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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1. 2023

사회적경제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연구자료를 자주 찾아봅니다. 그것이 제가 하는 일과 관련 있기도 하지만, 어떤 흥미로운 연구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 읽다 보니 이 좋은/유익한/(때론) 유쾌한 자료를 나 혼자 읽는 것이 너무 안타깝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왕이면 같이 읽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에 뉴스레터를 시작해 봤습니다(비정기적으로 발행할 예정이지만요). 앞으로 종종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경제에서 일하기

2022년은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된 지 15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지 10년에 접어드는 해입니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안정적이고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기대감이 있죠(지금도 그 기대가 여전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기대가 정부 정책과 지원제도 마련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사회적경제를 생각하면, 저는 왜인지 일과 노동의 이슈가 떠오르더라고요. 사회적경제 판(..)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도 또 앞으로 일할 사람도 꾸준히 유입되고 일을 통해 각자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그래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론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둔 조직·기업일수록 일하기가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경제조직·기업 역시 ‘직장’, ‘일터’이기 때문에 고용하는 자와 고용되는 자 사이의 미묘한 틈이 있고, 동시에 ‘가치 중심’ 혹은 ‘미션 중심’의 조직·기업으로 겪는 부딪힘이 여기에 곁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2022년 초 사회적경제 활동가들의 모임인 넥스트SE와 동감작업장이 함께 진행한 <2022 활동가도 워라밸 좋아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 덕분에 사회적경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71명의 응답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현재 직장에서 앞으로도 계속 일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는데요, 응답자의 절반이 되지 않는 약 48%만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복수응답)를 살펴보면 ‘어디든 비슷할 것 같아서’(39.0%), ‘다른 곳보다는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이 그나마(!) 나은 것 같아서’(38.3%)라는 응답이 많습니다. 계속 일을 하겠다고 답했지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마냥 안심할 순 없다는 생각입니다. 활동에 가치와 의미를 확인하고(32.5%) 조직문화나 조직 안에서의 가치관에 안전함을 느꼈다는 응답(24.0%)을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미션이 중요하다 보니 일이 어떻게든 되게끔 하는 것을 더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 일을 같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과 동기부여가 여전히 부실한 것 같다. 우선순위가 밀렸다는 느낌보다는 아예 그건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조직관리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할 의지가 없다고 느껴짐)”


어느 설문 참여자의 코멘트입니다. 의미 있는 목적 달성을 위해 모인 조직·기업이지만, 그럼에도 업무환경의 자율성이 보장되거나, 개인이 가진 전문 지식을 쌓고 또 활용할 수 있거나, 업무 속에서 가치 실현이 확인된다거나 등등 추구하는 가치만큼 일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역할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나 감히 생각해 봅니다. 



MZ세대와 일하기

얼마 전, “받는 만큼만 일할게요” MZ 직장인들의 ‘조용한 관둠’이란 제목의 신문 기사를 봤습니다. 워싱턴포스트를 빌려 온 기사에서는, 이 조용한 관둠(Quiet Quitting)이 사람마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받는 임금만큼만 일하겠다는 의미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적용될 것이라는 거죠. 일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이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떠다니고 있습니다. 일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찰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는 자기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파리정치대학 교수인 장 비야르(Jean Viard)는 그의 책 <기나긴 청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5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세계와 삶을 단 한 번, 결정적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지금은 평생 여러 번 삶의 진로를 바꾸기 원한다. 아마도 세상이 그만큼 빨리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정치적 혁명의 모델보다 개인적 혁명의 모델을 발명하는 데 관심이 많다. (중략) 옛 사회의 룰이던 ‘정규직, 결혼, 집’이 ‘모험, 시퀀스, 불연속성’으로 바뀌었다면 제기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안정적 사회 모델 속에서 보호받으며 살던 이들이 새로운 사회적 룰의 매력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유동하는 사회 속 개인의 안정성을 위해 투쟁하던 시대의 법률과 노조 문화로 보호하는 게 가능할까? 또 새로운 사회의 불안정성을 안전의 부재가 아니라, 자유의 약속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기나긴 청춘> 본문, 49쪽


불연속적이고 유동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MZ세대의 일하기에 대한 생각이 앞선 세대와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일에 대한 신화(?)가 남아 있습니다. 작년 번역되어 온라인상에서 꽤 회자된 앤 헬렌 피터슨(Anne Helen Petersen)의 <요즘 애들>의 한 구절을 가져와 봤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 그리고 성공과 행복에 대한 다른 거짓말들(Do What You Love and Other Lies About Success and Happiness)>의 저자 미야 토쿠미츠(Miya Tokumitsu)는 잡스의 연설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이라는 서사를 구체화했다고 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뒤의 “노동”이 사라질 뿐 아니라, 그 덕분에 일하는 사람의 능력과 성공, 행복, 부가 전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서사다. -<요즘 애들> 본문, 134쪽


그러니까 어쩌면 사회적경제 판(!)에는 이런 신화를 품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고, 일은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 그 자체인 거죠. 행복과 금전적인 안정을 함께 얻기 원하는 마음을 갖고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거죠. 그런 복잡함에서 비롯된 마찰음이 여기저기서 툭툭 나타나는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20년 사회적기업학회의 사회적 가치와 기업연구에 실린 ‘사회적경제조직의 멘토링: 밀레니얼세대 직원활동가의 조직적응에 대한 내러티브연구’입니다. 논문은 지역의 한 도시에 위치한 사회적경제조직에서 일하는 29~33세 남녀 연구참여자 5인을 대상으로 사회적경제조직에 들어와서 겪은 내적갈등과 실망, 긍정적/부정적 경험, 멘토와 멘토 그룹을 만나서 사회적경제조직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멘토링 경험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논문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멘토링의 기능과 역할을 논문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일하고 있는 조직에서 제공한 공식적인 멘토링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업무의 동질성이 반영된 멘토를 스스로 탐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멘토링이라는 것입니다. 연구참여자들은 조직 내부의 부정적인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멘토를 탐색하고 선택하고, 조직 내외부에서 비공식적이고 다대다 관계 속에서 멘토를 찾기도 합니다. 그렇게 형성된 멘토링은 사회적경제조직을 수용하고 적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연구참여자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근속연수가 되기 전까지 혼자 견뎌야 하는 기간에 멘토 그룹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연구 참여자들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부정적 경험이 있음에도, 그러니까 1) 가치공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치를 설명해야 했다. 2)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3) 인정받고 싶었지만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4) 다양하고 수평적이면서 상향식 조직문화를 기대했지만 조직은 권위적, 획일적, 수직적이었다. 5)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보면서, 기업윤리, 사람존중,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둔다는 말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느낀다. 6) 전통적 사회적경제 인재상과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적경제 인재상은 달랐다는 그런 것들이요. 하지만 다시 사회적경제 내 멘토를 통해 사회적경제의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탐색하게 됩니다. 


정책이라는 큰 틀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과 내부의 회고와 대화로 네트워크를 디자인해 가며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 구분되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살펴본 일하기의 문제는 내부의 회고와 성찰이 필요한 문제이고요. 조직 내부의 '나'들이 갖고 있는 질문을 우리 조직은 얼마나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질문이 던져지고 거기에 다양한 답변들이 와글와글 달릴 때, 일하기의 새로운 가능성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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