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직업이 되는 과정

취미 by 진희

by 플로우지니

나의 취미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주 어릴 때, 학교에 다닐 때부터 썼던 취미는 그림그리기와 책읽기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취미를 묻는건, 그 사람의 취향을 알고 싶다는 뜻이 아닐까.

학창 시절 써넣던 '그림 그리기'와 '책 읽기'라는 평범한 항목은, 성인이 되면서 환상같은 것이 되었다. 아,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고 싶다. 어릴 때는 좋아했는데. 책 많이 읽는 사람이고 싶다. 어릴 때 책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그건 마치 꿈같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저 그런 학교를 졸업해서 매일 수학 문제를 풀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급급했던 나는, 꽤나 괜찮은 수입에 다른 걸 다 잊고 살았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배웠으면 잘 할 수 있었겠지. 그런데 벌써 20년이 지났잖아. 지금 그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람.

어릴적 좋아하던 씨앗같은 것은 깊이깊이 가슴 속에 묻혔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게 있는지조차 잊고 살았다.




그림이라는 취미 생활을 시작한 것은, 둘째 아이가 돌을 막 지났을 때였다. 아줌마가 취미 생활을 한다는게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애를 맡기면서까지 일주일에 한 번 내가 좋아하는 걸 한다는 것이, 왠지 이기적인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두렵기도 했다. 실은, 결혼하고 몇 번 그림을 배우려고 해보았는데 번번이 그만 두었두었더랬다. 내가 또 그만두면 어쩌지? 계속된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네. 이번에도 선생님과 안맞으면 어쩌나, 같은 걱정이 시작도 하기 전에 스물스물 올라왔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화실로 들어섰고, 이미 다니고 있던 서너명의 또래 언니들과 선생님이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어색함도 잠시, 세시간은 너무 행복했다. 너무, 라는 표현은 부족하다. 환상적으로! 정말 많이 행복했다.
그간 여러번 그림을 배워보았지만, 이렇게 좋은 선생님은 처음이었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은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일주일에 단 한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삶이 얼마나 많이 바뀔 수 있는지 경험했다.

화실에 다니며 느끼는 이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여러분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주일에 딱 두세시간 떼어서 해보기를 권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고 있는 기분을 책으로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이 어느정도 모였을 때, 글쓰기 선생님께 글을 보여드렸더니 삽화로 본인의 그림을 스무장쯤 넣으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그리는 그림으로 스무 장을 만들려면, 족히 2년이 걸려요, 선생님. 하면서 웃었다. 삽화까지 그릴 실력은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왜 안될까? 왜 나는 삽화를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할까? 화실에서 그리는 시간 말고, 조금 시간을 내서 혼자 그려볼까? 선생님이 내게 삽화 이야기를 꺼내신 건, 어쩌면 우주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일 수도 있어. 그 메세지를 따라가보자.

그렇게, 나는 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뭘 그리고 싶은지를 그 때 처음으로 골랐다. 아니, 선생님이 제시하는 샘플 그림들은 늘 있었다. 나의 수준이면 이런 샘플들 중에서 고르는 게 맞다는 선생님의 조언이 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오롯이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고를 시간이었다.
그리고 싶은 사진을 고른 후에는, 어떤 기법으로 그릴지 샘플로 보여줄 사람이 없었다. 나의 방법으로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았다. 늘 선생님이 한 번 그려주시면 따라 그리는 식으로 그리다가 나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두근대면서도 행복했다.


보통은 선물로 줄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받을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 법한 것을 고르고, 정말 기뻐하게 만들고 싶어서 꼭 잘 그려서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밤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새벽 두시쯤 일어나 밤이 새도록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 늘 샤워를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고 온 정신을 쏟아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면, 놀랍도록 완성도 있는 그림이 그려지곤 했다.
그 작품들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할 때 정말 기뻤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6개월이 흐른 무렵, 거의 동시에 전혀 다른 두 명의 친구가, 자신들이 수강생을 모집할테니 와서 수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 고작 1년이 된 내가, 전공생도 아닌데 누구를 가르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그 일을 해보기로 했다.
하루 안에 한 작품을 만들도록 하려면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를 고민하고 여러번 연습해본 후 원데이 수업을 열었다.
오신 분들이 본인의 그림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장면이 내게 사진처럼 남았다. 내가 하는 일로 상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숱한 날들이 모여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이 되었고, 또 새로운 장르를 찾아 레진 아트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해보면 될까, 라며 실험가의 정신으로 살다보니 그만큼의 노하우가 쌓였고, 겹겹이 쌓인 실패와 실험의 시간들, 버리는 작품들이 쌓여가는 만큼의 당당함이 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이 곳에 서있을 줄은.

하지만 정말 털끝만큼의 즐거운 시간을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도 가질 때,
순간이동하듯 기쁨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확실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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