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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3. 2023

[국내협동조합 역사 ①] 협동조합 시작의 열쇠, 교육

2017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에 기고한 글을 가져왔습니다. 

https://m.blog.naver.com/seoulcoopcenter/221061076782



협동조합 시작의 열쇠, 교육 : 협동교육연구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동안 전국에 1만 1000여 개 협동조합이 설립됐으며 서울에만 2,9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운영 중이다.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가치를 고민하며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협동조합 설립 전부터, 설립 후 협동조합 기업을 운영하는 중에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를 비롯한 관련 조직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협동조합은 '교육'을 강조한다. 교육은 협동조합의 의미를 재확인시키는 것은 물론 조합원으로, 협동조합의 경영진으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동기부여 요소이다. 협동조합이 5년 전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기에 과거에도 협동조합에 관한 교육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을 터, 오늘날 협동조합의 기반을 닦은 선구자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협동조합 관련 교육을 받았을까?


1964년, 협동조합 교육을 진행한 ‘협동교육연구원’이 자리잡은 동교동 158-2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8-2


지금은 가톨릭청년회관 <다리>가 위치한 이곳에 협동조합 교육을 하는 '협동교육연구원'이 1964년 터를 닦고 자리를 잡는다. 협동교육연구원의 전신은 신용협동조합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교육을 통해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1962년 2월 메리놀수녀회에서 설립한 '협동조합교도(敎導)봉사회'이다. 한국 신용협동조합의 어머니로 불리는 가브리엘라(Mary Gabriella Mulhein) 수녀가 협동조합에 관심있고, 열정적인 젊은이 몇 명과 함께 부산 대청동의 메리놀수녀회 소속 '나자렛의 집'에서 시작한 협동조합교도봉사회는 신협의 설립을 돕는 교육을 비롯해 설립 후의 업무지도 등을 도맡았다. 가브리엘라 수녀와 함께 부산에서부터 협동교육 운동에 참여하고, 협동교육연구원 2대 원장을 맡은 박희섭 선생은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고한다.


우리 연구원이 제일 처음 일을 하기 시작한 곳은 그 당시 부산에 자리잡고 있었던 메리놀 수녀회 병원 한쪽 구석에 위치한 약 20평의 조그마한 양철집이었읍니다. 직원은 비서 한 사람과 저를 포함하여 강사 두 사람뿐이었읍니다. 말하자면 모두 네 사람의 적은 식구였읍니다. 그 당시에 우리는 국문, 영문 타자기 한대씩 있었고 낡은 책상을 수리하여 초라한 사무실을 꾸몄으며, 수중에 가지고 있었던 돈은 불과 6,000원밖에 되지 않았읍니다.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 같습니다만 우리는 돈도 없었고 빽도 없었고 가진 것은 한 가지 마음과 머리 속에 있는 "아이디어"뿐이었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일해 보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사목'  1970년 11월호(제15호)


이처럼 협동조합이라는 희망을 교육을 통해 쏘아올린 이들이 있었기에 생활세계의 과제를 협동조합을 통해 자발적으로 해결해보려는 다양한 시도가 움틀 수 있었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협동교육연구원의 거제도농장은 현재 천주교 마산교구 소유의 부지이다. (출처: 굿뉴스갤러리)


전국을 발로 뛰며 새긴 협동교육연구원의 교육

1963년 7월, 신용협동조합의 확산 및 협동조합 운동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을 기대하며 서울로 이전한 협동조합교도봉사회는 ‘협동교육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당시 협동교육연구원에서 진행된 교육은 협동조합론(역사, 원리, 원칙, 종류 등), 협동조합조직관리론(조직운영, 부기, 감사, 제 규정 및 관계법 등), 세계 협동조합 비교연구, 지도자론(원리, 자격, 아이디어개발법 등), 지역사회개발론(원리와 방법), 기타 회의진행법, 분단토의법, 기초경제학, 기초사회학, 청소년운동, 소비자보호, 일선조합견학, 기타 교양과목 및 오락 등으로 확인된다(구정옥, 2016 재인용). 교육은 짧게는 2주, 길게는 7주까지 이어졌는데 협동조합 교육 외 지역사회, 청소년운동, 소비자 보호라는 굵직한 주제들, 그리고 회의진행 및 토의법까지 다루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다.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이 설립되는 개별 지역의 특성과 지역주민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관계맺기가 중요하기에 협동교육연구원의 교육에서도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지 않았을까?


협동교육연구원은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으로 협동조합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움직였다. 제주도에서부터 강원도 철원속초그리고 지금은 협동조합 간 협동지역사회와의 결합 등이 탄탄히 이뤄져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 운동을 배우기 위해 찾는 원주에 이르기까지협동교육연구원은 도시보다 형편이 어려운 농촌 지역에 자립과 자조의 기반이 되는 신협협동조합 운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발로 뛰며 교육을 진행한다심지어 거제도에는 연구원 부설 농장을 설립하기도 했다거제도의 낙후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협동교육연구원이 기초조사부터 참여한 거제도농장은 1972년 개장 이후 매년 해외 봉사단을 초청하여 거제도 주민들과 함께 개간 사업을 진행하는 등 활발히 운영됐으나 자금부족 등 여러 이유로 1980년대 이후 사업을 꾸준히 이어가지 못한다.


1982년 설립 20주년을 맞아 정리한 협동교육연구원의 교육현황을 살펴보면신용협동조합을 비롯해 다양한 협동조합 지도자사회 지도자교회 및 단체 지도자 교육 256회 진행, 수료자 7,248명, 수강자 9,773명에 달한다협동교육연구원은 신용협동조합중앙회를 비롯해 YMCA, YWCA, 주부클럽 등 사회단체정부기관 등에 교육자문 및 출강에 적극적이었다그렇게 협동교육연구원은 협동조합 운동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열매 맺게 한 든든한 기반이 된다.

책을 읽으며 토론교육을 통해 민주주의 의식을 높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부산양서협동조합 설립의 주축 김형기 목사평생 도시빈민들과 함께하며 복음자리한독마을목화마을을 건립해 주민들의 자립을 주도한 고(제정구 의원 등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 이들의 상당수가 협동교육연구원을 거쳐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현실과 생생하고 풍성한 관계를 맺게 한 협동교육연구원의 교육은 사람을 중심에 두며 내재적인 동기를 고양시키는 협동조합의 가치를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확산시킨 것이다
.


아쉽게도 1990년대 이후 협동교육연구원의 역할을 찾아보기 어렵다자체 협동조합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보다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모습이 두드러진다공식적으로 그 이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역할과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한살림정기강좌가 협동교육연구원에서 진행된다는 신문 기사 (출처: 1992.8.27. 동아일보 13면)


협동조합교육원이 활발히 운영됐던 당시 교육원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중과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자조와 협동 정신을 교육한다'는 것이었다. 2017년, 현재 협동조합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협동조합의 안정적인 설립과 운영이 교육의 주된 목적이지만 협동조합 교육을 통해 일과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협동조합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쌓아 올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아울러 본인을 포함해 함께 일하는 이들 안에서 발견한 자산들을 우리 안에 키워낼 수 있는 힘을 키워내는 것 역시 중요한 목적으로 두어야 하지 않을까. 불확실하고 불안한 사회에서도 사람 중심 비즈니스로서 협동조합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잃지 않도록 말이다.


<참고문헌>
구정옥(2016), "안티고니쉬성인교육운동의 한국적 적용: 1960년대~70년대 협동교육연구원 사례", 한국협동조합연구, 34(2), 143-169.
염찬희(2011), "한국 협동조합들의 산실-협동교육연구원", 협동조합네트워크, 55, 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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