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바이에 베이스 한 LCC(저비용 항공사)에 올해로 6년째 근무하고 있는 승무원이다.
Low Cost Carrier의 약자, LCC로 불리는 저비용 항공사는 비용 대비 효율을 최대의 가치로 여긴다.
보통 처음에는 '기내식을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 항공사'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다.
LCC에서는 프리미엄 항공사(FSC)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를 유료 제공한다.
그 서비스라 함은 단지 기내 서비스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승객이 티켓을 예약하고,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비행 후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저렴하게 티켓을 구입할 수 있지만 프리미엄 항공사에서는 당연하게 받았던 편의와 서비스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참, 여기서 서비스는 승무원의 서비스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LCC는 단거리 비행이 많다.
가끔, 승무원들이 모든 목적지에 체류하고 돌아가는 줄 아는 지인들이 있다.
"오늘 비행은 어디야?"
"응. 이라크 바그다드."
"뭐??!! 바그다드??!!!"
"진정해. 갔다가 그냥 오는 거야."
이들과 흔하게 나누는 대화다.
각 항공사마다, 나라마다, 또 소속된 authority에 따라서 룰이 조금씩 다르지만 4-5시간 정도의 비행까지는 턴어라운드(목적지에서의 체류 없이 바로 다시 베이스로 돌아오는 비행)가 가능하다.
그럴 때 우린 비행기에서 내리지조차 않는다.
승객들만 내려주고 1시간 내에 다음 승객들을 받을 준비를 한 후, 다시 베이스로 돌아간다.
소형 비행기가 한 번에 최대 6-7시간만 갈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대부분의 LCC 항공사 승무원의 스케줄은 턴어라운드일 거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나도 승무원이 되면 이 곳 저곳 여행하고 매일 다른 대륙에서 아침을 맞이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난 1년 반 동안 턴어라운드 비행만 했다.
유니폼 입고 한 번도 다른 나라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우리 회사에 레이오버(목적지에서 체류하고 오는 비행)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요즘은 입사 초기에 비해 레이오버 비행이 많이 늘어난 편이다.
보통 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 쪽.
5-7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 위주로만 가다 보니 목적지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괜찮은 도시들이 꽤 많아졌다.
이탈리아의 나폴리, 시칠리아.
북유럽에는 핀란드의 헬싱키가 있고, 체코의 프라하,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등등의 동유럽 도시들도 있다.
러시아 쪽으로는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의 키에브가 있고.
아프리카 중에 최고는 휴양지로 유명한 탄자니아의 잔지바르가 있다.
최근에 태국의 크라비로 취항을 시작했다.
우리 회사에는 100곳 언저리의 취항지가 있는데 레이 오버하는 곳은 고작 열몇 개 일 뿐이니 확실히 적은 거는 맞다.
적을 때는 한 달에 0-1개, 많을 때는 스케줄 전체가 레이오버 일 때도 있다(아주 가끔).
그래서.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프리미엄 항공사의 승무원이었다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을 레이오버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특별한 일이긴 하다.
평소에는 작은 기내용 트롤리와 핸드백만 들고 비행을 가지만, 레이 오버하는 날은 24인치 캐리어가 추가된다.
특히 겨울에는 회사에서 지급한 (1년에 한두 번 건드릴까 말까 한) 겨울용 코트 유니폼과 그 세트 머플러, 장갑까지 바리바리 준비한다. 공항에서 곧장 호텔로 이동하기 때문에 사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아이템이지만 지금 아니면 영영 입을 일 없다는 촉 때문일까? 다들 열심히 입어 본다.
이 날은 브리핑 테이블에 가는 순간부터 공기가 조금 다르다.
턴어라운드라면 보통 5-10시간 이내에 bye bye를 외칠 멤버들이겠지만 이때만큼은 비행을 포함해 이틀 간의 일정을 함께해야 하는 동지가 된다.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다들 조금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조금이라도 아는 크루가 있다면 엄청나게 반갑게 인사하며 아는 척한다.
"오랜만이야!! 우리 같이 가는구나!! 너 여기 가봤어? 처음이야? 도착하면 뭐할 거야?"
등들의 대화를 나누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구면이 있다는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통 레이오버에서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사무장들도 조금은 느슨해진다.
이건 우리 항공사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유난히 우리 항공사 크루들은 체류지에서 뭉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소규모로 시작됐던 항공사였기 때문에 형성된 문화인 것 같다.
창사 초반에야 단거리 비행 밖에 없었으니 처음 레이오버를 시작했을 때 엄청 낯설고 설레었겠지?
게다가 그때 당시 레이오버 도시는 서아시아의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같은.. 함께 온 크루들과 호텔에서 어울려 놀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것이 없는 곳들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문화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도 없이 회사 규모가 커졌고 크루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함께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귀찮을 때도 많다.
난 턴어라운드든 레이오버든 일이 끝나면 혼자 편히 쉬고 싶다.
일단 푹 잔 후에 밖에 나가 식사를 하든 관광을 하든 방해 받지 않고 내 스케줄대로, 내 컨디션대로 움직이고 싶다.
또 대부분의 한국인 크루들은 나와 비슷하게 느낀다.
이런 한국인 크루들의 특성을 잘아는 외국인 크루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서운해함과 동시에 신신당부한다.
"방에 가서 짐 풀고 꼭 나와! 같이 가자. 같이 갈 거지? 응?응?"
말이 좋아 팀이고 가족이지 오늘이 초면인 경우도 많다.
그런 상황에 여럿이 함께 낯선 곳을 다니다 보면 얘는 이거 하고 싶다, 쟤는 저거 하고 싶다.
여기 가자, 저기 가자.. 혼돈의 카오스가 되기 마련이다.
체류 시간 동안 적당히 휴식을 취해줘야 다음 비행을 하는 데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시간이 가버리고만다.
돌아보면 물론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지나고 보니 느낀 건데, 레이오버든 여행이든 혼자 하는 거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편이 훨씬 행복하고 또 기억에도 오랫동안 남는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면서 돈까지 받아도 되는 건가? 나는 얼마나 감사한 직업을 갖고 있는 거지? 생각했던 때도 종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