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순 없는 거였다.
내가 자그마치 18년을 기다려온 여행이었다.
2008년 12월 연말에서 2009년 1월을 넘겨 뉴욕에 머물렀다. 매일 밤 뮤지컬을 봤고,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봤고, 「마술피리」 오페라를 봤다. 맨해튼 시내를 업타운부터 다운타운까지 차 한 번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그때 직감하긴 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이라고.
그 후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꾸었던 꿈은 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 뉴욕 여행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행을 다니지 않고 근검절약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뉴욕은 비행시간이 열 시간이 넘는 곳이니, 아이가 어느 정도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기준을 일곱 살로 잡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가야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쳤고 여행의 꿈은 접었다. 그리고 나는 직장암에 걸렸다. 그렇게 뉴욕은 점점 멀어져 갔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꼭 다시 가겠다는 남모르는 다짐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2025년 말,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뉴욕행 비행기 표를 결제했다.
6학년 딸과 떠나는 뉴욕 여행이라니. 뭔가 근사했다.
하지만 나는 잠을 자고 일어나니 20년이 흘러 세상이 바뀌어 적응하지 못한 ‘립 반 윙클’이 되어 있었다. 18년 전의 감각으로 여행을 하려 했지만, 함께한 딸은 여기가 2025년의 뉴욕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행을 망친 이유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9월에 접질려 인대가 파열된 발목은 걷기 중심의 여행을 지하철과 택시 위주로 바꿔 놓았다. 호텔에서 외출하려면 휴대폰부터 켜서 지도 앱, 예약 앱, 정보 앱을 차례로 확인해야 했다. 휴대폰이 여행을 하는 건지, 사람이 여행을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기 전에, 앱이 이미 여행을 빼앗아 간 것 같았다.
시차는 또 왜 그렇게 적응이 안 되는지. 해가 뜨면 졸리고, 해가 지면 말똥말똥해졌다. 혼자였다면 밤거리라도 나가 봤을 텐데, 아이와 함께라 밤 외출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오후 두세 시쯤 되면 너무 졸려 호텔로 돌아와 낮잠을 자야만 했다. 그렇게 간 「호두까기 인형」 발레의 로열석에서 아이는 고개를 떨군 채 잠만 잤다.
여기서 이렇게 떠들 일이 아니다. 어차피 연재할 이야기니, 망친 뉴욕 이야기는 서서히 풀어가기로 하고 이제 도쿄로 떠나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도쿄는 계획된 여행도 아니었고, 18년 동안 가슴에 품은 로망도 아니었으며, 나에게 여행지로서는 가장 마지막 선택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십 년 가까이 살았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도쿄의 겨울은 밖은 한국보다 따뜻하다. 그러나 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춥다. 온돌도 없다. 냉난방 겸용 에어컨으로 버텨야 하는데, 일본인들은 그것마저 아깝다며 밤에는 끄고 잔다. 도쿄를 떠난 후, 겨울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충동적으로 도쿄행 비행기 표를 결제한 이유는 아마도 망친 뉴욕을 만회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사소한 이유로, 때로는 큰 이유로 여행을 망친다. 동행자와 마음이 맞지 않아 출발할 때보다 돌아올 때 마음의 거리가 더 멀어지기도 하고, 현지에서 잘 몰라 불필요한 비용을 쓰고 나서는 그 돈이면 소고기를 사 먹을 수 있었겠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유명 관광지가 상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 막상 돌아오면 슬슬 만회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다를 거라고 기대한다. 나도 그렇다. 뉴욕과는 다를 거야, 도쿄는. 아니, 달라야 한다.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지만,
여행은 두 번 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