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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3. 2023

[국내협동조합 역사②] 협동조합 속 여성

2017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에 기고한 글을 가져왔습니다. 

https://m.blog.naver.com/seoulcoopcenter/221212229622



협동조합과 여성 : 이한옥 그리고, 이효재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 안에서 생활정치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여성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에 현재와 같은 의미 있는 역할을 꾸준히 전개할 수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그리고 협동적인 경제가치 실현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여성 중심의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는 다양한 연구와 정책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이다. 여성과 협동조합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은 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의 1860년 연차보고서에 실린 운영 원칙에 따르면 '조합원들은 성별로 차별받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협동조합은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전에 열린 조직 형태이다. 우리나라의 협동조합 운동 속에서 우리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여성들의 움직임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농촌계몽운동가 이한옥(가운데)은 평생 농촌계몽운동가로 활약했다. 1965년 제1회 용신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출처 : 강신표, 『배움의 길, 기록을 따라가다』, 국립민속박물관


이한옥농촌계몽 운동의 꿈과 협동조합

농촌계몽과 소비자 운동에 평생을 바친 이한옥 선생은 1941년 일본 이와테 현립 농업경영연구원을 졸업한 뒤 농협중앙회 부녀담당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1964년 수원시 율전동에 두부공장이 설립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협동을 바탕으로 운영된 두부공장에 참여한 1백여 가구는 당시 연 평균 3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농촌에서도 도시와 같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경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이한옥 선생은 이때부터 소비자협동조합의 가능성을 고민하며 일본의 생협 활동을 직접 보고 배운다모든 생산자들을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경제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1970년 화성에 '어머니 간장공장'을 설립해 여성들이 직접 생산과 소비를 담당할 수 있도록 앞장선다도시와 농촌의 주부 1백여 명이 십시일반 5백만 원을 모아 설립한 간장공장은 협동의 원리를 담고 있었다.


대자본가의 유혹도 있었고 방해도 있었으나 우리는 이들로부터 우리의 작은 공장을 순수하게 지키기 위해 조합원을 전면 개편까지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기금을 모으느라고 공장 짓는데 1년이 걸렸지요.

- ‘주부들이 편 부정식품 방어전선 어머니 간장공장’, 중앙일보, 1970.10.24.


'어머니 간장공장'은 농촌에 거주하는 주부 회원들이 쑨 메주를 공장이 사들이고 여기에서 생산된 간장은 도시의 주부 회원들에게 판매하며 생산과 소비를 협동조합 안에 오롯이 가져가려 했다. 흔히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생산자, 소비자 두 주체가 협동을 통해 서로의 필요를 상호지지해준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든 안전한 식품을 도시 주부 회원들에게 안정적인 가격으로 공급하고, 농촌 주부 회원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어머니 간장공장은 오늘날 생협이 이야기하고 있는 도농상생의 가치를 일찍이 실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농촌계몽운동의 이상을 협동조합이라는 틀 속에서 펼친 이한옥 선생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운영하는 공장'의 성공을 확신하며 이익금의 절반은 농촌교육을 위한 기금으로 따로 모을 계획까지 세운다. 간장공장의 운영은 지속되지 못했지만 오늘날 협동조합이 강조하는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까지 고민할만큼 선구적인 움직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미 생협의 법적 근거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던 이한옥 선생은 1986년 <한국 소비협동조합 운동의 이론과 실제>를 통해 당시까지의 소비자협동조합의 발전과정과 그 성격을 꼼꼼하게 되짚으며 생산과 소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한국의 소비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결국 대자본이 생산과 유통과 소비가 찾아야 할 이윤을 모조리 도로가져 간다. 사회는 이 악순환을 어떻게 보는가.

- 『한국 소비협동조합운동의 이론과 실제』, 자유문고, 1986.


그 어떤 기반도 탄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침없이 혁신을 향한 도전을 자신의 삶 속에 풀어낸 그녀들이 꿈꾼 협동조합은 무엇이었을까그녀들의 도전과 실패 속에서 작고 단단한 성장의 가능성이 쌓여져왔기에 오늘날 협동조합을 통한 여성들의 또 다른 도전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이제 또 다시 협동조합 운동에 새롭게 아로새겨질 여성들의 발자취를 기대해본다.


이효재행동하는 지식인이 꿈꾼 협동의 공동체

여성학이란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부터 국내 여성학여성운동의 기반을 다진 이효재 선생은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린다하지만 이효재 선생이 협동조합에 기여한 바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1966년 이스라엘 노총과 협동조합연합회의 초청으로 3개월간 이스라엘의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운동을 살펴보고 온 이효재 선생은 여성과 약자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대와 성별을 넘어 서로 존중하며 함께 협동하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키운다.

이효재 선생은 1969년 이화여대 내 여성자원개발연구소를 설립하여 그 생각을 구체적인 실천에 옮긴다화곡동 주택지역에서의 공동구매 추진은 물론 이웃들과의 협동유아원 모색 등 지역사회 안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협동의 모델을 만든 것이다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선포와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로 인해 활동은 중단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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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소비를 위한 경제생활을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을 통해 사회경제적 연대를 이루며 평등한 참여로써 남녀가 함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서 생활하고 활동함을 보았다. (중략) 협동촌과 협동조합의 조직과 경영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기본질서가 확립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나와 민주주의: 가부장제 사회의 극복과 풀뿌리 민주주의’, 기억과전망, 2003년 가을


1987년 주부들의 가사노동과 여성의 사회노동 문제를 중심과제로 삼아 평등한 사회구현을 목표로 설정한 한국여성민우회 창립에 함께한 이효재 선생은 민우회에서 1989년 설립한 함께 가는 생활소비자협동조합(現 행복중심생협)의 초대 이사장을 맡는다생협은 주부들의 주체적인 참여로 운영하며소비자와 생산자의 연대를 만들고그 과정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세우려 한다한편 이효재 선생은 생협을 통해 상호존중이 바탕이 된 공동체 가족의 가능성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함께 가는 생활소비자협동조합' 1989년 창립총회. 출처: 행복중심생협 연합회


1990년 일찍이 스페인 몬드라곤을 방문해 노동자들이 공동출자/공동생산/공동경영하는 거대한 협동조합 운동의 가능성을 살펴본 이효재 선생은 특히 도시락 산업, 사무실 청소 등을 위탁받은 서비스협동조합 등이 여성들의 기업체로 운영되는 것에 큰 관심을 갖는다. 자본, 경영, 노동에 여성이 주체적으로 협동조합을 조직해 평등한 참여를 이뤘다는 사실에서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풀어가는 데 있어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모색했을 것이다. 이론가이며 실천가로 살고 있는 이효재 선생의 활동을 되짚으며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질 협동조합의 다이내믹이 우리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한다.


그 어떤 기반도 탄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침없이 혁신을 향한 도전을 자신의 삶 속에 풀어낸 그녀들이 꿈꾼 협동조합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들의 도전과 실패 속에서 작고 단단한 성장의 가능성이 쌓여져왔기에 오늘날 협동조합을 통한 여성들의 또 다른 도전이 궁금하다. 이제 또 다시 협동조합 운동에 새롭게 아로새겨질 여성들의 발자취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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