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는 오늘도 10시가 훌쩍 넘어 일어난다.
여덟 살 첫째 아이의 학교 온라인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된다. 전국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9시에 깨워 컴퓨터 앞에 앉힐까 싶어 눈앞이 깜깜해졌더랬다.
첫날, 아이는 일어나지 못했다. 늦게라도 재방송을 볼 방법이 없을까 찾았는데 다행히도 오후가 되자 컴퓨터에서 다시 보기로 아침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를 등원시키지 못해 데리고 있는 데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몇 달째 꼼짝도 못 하고 집에 갇혀있다.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내가 진행하던 그림 수업들도 올스톱 상태다.
이쯤 되면 망할 놈의 코로나 소리가 나올 만도 한데, 아이들을 온전히 데리고 있어 보니 그런대로 좋다.
아침에 깨워서 몽롱한 아이 입에 뭐라도 먹여 시간 맞춰 등원 버스를 태우려고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던가. 차 올 시간이 되어가는데 아이가 태평하면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더랬다.
하원길도 전쟁이었다. 둘째를 데리고 첫째 학원에 넣을 시간에 맞춰가야 했다. 안 가고 싶다고 떼쓰는 첫째를 문화센터 수업에 억지로 넣고 복도에서 둘째 아이를 쫓아다니며 기다리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오늘은 또 뭘 해먹이나 하면 하루가 끝나 있곤 했다. 제한된 시간에 나를 맞춘다는 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반면 지금은, 한없이 평화롭다. 시간 맞춰 어딘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참 평온한 일이다. 늦게까지 자도 되고 언제 밥을 먹어도 된다는 것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친구가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다면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로 수업을 들으러 오던 것을 집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외국에 살더라도 가능하다.
일정 시간에 다 함께 접속해서 듣던 수업이었는데, 땡! 하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에 옹기종기 모일 수 있다는 것이 획기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번 기수부터, 일정 기간 동안 수업 영상에 언제라도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시간마저 꼭 맞출 필요 없이 오전이든 오후든 편한 시간에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온라인으로 과제를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는다고 했다.
학교가 이렇게 바뀌면 어떨까. 하루 중 언제라도 접속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온라인으로 하루 중 언제라도 과제를 제출해도 된다면.
저는 학교를 보내고 싶은데요,라고 항변하시는 분도 많을 테니. 그럼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요?
출석하고 싶은 아이는 출석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고 싶은 아이는 대체하도록. 온라인 수업을 신청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따로 배정해서, 선생님이 편하신 시간에 과제를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실 수 있다면.
학교가 온라인 수업을 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설을 써보자면, 학년이 파괴되지 않을까. 1년쯤 빠르거나 늦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학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질 것이고 누가 몇 년 몇 월생인지, 언니냐 선배냐 후배냐 하는 논쟁은 희석될 것이다.
소속감이 없어지겠지.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인지가 중요하지 않아 지면 '우리'라는 결속감은 와해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에게 소속이 없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상실감을 주는가. 하지만 애초에 소속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에게 상실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는 블로그를 한다. 오래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블로그 이웃을 통해 책 쓰기 수업을 알게 되었다. 그 수업에서 만난 이들과 같이 책을 썼고 관심사가 비슷하니 절친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린 그림에 호응하고, 마음이 맞아서 오프라인 만남까지 했다. 만나서 서로의 에너지를 느끼고 우리는 더욱 끈끈하게 서로를 위하게 되었다.
오히려 매일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보다, 온라인에서 만난,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관계'를 잘 맺는 것은, 선택권이 있을 때 윤택하다. 매일 보는 친구와 절교하는 것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굿바이 인사조차 필요치 않다.
싫은 것에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꼭 학교에서 '관계'를 배워야 할까. 서로 결과 관심사가 맞는 친구만 만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배우는 관계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는 걸까.
학교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니, 지금의 형태가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모든 것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예상치 않았던 코로나 같은 일이 두 번 세 번 일어나면, 지금의 변화만큼 독특한 변화들이 이어지며 새로운 현상을 일으켜, 지금과는 다른 학교, 직장이 되겠지.
어쨌든 소설로라도,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와 평온만 있는
유토피아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