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하게 인간의 양면성을 고민하고 싶다면
드라마 <로열패밀리> 줄거리
로열패밀리 JK가(家) 안에서 벌어지는 JK회장 공순호와 비참한 삶을 견디고 버티는 며느리 김인숙의 인생을 건 전쟁 이야기. 2011년 MBC에서 방송됐으며 김영애(공순호 역), 염정아(김인숙 역)이 연기했다. '갑동이', '캐리어를 끄는 여자'를 쓴 권음미 작가와 '기황후', '개인의 취향', '신입사원'을 연출한 한희 PD의 작품.
로열패밀리는 볼수록 고통스러우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빠져들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힘겹죠. 그와 동시에 내가 잊으려했던 감정을 떠올리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게 됩니다. 삶이 퍽퍽하고 내 감정과 마음을 컨트롤하기가 어려울 때 치열하게 나를 이해하기 위해, 펑펑 울어보기 위해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 어떨까 합니다.
로열패밀리는 인간의 본성에 집중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치열하게 파고듭니다. 성공과 생존,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해 끝까지 달리는 김인숙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비춥니다. 절대 권력인 공순호는 김인숙의 욕망과 본성을 끌어내는 가장 큰 자극제가 되죠. 분노, 증오, 질투, 우월감, 위선, 불안감, 두려움, 공포, 죄책감, 연민 등 수많은 감정이 두 여인의 전쟁 속에서 드러납니다.
로열패밀리는 특히 본성의 이중성·양면성에 집중합니다. 주인공 김인숙이 천사와 악마라는 양 극단의 캐릭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김인숙은 고아원을 후원하고 살인자로 누명을 쓴 고아 김지훈(지성)을 구원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명사이면서 재벌가인 JK 며느리라는 사실도 비밀로 한 채 생활하죠. 천사나 다름 없는 캐릭터입니다. 반면 과거 김인숙(어린시절 이름은 김마리)은 한 술집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미군을 죽입니다. 또 아들 조니가 본인 때문에 죽게 되죠.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는 격한 캐릭터를 통해 악마의 모습도 갖고 있습니다.
'K'라 불리던 김인숙(사진 왼쪽)이 JK그룹의 지주사인 JK클럽 사장으로 취임(사진 오른쪽)하며 밝은 웃음을 띄고 있다.(iMBC 로열패밀리 공식홈페이지)
드라마는 김인숙과 공순호의 대결을 통해 극을 이끌어갑니다. 그녀의 양면적인 감정은 공순호를 상대할 때 가장 크게 발현되죠. 김인숙은 자신을 지독하게 미워하는 공순호를 증오하면서도 그에게 인정받는 순간 너무도 행복해합니다. 이름이 아닌 'K(케이)'라는 정체 불명의 호칭을 들으며 18년간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던 그가 공순호의 인정을 받고 '둘째며느리'이자 'JK클럽 사장'이 되는 순간 홀로 집에 앉아 웃음을 감추지 못하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아들 조니가 자신을 아들로 인정해달라고 외치는 순간에도 "너 때문에 모든 걸 다 잃을 수 없어, 차라리 날 죽여."라며 공순호에게서 인정받은 이 성공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결국 한순간의 '무지개'에 취해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실을 알게 된 김인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찾기 위해 공순호에 대한 증오를 앞세워 종말을 향해 나아갑니다.
로열패밀리이자 정가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살인·감금·납치·도청·뇌물 등 각종 자극적인 소재와 살인자라는 비극적인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를 이끌어갑니다. 고아였던 김마리가 대한민국 최고 재벌인 JK지주사 회장이 되는 순간까지 드라마틱하게 상황이 벌어지죠. 일상에서 도저히 찾아보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하지만 스토리를 전개하며 김인숙의 선택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말이죠. 지독히도 어려웠던 그녀의 삶에 돈과 명예,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성공은 한줄기 빛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비록 극단적인 상황일지라도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을 수 있을법한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주목하죠.
로열패밀리는 전체적으로 스토리나 감정이 어둡습니다. 감정의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를 실험하는듯 두 여인의 대결이 극으로 치닫죠. 김인숙의 인생이 어둡게 비춰져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안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를 받으며 견디고 자신으로 인해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엄마의 절규가 밝을 리 없으니까요. 김인숙으로 인해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질투와 증오로 며느리를 대하는 공순호의 감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로열패밀리는 '시선의 드라마'입니다.
