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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Apr 28. 2024

그림을 보러 갔다가 벽을 보고 왔다-제4의 벽:박신양

이번 전시는 '박신양' 이름만 보고 갔다.

지나가다 우연히 본 현수막에서 '박신양'의 사진과 함께 '박신양' 전시회를 '문화탐방'한다는 문구를 보고 신청을 했다.

신청 시작 시간에 나는 수업하러 가느라 운전 중이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클릭을 시도했다. 결국 대기 첫 번째로 접수할 수 있었다. 대기 첫 번째라면 내 순서가 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기대대로 참가할 수 있었다.


전시회에 가기 전까지는 한 때 배우였던 그가 그린 '그림'을 보러 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솔직히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건 '그림 실력'이었다.

하지만 이미 예술은 '실력'만이 아니라 예술가의 철학과 표현 방법이 더 중요한 시대이고, 과연 박신양의 '의도'가 궁금했다.


처음에 '제4의 벽'이란 제목을 보았을 때는 전쟁이나 환경을 얘기하는 인류적인 콘셉트로 추측했다.

 

전시 입구에 있는 설명이었다.

솔직히 이 설명으로는 '제4의 벽'에 대해 관람객들이 이해하기엔 부족했다.


우선 나는 제1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1번이니까.

그런데 전시회에 오기 전에 안내문에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작가가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1 전시실을 관람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문구를 '연예인이라서...'라고만 이해했다.

연예인은 우리가 가까이 가지 못하는 존재니까, 그리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우리가 갔을 때는 작가가 없으니 1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게 과연 좋은 건지 아닌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처음에는 박신양을 볼 수 없나 보다 해서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다.


미술관은 철제 공장을 개조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철근으로 된 묵직함이 압도했고 작품들도 대부분 크기가 크고 붓질도 거칠고 커서 역동적이었다.


그다음은 2 전시실, 2 전시실은 가운데가 뚫려 있어서 1 전시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가장자리에 그림이 걸려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한 층을 더 올라가서 3 전시실.

나는 3 전시실에서 박신양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전시애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제4의 벽'이란 연극에서 나오는 말로 원래는 4면이 막힌 공간인데 한 면을 뜯어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데서 나온 말이라고 했다.

그래서 막혀있어야 하는데 뚫린 그 벽은 제4의 벽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 (보이지 않는) 벽은 연기자와 관객 사이의 암묵적으로 합의된 벽이기도 하지만,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벽이 된다고.

관객들은 그 벽이 있어서 자신이 앉아 있는 공간인 현실에서 상상의 공간을 바라보고, 배우는 상상의 공간에서 현실의 관객을 향해 연기를 한다.


제4의 벽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박신양은 어느 날 연기를 해야 하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대사 한 번 하고 쉬고, 대사 한 번 하고 쉬고 이런 식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영화가 완성되고 관객의 자리에 앉아 편집이 된 그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관객의 입장이 되어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자신은 연기를 못했다고 계속 자책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제4의 벽'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그제야 나는 그의 작품들을 꼼꼼히 보고 무언가를 느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시는 작품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작품이 나무라면 전시는 숲이었다. 나무가 있어 숲이 완성되지만 숲과 나무는 결코 같지 않다.

상위와 하위개념처럼 작품과 전시를 이해하기 위한 위계가 있었다.


다시, 제1 전시실로 돌아와 얘기하면 제1 전시실은 전시실이라기보다는 '무대'개념이었다.

박신양이 작업을 할 때는 관객은 위에서 제4의 벽을 통해 내려다보는 것이다.

대신에 그가 작압하지 않을 때는 백스테이지 투어처럼 들어와 구경할 수 있게 해놓았다.

제4의 벽이 보이는가?

난 보았다.(착한 사람한테만 보인다.ㅎㅎㅎㅎㅎ)

<실제 작업의 현장>


기대했던 박신양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늘 나는 이곳에 가지 않았다면 '제4의 벽'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그림을 보러 갔다가 벽을 보고 왔다.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마시고 돌아간 토끼가 물만 본 것이 아니라 옹달'샘'을 본 것처럼.


전시는 mM아트센터, 4월 30일까지.


http://mmartcen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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