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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2. 2023

사회적경제와 정책


시작하며

저는 종종 지자체의 조직도를 봅니다. 그 구조 속에서 해당 지자체가 어떤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쳐나갈지를 거칠게나마 확인해 봅니다. 지난해 지자체별로 민선 8기 조직개편이 진행됐습니다. 혹시 여유가 있으시다면, 살고 계신 지역 단위 지자체의 홈페이지를 살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리 동네의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거든요. 그런 이유로 서울시 조직구조를 확인해 봤습니다. 익숙한 이름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이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관련 정책 논의는 공정경제담당관의 두 팀(상생기반조성팀, 상생기업지원팀)에서 맡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사회적경제담당관(과) 산하에 5개팀(사회적경제정책팀, 지역협동팀, 사회적경제기반조성팀, 사회적경제성장지원팀, 사회적기업지원팀)이 있었는데 말이죠. 낯선 변화에 이제 적응해야 하는 것일까 싶습니다.

사회적경제 정책의 확장

그동안 사회적경제 정책은 꾸준히 확장됐습니다. 제도적 변화를 가져온 몇몇 중요한 흐름을 살펴보면 자활공동체기업 육성(복지부, 1996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공정위, 1998년), 사회적 일자리를 이용한 사회적기업 육성(고용부, 2003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고용부, 2007년), 농어촌공동체회사 육성(농림부, 2011년), 마을기업 육성(행안부, 2011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기재부, 2012년)을 들 수 있죠(이 외에도 중요한 흐름이 있을 테지만 여기선 생략하겠습니다). 2010년 사회적기업육성법 개정 이후로는 지자체의 참여가 증가했습니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의 광역 및 기초 지자체에서 지역형 사회적기업 육성 조례와 정책을 추진했죠. 그리고 2018년, 역대 정부 최초로 ‘사회적경제 어젠다’가 국정과제로 설정되어 여러 정책과제가 제시됐고 실행됐습니다. 사회적경제 섹터의 육성 및 지원을 위한 제도가 도입됐고 민관의 거버넌스에 바탕한 사업들도 여럿 추진됐습니다. 그 덕분에 사회적경제가 실체화되고 생태계도 확장될 수 있었죠. 물론 사회적경제기업/조직의 적극적인 참여, 시민사회와의 건강한 관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새로운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등장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정부의 새로운 사회적경제 관련 법·제도와 정책이 도입되기도 하고 또한 이에 조응하여 기존 관련 조직들의 형태와 활동 방식이 융합·진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사회적경제의 개념적 지평이 확대·재구성되는 것이다."

- 김의영·임기홍(2015). “한국 사회적경제 조직 지형도”, OUGHTOPIA, 30(1), 61-92.


논문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법·제도와 정책의 도입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경제가 확장되고 또 재구성되기도 했죠. 그동안은 정부 부처별 사업을 중심으로 사회적경제가 육성됐습니다, 다양한 부처의 다양한 정책 사업 속 사회적경제라는 큰 개념을 통합적으로 논의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우리 내부에서 제기됐고 그래서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이 이야기됐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2014년 첫 발의부터 약 8년 동안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부침도 있었지만, 내부의 이해와 필요를 응집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사회적경제라는 명칭을 꾸준히 사용하고 있지만, 무언가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어쩌면 사회적 인정을 선언하는 작업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적경제기업/조직은 이렇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한편, 스스로 확인하는 거죠. 그리고 사회적경제의 진흥이 정부의 공익적 목표에 부합함을 확실히 해 사회적경제와 공공의 관계를 정의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힘을 얻기도 하고요. 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두서없이 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경제 관련 법·제도, 정책의 변화를 마주한 상황이기 때문이겠지요.



사회적경제 정책의 의미

정책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죠. 물론 사회적경제 발전이 단순히 정부가 지원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를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은 분명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경제기업가들은 사회적 성과와 경제적 성과를 동시에 추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큽니다. 그러한 사명감 자체가 큰 부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회적경제기업/조직의 성장 과정에서 단순히 매출이나 고용의 성장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과의 깊이나 넓이를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부분이 사회적경제를 둘러싼 법·제도와 정책의 설계 및 운용 과정에 반영되어야 하는 거죠. 사회적경제기업/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이를 정책화하는 작업은 꾸준히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당사자 조직의 자율성과 독립성 확보도 중요하겠죠(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21년 지역발전연구에 실린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표류 이유: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분석을 살펴봤습니다(링크 들어가셔서 5번째 '염찬희' 박사님의 논문을 다운로드하시면 논문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논문은 사회적경제기본법이 발의된 2013년부터 2016년까지를 기준으로 법안 발의에 관여한 다양한 행위자들의 관계를 행위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통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ANT는 행위자(actor)로 사람뿐만 아니라 법이나 제도 등도 함께 확인하는데요, 그래서 각 행위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포착합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 간 상호작용을 통해 살펴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4년 당시 새누리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로 서민을 위한 정책 발굴이 중요한 상황, 유승민이라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 등이 소위 진보진영의 의제, 야권의 의제로 여겨지는 ‘사회적경제’를 끌어당기게 된 맥락에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보수 경제언론의 강력한 비난과 반대, 주류 언론의 소극적 보도는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주류의 관심에 두지 못했습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둘러싼 보도가 ‘비주류의’ ‘다툼의 여지가 많아’ ‘미완의’ ‘정치 사안’ 등의 의미로 채워지면서 논의가 제한되었다는 한계도 확인됩니다. 여기에 더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을 퇴출하면서 유승민의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은 단절됩니다. 그렇게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진보진영의 의제이자 소위 ‘반시장적인’, ‘좌파 법안’으로 의미가 갇혀 버립니다. 논문은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의 초기 단계(2013년~2016년)를 분석의 대상으로 제한하고 있어 향후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논문을 읽으면서 정말 후속 연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꼼꼼하게 지난 5년과 현재 상황을 짚어봐야 할 때라는 생각입니다. 때로는 변화로, 때로는 위기로 읽히는 수많은 신호가 교차하는 때입니다. 많은 것이 모호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신호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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