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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3. 2023

실패해도 괜찮아요


시작하며

지난여름 제주도 서귀포로 휴가를 다녀왔어요. 각기 개성이 다른 동네책방들이 제주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숙소 근처 동네책방을 찾아봤고, 그렇게 로컬콘텐츠그룹 이마고에서 운영하는 북살롱이마고 제주아카이브센터를 다녀왔습니다. 북살롱이마고는 동네책방이자 제주 관련 콘텐츠 책과 영상을 아카이빙하고 전시하는 공간이었는데요, 그 덕분에 책뿐만 아니라 제주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책방에 앉아 읽은 책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발행한 <더 스토리: 제주의 사회적경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네, 제가 찾은 동네책방이 바로 <더 스토리>를 편집&디자인한 로컬콘텐츠그룹 이마고에서 운영하는 곳이었거든요!)


성공한 이야기 말고요...

사회적경제기업가 13명의 인터뷰를 한데 모은 책 <더 스토리>는 사회적경제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의 생각과 포부, 고민을 각자 다른 삶의 궤적 속에서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무조리실협동조합'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2014년 시작한 무조리실은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합니다. 요리를 통해 자연과 사람, 지역이 상생하는 식생활 문화, 경제를 만들어가려 한 무조리실협동조합은 협동식당, 도시락형 케이터링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오다 올해 2월 3일 청산종결합니다. 

*'무조리실'은 無정형·無공간·無경계의 부엌을 뜻하는 말로,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음식으로 가족을 먹여 살린 주방의 일상 요리를 보다 가치 있는 식생활 문화로 전환하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성공한 사례를 이야기하는 건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그 반대되는 이야기는 듣기가 어려워요. 일을 하다 보면 폐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잘 될 수는 없으니까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이야기, 시작하고 또 문을 닫는 이야기, 듣기 좋게 편집된 긍정적인 측면의 이면에 어떤 현실적인 고민과 노력이 담겨 있는지를 풀어낸 이야기, 그런 이야기야말로 사회적경제 현장에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8년여간 운영해 온 협동조합을 정리하며 그간의 활동을 담담히 이야기한 대표님의 인터뷰가 유독 인상 깊더군요. 


"저희가 처음에 식당을 한 것도 지원받지 않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고 해서 시작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해 온 방식으로 노동하고 또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데는 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어요. 소스 하나까지 다 직접 만든다는 게 결국은 다 인건비 투자인데 비즈니스 모델로서는 사실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였죠. 손님이 많아질수록 일손이 더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니까 조합원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그러니까 협동조합의 비즈니스 모델로서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이었죠. 기본적으로 사업이 잘되려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고 거기에 운까지 붙어야 잘 되는 건데 저희는 그걸 몸으로 버텨내려 했으니까요. 더구나 조금씩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사회적 빚이 또 마음에 있고. 같이 즐겁고 같이 행복한 순환 구조가 돼야 하고 정직하게 일을 하면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다는 경험이 필요한 건데 더 이상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어요. 더 이상 우리의 몸을 혹사하면서 하지는 말자고 결론을 내린 거죠.- 무조리실협동조합 인터뷰 중


기업의 미션은 그 기업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합니다. 사회적경제기업은 경영활동(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을 목표로 하면서도 미션을 우선으로 추구합니다. 특히 소셜 미션을요. 그 소셜 미션이 사회적경제기업과 일반기업을 구분 짓는 특징이 됩니다. 문제는 우리 기업의 존재 이유를 사업에 녹여내면서 수익성을 추구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셜 미션이 좋아도 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경제기업의 유지는, 발전은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사업에만 초점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소셜 미션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사회적경제기업이라 할 수 없으니까요.


사회적 가치 추구와 수익성 창출,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정답이 있을까요? 정답이 없으니 더 쉽지 않습니다. 기업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제일 나은 선택을 내려야 하는 거겠죠. 저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구성원 모두와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란 무엇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실패는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라는 뜻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일이 항상 잘 될 순 없겠죠. 시대와 트렌드의 변화를 기민하게 받아들이려는 '학습'과 나와 우리 조직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뒤따르고 그렇게 실패와 성공의 무한 반복 속에 일을 해 나가게 됩니다. 아무리 완벽한 사업계획서를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진행 과정에서 무수한 실패가 있고 바뀌고 또 실현되고 그러는 거죠. 그 과정의 중요성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무조리실협동조합 대표님은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우리가 실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 같이 웃으면서 정리를 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게 아닐까 싶어요. 보통은 서로 지치거나 얼굴을 붉히거나 또 누군가는 관계가 어긋나거나 할 수 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다 같이 웃으며 함께한 것도 그렇고, ‘무조리실’을 만들고 해체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각자가 배운 것들이 있고. 그리고 서로에게 쌓인 신뢰와 약속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들에 있어서 한편으론 더 끈끈해진 거죠. 결국은 서로를 지지하면서 다 함께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 무조리실협동조합 인터뷰 중


협동조합을 만들고 청산하기까지의 구성원들 각자가 무언가를 배웠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서로 간의 신뢰와 약속에 대한 책임감이 남았기 때문에 함께 성장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사업 운영이 뜻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조합원의 자발적인 참여와 민주적인 운영에서는 결코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함께 만든 가치가 참여한 모두의 삶에 어떠한 흔적을 남기고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2017년 한국사회복지행정학에 실린 '사회적기업의 폐업경험: 과정은 어떠하고 그 요인은 무엇인가?'입니다(이번 논문은 무료 오픈 링크를 찾지 못했습니다). 논문은 사회적기업을 폐업한 운영자 5명을 심층인터뷰해 사회적기업의 창업부터 폐업까지의 과정은 어떠하고 폐업의 요인은 무엇인지를 확인합니다. 연구참여자들은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후 2~3년 사이에 인증을 받아 비교적 빨리 인증을 획득한 초기 사회적기업으로 운영경력은 최소 4년에서 최대 8년(평균 약 5년 5개월)이었습니다. 창업 업종은 식품제조, 교육문화, 사회서비스였고요. 


연구 참여자들로부터 확인한 사회적기업의 폐업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립 단계에서 1) 정부의 재정지원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2) 사업아이템 선정 시 시장성이나 수익모델의 가능성보다는 익숙함이나 막연한 기대감으로 사업아이템을 선택했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운영단계에서 인력관리, 판로개척의 어려움을 겪고 공공시장 진입에도 장벽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사업을 운영해 오다 낮은 수익창출과 인건비 지원 종결로 결국 폐업을 결정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폐업하는 과정에서 ‘무능함과 무력함’, ‘아쉬움’, ‘허무함과 인간관계의 상처’라는 부정적인 심리경험과 함께 ‘보람과 뿌듯함’이란 상반된 감정도 겪었음을 확인합니다. 복지 제도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도 하고 개인의 삶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들은 폐업 요인 또한 개인적, 조직적, 네트워크, 정책적 요인으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사회적기업 운영자를 대상으로 기업가정신과 조직리더십 강화를 위한 지원서비스, 시장을 바라보는 통찰력, 조직운영 능력, 위기대처 능력 등 경영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지원 방안 마련, 우선구매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 등 앞으로의 사회적기업 활성화의 과제를 정리합니다. 접촉이 쉽지 않고, 연락이 닿아도 이야기를 꺼리는 폐업의 속성이 있지만, 귀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들이 있기에 사회적기업의 긍정적인 경영 환경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사점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정부에서는 2018년부터 실패박람회를 열고 있습니다. 실패 경험의 자산화 및 재도전을 지지하는 정책과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라고 박람회 취지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실패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응원할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 싶네요.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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