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전기밥솥에 밥하는 것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부엌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사남매 중 맏이였지만, 밥 한 끼는 커녕 라면조차 끓여본 적이 없었다.
돌아보면 엄마는 그게 '엄마'의 일이라고 한정했던 것 같다. 엄마란 무릇, 가족들의 밥을 챙기는 사람이며, 그 일을 자녀한테 시키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
엄마의 엄마는, 자식들 공부를 위해 손톱이 닳도록 밭일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힘든 티를 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게 엄마한테는 '좋은 엄마'여서, 엄마가 된 자신도 다 떠안은 채로 아이 네 명의 도시락 여섯개를 싸고, 설거지도 요리도 정리도 해야 한다고 여겼다.
엄마라고 힘들다는 생각을 왜 안했을까. 밤 열두시가 되어서야 수업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산처럼 쌓인 도시락 설거지도 해야 하고 밥도 해먹여야 했다. 다음날 아침, 또 도시락 여섯개를 싸서 보내야 하고. 반찬 걱정을 수시로 했겠지. 그런 생각에 아득해졌겠다 싶다.
하지만 끝내, 엄마는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오기 전에 설거지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 엄마 오기 전에 저녁은 알아서 좀 찾아 먹었으면 좋겠어. 라고.
그게 마치 자신의 일을 자식과 남편에게 미루는 것처럼 느껴져 죄책감이 그만큼의 크기로 엄마를 짓눌렀다.
그 때는 몰랐다. 엄마의 짜증의 이유를. 그저 나 역시도, 엄마는 왜 날 볼 때마다 짜증을 낼까, 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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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간다고, 자취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었다. 실은, 해먹는데에 관심이 없었다. 과자 부스러기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았다. 엄마는 혀를 끌끌 찼고, 나는 결혼하면 아줌마 쓰고 살거야, 하며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도우미 아줌마는 개뿔.
결혼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동네 여성회관 요리 수업에 등록한 거였다. 서른이 다 되도록 라면도 제대로 못끓이던 나는, 이제 요리를 잘 하고 싶었다. 그걸 잘 해서 좋은 아내이고 싶었다.
엄마는 전화할 때마다 홍서방 밥은 잘 챙겨주냐고 물었고, 시어머니는 만날 때마다 내 아들 아침밥을 잘 챙겨 먹이라고 당부하셨다.
아니, 내 밥은 누가 걱정해 주나요?
맞벌이인데, 왜 다들 여자가 남자 밥 잘해주는지가 관심사인건가.
분노하면서도 나는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걸 크는 내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남편이 밥하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남편도 그런 엄마 밑에서 나온 소중한 아드님이어서, 당연히 그것이 자기의 일이 아니었다. 그의 배려는 아무리 맛이 없어도 타박하지 않는 것, 내가 밥을 하지 않으면 배고프다고 하지 않고 해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선 쯤이었다.
아이 둘을 낳는 동안, 경력단절녀가 되면서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아니 어째서 이 나라는, 애는 낳으라고 하면서 일을 그만 두는건 여자 쪽이어야 하는거야? 왜 이런 인식은 바뀌지가 않는거야? 왜 나는 내 직업을 포기했어야 하며, 왜 그건 당연시되는거야?
네 시만 되면 어린이집 애들이 전부다 하원하는데, 어떻게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어?
이 사회의 시스템을 다 뜯어 고치기까지, 나의 절규가 들리기나 할까 싶어, 절망감이 들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될 무렵, 둘째 아이 유치원이 갑자기 당일부터 휴원에 들어간다는 문자가 왔을 때, 내 동생이 말했다. "그럼, 일하는 엄마는 어떻게 해?"
아는 분도 말했다. "일하는 엄마는 애를 어떻게 해요?"
왜 아무도 일하는 아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까.
아이를 갑자기 데리고 있어야 하면, 그건 왜 엄마의 일일까. 왜 그게 당연할까.
오늘은 참치를 잔뜩 넣고 김치찌개를 했다.
김치는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것이다. 나는 김치를 반찬으로 먹는 걸 즐겨하지 않지만, 김치찌개는 좋아한다. 돼지고기를 넣어도, 참치를 넣어도, 햄을 넣어도 왜 이렇게 맛있는지. 금방 전에 먹었으면서도 이 글을 쓰면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어떻게 끓여도 맛있는건, 어머님의 김치가 맛있어서이겠지.
어머니는 매번 힘들다고, 다시는 안할거라고 하면서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신다. 그건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엄마'가, 철마다 김치며 반찬을 주는 사람이어서일거다. 자녀들이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어머니 자신도 다시는 안할거라고 하시면서도, 좋은 엄마라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이상,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엄마도, 시어머니도, 나도.
사회에서 얹어주는 '희생'하는 좋은 엄마를 자청해, 화가 나는 기분에 죄책감을 느껴가며 당연하다는 듯 해온 집안일. 그 덕분에 우리들의 가정은 이렇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희생은 두고두고 보상을 바라게 된다는 걸,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으니, 나는 열렬한 좋은 엄마보다는 대충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충 하면서 노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어울리지 않지만, 사실 죄책감 없이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내 손으로 해먹이지 않으니, 나는 나쁜 엄마야. 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는 힘들고 좋은 엄마보다 노력을 좀 덜고 죄책감 가지지 않는 엄마가 되겠다고,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