이 망하는데 일조를 하고 코로나도 일조를 하고 그 와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잡은 직장에서도 해고를 당하는 등.
망하고 망한다.
이 정도면 진짜 '좋은 경험'이라고 하는 건 위로도 안 될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안 좋은 경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내거나 또 나 스스로에게도 하지 못한다.
그건 단순히 경험의 부정이 아니라 내 존재와 내가 살아온 시간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첫 번째 질문!
왜, 실패담으로 책을 쓰려고 했어요?
해길작가님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에서 망해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망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취업을 하고 내 인생이 이제 풀리나 싶을 때 코로나로 또 잘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행이란 것이 어디까지 지속되는지 끝도 모를 시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또 본인 가족들이 열심히 살아냈던 발자취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게 싫어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망했지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본인과 가족들이 살았던 그 시간과 노력을 남기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처음 연재될 때의 제목이 '우리는 미국에서 망했다'(브런치 연재제목)라고 했다. 어쩌면 해외 생활에 대한 동경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 같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건 '사실'이었다.
해길작가님을 인터뷰하는 동안, 성공과 실패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산다면 평범하게 살아도 그러려니 할 텐데 외국 생활을 한다면 쉽게 '성공'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그리고 그 성공이라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 여자에게는 '외국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포함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살면서 삼십 대 중반에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면 실패라고 하지 않을 텐데 해외 생활 7년을 하고 돈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면 쉽게 '실패'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나의 7년 넘는 일본 생활은 내가 돈을 벌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스스로도 혹은 남들도 생각했다. 거기다 일본어 실력은 덤이 아닌가.
그런데 난 일본을 떠올리면 어둡고 우울했고 또 '회사-집', '야근' 등등. 그다지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았다. 왜 나는 일본 시절을 떠올리면 우울할까. 월급도 많이 받고 좋은 집에 살았는데....왜 난 그걸 다 버리고 한국으로 왔을까.
그 답을 <그때 미국에 가지 말 걸 그랬어>를 읽으며 찾을 수 있었다.
생생한 '타향살이'의 묘사가 와닿으며 내가 일본에서 생활한 시절의 '외로움'을 다시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살면서 부산에 살다가 서울에서 살게 되면 혹은 전라도에서 살다가 경상도에서 살게 되면 주변에서 걱정을 하며 타향살이가 힘들지 않냐고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간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타향살이에 대한 걱정보다는 '좋겠다.'라는 말부터 나온다. 그리고 조금 더 덧붙이자면 '나도 가고 싶다.'라고 말이다.
이것 또한 모순이지 않은가.
왜 같은 나라에서는 고향과 타향을 구분해서 적응을 걱정하며 외국은 무조건 부러워 하디니.
아마 해길작가님네 가족도 그런 환상과 착각 속에 미국 생활을 선택한 것이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완벽해 보이는 사업 계획과 학업계획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 기반으로 영주권을 따겠다는 미래까지.
어찌 보면 이런 계획은 한국에서도 쉽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이런 인생이 쉽지 않다.
아버지도 취업비자를 더 연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해길님은 학생 비자로 계속 연장하며 나중에는 어머니까지 학생 비자를 받아 미국의 생활할 수 있는 자격을 유지한다.
그렇게 지낸 7년은 결국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전 재산, 미국에서 샀던 집까지 모두 날리고 끝이 난다.
그래서 '실패'라는 말 외에는 더 할 말이 없었다고.
책에서 실패는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처음에 사촌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 바로 돌아왔다면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살면 살수록 늪에 빠져드는 것 같은 전개가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또 합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더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질문할 수 밖에 없었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는데
가족들이 전부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처절하게 노력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는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범죄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비자 갱신을 하지 못하거나 만료돼서 불법체류자가 되는 경우의 이야기를 쉽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해외에 거주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 사는 건 자신의 국적을 증명해야 할 일이 가의 없지만 해외에 살면 자신의 어떤 자격으로 살고 있는지 증명해야 할 일이 생각 외로 많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상관없지만 취업, 학업 등의 경우는 외국인 등록부터 해야 한다.