압도적인 카리스카 공순호와 연민의 대상에서 폭발적인 증오를 내놓는 김인숙의 시선이 드라마를 사로잡습니다. 대사를 통한 직접적인 의사 전달, 감정표현보다 눈빛 하나로 감정을 드러냅니다. '정가원에 허언(虛言)은 없다'며 말 한마디를 조심스럽게 내뱉는 재벌가의 특수상황에 적합한 연기입니다. 개인적으로 배우 김영애와 염정아의 명품 연기가 최고에 달한 작품이라고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선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장면은 13회에서 김인숙이 공순호를 빤히 쳐다보는 씬입니다. 사실 빤히 쳐다본다기보다는 뚫어질 듯 노려보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듯 합니다. 이렇게 노려보던 김인숙은 나레이션을 통해 '마음껏 짓밟으세요. 사람 말로 죽이시는거 오늘이 마지막이 될거에요'라고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눈빛을 본 공순호는 눈빛에 불안감을 느끼며 이후 고문변호사에서 "좀 전의 그 아이 눈빛, 왠지 끝을 보기로 작정한 아이 같았습니다. 그동안 그 아이에 대해 가졌던 불편한 감정, 그게 뭔지 곧 실체가 드러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군요"라고 고백합니다.
눈빛에 담긴 의미 만큼이나 이 드라마의 대사 한 줄은 강한 힘을 갖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시청자 입장에서 수차례 다시봐도 지겹지 않을 만큼 대사를 곱씹어보기 좋은 드라마라고 평가합니다. 속을 알 수 없는 두 여인이 얼핏 자신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 한마디 말로 내뱉기 때문이죠. 생각의 실마리를 알기 위해서는 대사 한마디를 해석해야만 합니다. 실제 조니를 찌르지 않았던 김인숙이 왜 자신을 살인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의미에서 김인숙이 공순호에게 자신의 삶을 적은 편지를 건네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사를 다시금 곱씹어야합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최고로 꼽은 명장면은 공순호와 김인숙이 제각각 자신의 생각을 '고백'을 하는 장면입니다. 공순호는 16회에서 꼬일대로 꼬인 김인숙의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이유를 고백합니다. 친구이자 고문변호사에게 술 한잔의 힘을 빌어 이렇게 말하죠.
"왜 (김인숙의) 진심이 그렇게 미웠을까요. 포기하고 떠나는 심성, 욕심없는듯한 모습, 그 착함. 그걸 회장님과 동호가 좋아한다는 게 싫었습니다. 나와는 너무 다른 모습, 그걸 남편과 아들이 좋아한다는 걸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밟고 싶었고 밟았어요."
질투가 결국 증오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 회장이란 지위에도 공순호는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었던 남편과 아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그 사랑을 독차지한 김인숙을 질투한 겁니다. 세 며느리 중 유독 둘째 며느리인 김인숙에게만 증오를 앞세운 이유를 설명한 겁니다. 배우 김영애의 카리스마 돋보이는 공순호 연기에 유일하게 힘을 빼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인숙의 고백은 격렬합니다. 18회, 마지막 정점을 찍기 직전 자신이 아들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아들과 작고 어두운 방에 갖혀 성공과 모성애의 갈등을 겪던 자신을 떠올리며 절규하는 장면이죠.
"여기부터, 여기가 내가 인간이길 포기한 지점이야.(중략) 악마가 나한테 말을 건네는거야. 그정도로 사람이 죽지는 않아. 괜찮을거야. 너 이제서야 사람 취급 받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끝나면 너무 허무하잖아. 난 그 말을 믿고 싶었어. 그렇게 타협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난 사람이 아닌거야. 그러니까 내가 죽인거 맞아."
김인숙은 아들이 죽고 나서야 뒤늦게 자기 자신을 원망합니다. 페이퍼나이프를 들고 아들이라 인정해달라고 외치는 조니를 보며 자신의 성공을 내려놓지 못했던 자신이 곧 악마라는 것이죠. 자신이 아들을 찌르지도 않았고 피흘리는 조니를 살리기 위해 119에 전화도 합니다. 급하게 사람을 데리러 달려나가기도 하죠. 어머니로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들을 하던 본인이 결국 성공을 선택해 아들을 외면한 것 만으로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결국 두 여인이 파멸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되뇌이게 합니다. 자신이 했던 선택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시에 '끝'이라는 선택을 하게끔 하는 것이죠.
참고/
http://blog.naver.com/bigjhj/221143684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