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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Apr 13. 2023

[국내협동조합 역사③] 협동조합 국제협력

2017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에 기고한 글을 가져왔습니다. 

https://m.blog.naver.com/seoulcoopcenter/221288582748



국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공정무역을 '협동조합 사이의 협동'을 통해 추진한다. 두레생협에서 공정무역 사업을 도맡은 별도 사업체 에이피넷(APNet)은 필리핀 ATC(Alter Trade Corporation), 팔레스타인 UAWC(Union of Agricultural Work Committees) 등 생산자 단체와 직접 거래 한다. 생산자들의 자립과 지역개발을 돕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투명한 거래 속에 꾸준히 전개된다.

아이쿱생협 역시 공정무역 생산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아이쿱생협의 조합원, 생산자, 직원들은 모금운동을 통해 지난 2011년 12월, 필리핀 마스코바도 생산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AFTC(Antique Fair Trade Center) 마스코바도 공장을 건립했다. 필리핀의 생산자협동조합과 한국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협동을 통해 서로에게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준다.


국내 협동조합이 해외의 협동조합 공동체를 지원했다는, 혹은 국제개발협력에 기여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규모화 된 협동조합들이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 원칙 중 6번째 원칙인 '협동조합 사이의 협동'을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국가 간으로 확장시켜 협동의 가치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이라는 제도적 기반 마련은 물론 과거와 비교해 높아진 협동조합의 사회적 인식까지현재와 같이 국내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자주·자립·자치의 원칙을 갖고 조합원들이 내부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 온 과정이 있다하지만 협동조합의 지난 역사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다양한 해외 기관들의 국내 협동조합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이다.


미제레오르 재단 홈페이지(www.misereor.org). <출처:미제레오르재단 홈페이지>


독일미제레오르(Misereor)

협동조합 리더의 육성을 위해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협동교육연구원'은 어떻게 자기 건물을 갖고 설립, 유지될 수 있었을까? 당시 독일의 미제레오르(Misereor) 재단 등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8년 설립된 미제레오르 재단은 독일 주교회 산하의 국제개발원조 기관이지만 인종, 종교, 국적에 상관없이 전 세계의 빈곤과 가난을 퇴치하기 위한 활동을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독일의 구호단체인 '미제레올(Misereor)'의 홍콩지부를 찾아 한국교회의 신협운동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무엇보다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이끌어갈 일꾼을 지속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렇게 해서 '미제레올(Misereor)'로 부터 교육기관설립에 필요한 돈을 지원받아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협동조합 연구원'을 건립할 수 있었다."
- 장대익 신부의 회고록 중(http://fr.catholic.or.kr/louischang/whoego/6bu/johap.htm)-


미제레오르 재단의 지원은 협동교육연구원의 다양한 실험, 양질의 교육을 뒷받침했다. 협동교육연구원의 교육 수료자들은 이후 지역 신협을 설립하고, 신협운동이 안정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1970년대 후반 전국으로 확산된 신협은 체계적인 내부 교육을 위해 신협연수원 건립을 구상했고, 전국 단위조합들의 출자금과 함께 미제레오르 재단의 지원을 받는다.


미제레오 재단은 파트너 또는 미래의 파트너와의 협업을 위한 정책, 서식자료 등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출처:미제레오재단 홈페이지>


지난달 건립자금지원신청을 위해 서독에 갔던 이상호 회장이 미제레오 재단으로부터 자금지원 약속을 받아온 것미제레오 재단은 이사회를 열고 한국신협 운동을 도와주기위해 교육관 6백평에 대한 건축비 3억 원과 부대시설비 1억 원 등 촉 4억 원을 지원키로 확정했다고.  

-'연수원 건립기금 서독서 지원'매일경제(1979.7.6.)-


미제레오르 재단은 1973년 원주에도 협동과 연대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1972년 8월 남한강 유역에 집중호우로 대홍수가 발생해 천주교원주교구 관내에 수재민 약 14만 명, 총 피해액 187억 원이라는 커다란 손실이 발생한다. 미제레오르 재단 등은 약 3억6000만원에 달하는 원조를 전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주의 재해대책사업위원회가 구성된다. 당시 천주교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는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협동체를 구성,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재해지 복구만이 아니라 농민, 광부 등 지역의 당사자들이 스스로 협동적인 노력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된다.


미제레오르 재단은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 전체가 경제개발 사업에 몰두했던 때 특히 지역개발지원사업에 집중한다. 그래서 자조, 자립, 협동의 정신을 강조하는 협동조합의 육성에 더 큰 관심을 보였는지 모른다.



네덜란드, ICCO(Interchurch Organisation for Development Cooperation)

호혜와 상생의 지역사회 만들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가장 먼저 언급되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 지역공동체의 활동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움트는 홍동의 활력은 탄탄한 '교육'에서부터 비롯된다. 그 교육의 중심에 선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이하 풀무학교). 지금은 손꼽히는 대안학교로 알려져 있지만 대안학교라는 좁은 틀로 풀무학교를 바라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학교와 지역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이상을 갖고 '더불어 사는 평민(平民)'을 키우려 하는 풀무학교는 일상에서의 상호협력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교육을 지향한다.

풀무학교 입구의 머릿돌


풀무학교는 1977년과 1979년 네덜란드의 ICCO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당시 1억3000여 만원을 지원받아 교육시설과 지역개발에 사용했다. 특히 1979년 지원금으로 갓골마을의 토지를 매입하여 부설 시범농장을 갖춘다. 이를 통해 유기농법과 협업농업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한편, 풀무학교의 자립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ICCO는 네덜란드의 개신교 교회들이 그들의 개발 원조 활동을 연합하기로 결정하면서 1964년 설립됐다. 지역 단위 조직들이 지속가능한 경제개발과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홍동과 ICCO의 교류는 물적 지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풀무학교에서 오랜 시간 함께 사는 삶을 가르쳐 온 홍순명 선생이 직접 ICCO 회의에 참석(1977년)하는 한편 ICCO에서 직접 홍동을 방문하며 상호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된다.


1988년에 네덜란드의 아동잡지 편집장과 사진작가가 홍동에 1박을 하며 풀무학교의 교사들과 함께 점심을 했다는 기록을 살펴보며, 당시 홍동에 관해 어떤 이야기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전달됐을지 궁금할 뿐이다.


ICCO는 최근까지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출처:ICCO홈페이지>


이들 외에도 1980년대 초 우리나라의 농어촌신협을 돕기 위한 기금을 보낸 네덜란드의 Cordaid-당시, 세베모(Cebemo) 재단-와 1990년대 초 소비자생활협동조합중앙회(1983년 설립 당시 소비자협동조합중앙회)에 1년간 시청각교재의 제작, 이동교육용 차량 마련 등의 목적으로 재정 지원을 한 독일의 EZE재단 등 우리나라 협동조합이 활동을 추진하는데 있어 재정적인 뒷받침을 한 여러 해외단체들이 있다. 이들의 지속적이며 장기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협동조합들이 사회와 함께 호흡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지난 2015년 유엔에서 채택된 의제인 지속가능한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의 실천에 있어 협동조합은 중요한 파트너로 이야기 되고 있다. 지역공동체의 협력을 통해 빈곤감소만이 아니라 성평등, 지속가능한 식량 체계의 구축 등에 협동조합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협동조합 사이의 협동'이라는 가치를 경험으로 느꼈다.-특히 수원국에서 공여국이 됐기에- 이번엔 우리나라의 협동조합들이 지리적 한계를 넘어 협동의 의미를 실천해 나갈 때이지 않을까?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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