외국인 등록증이 없으면 핸드폰도 만들 수 없고,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없고, 운전면허증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그 자격 유지만을 위해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책을 읽으면서 아슬아슬하게 느끼는 때가 이렇게 힘든데 가족 중 한 명쯤은 힘드니까 불법체류자가 되는 게 어떨까 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는 일을 해도 통장으로 돈을 받을 수 없고 비행기도 탈 수 없고 언제 본국으로 송환될지도 모르는 그런 두려움 속에 사는 게 더 힘들 거라는 게 너무 빤히 보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착하면서부터 꼬여 버린 미국 생활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관계는 어떠했는가?
우리는 혼자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 가족이 함께 나가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서로 의지하면 가족애도 더 끈끈해진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해길님 가족의 균열은 읽는 독자로선 참 가슴 아팠다.
특히 아버지는 한국에선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는 분이었는데 미국에선 화를 많이 내시고 또 그로 인해 많이 미안해하셨다. 그 이유는 언어 때문이었다. 간단한 일이라도 본인이 아닌 언어가 나은 자식을 앞세워야 하고
자식인 해길님도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데 부모를 대신해야 하니 또 본인은 다시 친구에게 부탁하고.
한국에서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가족의 갈등. 서로에 대한 원망, 그로 인해 서로 멀어지는 .....
어쩌면 미국에서 돈만 잃은 게 아니지 않았을까. 가족이란 관계, 또 그 외에 공기처럼 우리가 매일 엮여 있는 사회적 관계도 이방인에겐 제한적이었다.
가족관계를 떠나, 친구 관계, 이성 관계, 그 외 동료 관계도 언젠가 떠날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바람에 오래 연락하는 사람을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해외 생활의 무서운 점 중에 하나가 관계의 단절, 관계의 빈약함도 있었다.
이렇게 여지없이 해외 생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데는 해길님의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는 필력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미국에서도 글을 써둔 게 있는지?
출판은 어떤 경로로 하게 되었는지?
글을 보면 마치 지금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생생한데 미국에서 생활할 때 글을 써두었냐고 물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생활은 너무 힘들어서 글을 쓸 여력이 없어 보여서였다.
역시 예상대로 미국에서는 글을 쓰지 못했고 앞에서 말한 한국에서 취업한 직장에서 잘리고 쓰기 시작했는데 미국 생활 그때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브런치에 연재했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출간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미국 생활의 7년은 망한 것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해길작가님의 재능은 시련 속에서 단련되어 글쓰기로 발현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리라 기대한다.
나는 그런 해길 작님에게 인터뷰를 한 첫 번째 독자로 기억되고 싶기도 했다.
너무 뻔한 질문이지만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을 물었다.
"20대에는 정말 거창한 꿈이 있었어요. 그리고 꿈이 없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말을 빌려 얘기하자면 행복한 삶이란 자려고 누웠을 때 다음 날이 두렵지 않은 거,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선 내일이 오는 게 너무 싫었어요."
아마도 그건 포기나 회피가 아닌 단단함의 다른 표현인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리고 긴 삶의 여정에서 한 부분만 떼어내서 성공과 실패로 얘기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왜냐면 우리는 실패도 지나서 살고 있고 그래서 이렇게 만난 게 아닌가.
어차피 엔딩은 멀었다. 성공이라 불리든 실패라 불리든 우린 그 모든 걸 통과해야만 삶의 종착역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작가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의 퍼즐을 맞출 수 있었어요. 회사에서 일본어로 하루 종일 긴장하며 일하고 나면 저녁에 식당에 가서 메뉴판조차 읽기 싫었어요. 그렇게 힘들었던 생활을 하고도 성공했다고 덮어두고 있었어요."
사람과 만나는 것도 운명이듯이 책을 만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허울 좋은 평가 때문에 내가 얼마나 우울한 삶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나 자신조차 돌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그때의 나를 보듬어 줄 수 있었다. 타향살이가 참 힘들었다고 말이다.
우리는 마음을 모아 마지막으로 함께 말했다.
내 삶을 평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 해도 얼마나 훌륭한 삶의 태도인가라고 말이다.
남들이 얘기하는 성공과 실패가 아닌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인정해 주자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어차피 엔딩은 멀었잖아~함부로 얘기하지 말자.
아쉽지만 또 다음을 기약하며 해길작가님과 인터뷰를 마쳤다.
오늘 우리는 다음 날이 두렵지 않게 잠드는 하루가 될 것이다.
p.244
2021. 10. 6
<피오나, 해길작가와 만나다>
해길작가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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