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구업체에서 협업을 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내 인스타그램을 보고 클래스 101, 아이디어스에서 먼저 입점 연락이 오던 때였다. 집에서만 작업하다 보니, 외부로 수업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집에서 혼자서 삽질하는 게 아니라 외부 강의까지 시작한 '공인'된 사람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하고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뻘 되시는 사장님과 종로에서 만나, 서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우리가 만나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건지 설명을 들었다. 커다란 우드슬랩 테이블에 레진으로 파도를 만들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고 하시며 나중에 한 번 봐달라고 하셨다. 내가 인스타에 올리고 있는 작은 소품 작품들을 수업 커리큘럼으로 만들어 정규반 운영을 함께 해보자고도 하셨다. 그래, 내가 하고 싶던 건데. 역시, 우주는 딱 맞는 자리에 이런 인연을 가져다준다니까. 놀라고 신나서 두 시간쯤 얘기한 후 헤어질 때쯤 수업할 곳 주소를 물었더니, 용인이라고 하셨다.
띠용, 용인이라니. 아니, 강남에서 출발하면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고, 용인에서 광역버스를 내린 후 마을버스로 10분만 더 오면 된다고 하셨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못 갑니다.
서너 시간 수업을 하려고 앞뒤로 최소 두 시간 반씩 5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 그러니까 하루 9시간 소요.
아이 둘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맡기고 내가 픽업할 수 없으니 남편과 시터분의 도움까지 받아야 할 지경인데 과연 이게 맞는 건지. 고민하다 이틀째 되는 날, 용인까지는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아, 얼마나 아쉽던지. 강사 경력이 있으면 내 일이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은 미련이었다.
사장님은 며칠간 거의 매일 전화가 와서, 벌써 강사진을 다 꾸렸다고 좋아했는데 빠지면 어떡하냐, 서로 잘 성장해 보자며 며칠간 전화로 나를 설득하셨다.
남편은 내게, 그분이 얼마를 제시하며 와달라고 하냐고 물었다.
"돈이 중요해?"
"그럼 뭐가 중요해?"
-
돈 얘기는 들은 바가 없었다.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사이가 될 것이었고, 나는 지금 '외부 강사'를 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다 보니, 강사료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가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2시간 동안, 아니 그 이후 여러 번의 통화에서도 보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같이 성장하자는 게 어떤 의미였을까. 학생을 모집해 보고 그 학생들 수업비를 강사 몇 명 돈으로 나누자는 건가? 모집이 잘 안 되면?
하마터면 호구가 될 뻔한 게 아닌가. 용인이 아니고 서울이었어도, 이런 식이면 가지 말았어야 했던 거다. '잘 나가는 강사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커서 정작 중요한 '나의 가치'를 잊고 말았다.
얼마 전에는 백화점에 내 그림을 전시할 기회가 생겼다. 백화점이라니! 초대전이라니! 나에게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것이 기뻤다.
백화점에서는 이 업체에 전시장에 대한 권한을 위임한 모양이었다. 설치하기로 한 날 점심쯤, 전시 일정이 변경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전.시.당.일. 변경이 당황스러웠지만, 문제없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호구(=나)는 외쳤다.
그다음 달에는 내게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 이 업체에서 백화점 VIP를 대상으로 그림 수업을 진행해 달라고 하셨다. 5일간 130명 수업이라고 했다. 꽤 큰 금액이었기에 중요한 일정을 모두 조정하고 다른 일정을 위해 사람도 써야 했다.
일정을 맞추고 재료도 주문하고 샘플도 만들었다. 수업을 나가기 직전, 업체에서 전화가 와서 미동 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날짜는 두 배로 늘어났고 수강생은 반으로 줄었으며 너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도 항시 대기 상태로 강의실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남는 재료는 다음에 자신들이 다른 수업을 잡아줄 테니 그때 쓰면 되지 않겠냐며 선심 쓰듯 말했다.
이런 뜻이었겠지.
-넌 벌써 재료를 샀잖아. (=이쯤 되면 빼박.)
-수업 4일 전인데 금액이 반토막 난들, 네가 수업 안 하고 배기겠냐.
-5일간이라던 수업이 열흘이 되었지만, 당장 니 스케줄이 어떤지는 내 알 바가 아니야.
-다음 수업은 신촌 백화점에서 잡아줄 예정인데, 지금 네가 깽판 치고 나가면 그 수업도 못할 테지.
-그래도 안 할래? 뭐 어쩔 건데.
괘씸했다. 슈퍼 갑의 자리에서 신인 작가 목줄을 쥐고 마구 흔드는구나. 마흔이 훌쩍 넘은 나에게 이렇다면, 20~30대 작가들한테는 오죽할까. 존중이라고는 없는 이 대화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돈이라도 받고 할까 싶은 내가 정말 싫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지켜내야 하는 것이 나의 존엄이므로, 결국 나는 그 수업을 못하겠노라 연락했다.
(당일, 다른 작가 한 명이 바로 섭외되어 수업은 무사히 이루어졌다고 했다.)
이제 시작한 무명작가의 사정을, 갤러리들은 빤히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재본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슈퍼 을이 되지 않기 위해, 나를 지킬 돈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
그림장사꾼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려 할수록, 피하지 말고 돈 얘기를 해야지. 그렇게 나의 존엄을 지켜가는 내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